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나는 다시 진우의 장애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진우가 좀 특별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진우는 수를 순서대로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일, 이, 삼, … 그러다가 십일, 십이, 십삼, … 이십일, 이십이, 이십삼, … 이런 식으로 말로 수를 세어 나가는 것을 쉽게 했다. 점점 더 많은 수를 셌고 심지어는 백을 넘어가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가 허망한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진우는 정작 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것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는 것은 전혀 달랐다.
- 「진우로부터」 중에서
나는 이때서야 비로소 진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무언가를 하게 하려고 애썼지만 진우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진우에게 바다는 어디까지 얕다가 점점 얼마나 더 깊어지는지, 그러니 얼마만큼은 안전하고 얼마만큼은 위험한지 그것을 가늠하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물이 찰랑찰랑하는 그 자체가 이미 공포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제야 하게 된 것이다. 물놀이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와 전혀 별개의 것이었던 셈이다. 그날 일은 내가 그동안 진우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
- 「진우로부터」 중에서
나는 결국 언젠가 죽을 것이고 끝까지 진우와 함께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운명이 있고 진우의 운명이 있다. 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진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아프지만 그것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한계다. 누구나 죽을 것이고 누구나 그만큼만 책임질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듯이 말이다. 그만큼 누구나 애처롭고 슬픈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발달장애인들과 미술 활동을 하면서」 중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매우 하찮아 보이는 일에 몰입하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오히려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에 몰입하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못하는 상황이 가져온 반전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더 잘할 수 있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하여 비교할 힘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잘하는 것과 비교하면서 기죽을 일이 없는 셈이다.
- 「발달장애인들과 미술 활동을 하면서」 중에서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점차 부모의 손을 떠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성장일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단호하게 스스로 하도록 채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뭐든 잘하게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것이 오히려 더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믿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데 듬직한 기둥이 될 것이다. 어려운 점이 있으면 그것을 어루만져 가면서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왔어야 했다.
- 「발달장애인들과 미술 활동을 하면서」 중에서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즐겁게 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굳이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해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무언가 해낸 사람에게는 성공 신화를 씌워 추켜세운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달장애인을 통해 배웠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각자의 한계를 서로 돕고 보완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교육일 것이다.
-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중에서
진우는 그렇게 목적과 과업에 통제되지 않는 모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일정한 질서와 과업에 의해 빼곡하게 구획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진우는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 이끌려 그것의 즐거움에 한없이 빠져들 수 있다. 샤워를 하다가 물놀이에 빠져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옷을 갈아입다 말고 다리 한쪽만 옷에 끼운 상태에서 휴대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기도 한다. 그만큼 틀에 가둬지지 않은 마음 상태로 자신만의 즐거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게 아닐까.
-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중에서
결국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본인의 과제이고 본인의 일이다. 다른 사람의 지원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고 못하고는 끝내 자신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우리는 그 가능성을 향해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터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진우를 통해 장애를 겪으면서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장애는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특질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삶이 있다」 중에서
그 와중에 나는 작가로서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그것은 진우와 무관하게 나만을 위한 일로 내 삶 속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교사로서 살아온 삶이 단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내가 성취하고 싶은 과업들이 있었고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것 또한 나를 위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중한 나의 인생이 되었고 나름 성공적인 일이 되었다. 어찌 보면 진우의 존재가 나를 미술 교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그렇게 하나의 의지로만 살아지는 것도 실현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 저런 사정, 이런 사정들이 서로 얽히면서 그 가운데 생겨나는 길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삶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