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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 5

1부 추억의 아코디언처럼

꼬들꼬들 · 12
속이 보여 · 14
산책 중 · 16
숨결 하나의 · 18
천년 고요 · 20
서두르지 않는 봄 · 22
그 손 · 24
무슨 일이야 · 26
잎의 이중주 · 28
노마드 · 30
추억의 아코디언처럼 · 32
하마터면 · 34
착각 · 36
가방 대기실 · 38
허(虛) 허 · 40

2부 농사 위에 감사

가는 길 · 44
절규도(島) · 46
휴(休) · 48
주인 있소 · 50
부동자세 · 52
꼭지 · 54
흰 고무신 · 56
여름살이 · 58
선물기(記) · 60
농사 위에 감사 · 62
깨강정 · 64
아르떼 뮤지엄 · 66
역광선 · 68
건강 대기 중 · 70
살맛 · 72

3부 이겨놓고 싸운다

이슬점(點) · 76
부활의 눈 · 78
세밑 · 80
식탁 위 달 · 82
설화 · 84
목련 단상 · 86
잿빛 고양이 네로 · 88
그림의 떡 · 90
크루즈 · 92
외출할 땐 보지 못했네 · 94
봄의 비상 · 96
이겨놓고 싸운다 · 98
어머니의 자리 · 100
잇다 · 102
딴 살림 · 104

4부 수직 정원에서 길을 찾는다

생명선 · 108
꿈의 색으로 핀 여름 · 110
수직 정원에서 길을 찾는다 · 112
서슬한 날 · 114
한 방향 · 116
약속 · 118
아직도 · 120
섀도 · 122
창화 · 124
식감 · 126
배꼽 웃음 · 128
나 어때 · 130
늦여름 오작교 · 132
가을맞이 · 134
시즌 2 · 136

해설 일상의 예술과 타자 지향의 윤리학 | 오민석 · 138
저자 소개
저자 : 오대환
1944년 남원에서 출생했다. 동국대 국문학과, 목원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5년 『문학과창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꽃들은 사이가 좋다』 『아홉 그루의 자작나무가 불타고 있네』를 출간했고 다수의 문집에 시를 발표했다. 한국문인협회, 강진문협 회원, 강진감리교회 원로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진문학상, 우리신문 문화예술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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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눈물을 흘리듯
손을 내미는
실의 이야기
― 「잇다」

담벼락을 가득 메운 담쟁이에서 시인이 본 것은 그 누구의 명령도 없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다. 그들은 집단을 이루어 손을 내밀며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시인은 이것을 “눈물을 흘리듯” 한다고 묘사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운명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길처럼 슬픈 길이다.

시인은 아마도 이런 의미를 담벼락에 길처럼 그어져 있는 실금 이미지에서 빌려온 듯하다. 벽의 금은 가는 실처럼 슬프게 이어져 있고, 그것이 지도라도 되는 양 그것을 따라가며 슬픈 손을 내미는 푸른 것들의 운명엔 많은 사연들이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을 시인은 “실의 이야기”라 부른다. 실은 서사와 서사를 이어(“잇다”)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푸른 생명들을 이끈다. 그러나 그 생명의 끝은 언제나 다시 겨울이고 죽음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 작품은 이런 많은 이야기까지 침묵으로 덧보태 담고 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야 할 데가 많은 담쟁이
나도 텃밭에 기대어
늘 봄이 온다 하니
이미 이겨놓고 싸운다
― 「이겨놓고 싸운다」

그림자가 비친 황갈색 톤의 사진은 마치 한 폭의 유화 같다. 그것은 밀레의 〈이삭 줍은 여인들〉이나 〈만종〉의 주인공들이 서 있던 늦가을의 황금색 들판을 연상케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엔 밝은 햇살이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들고 벽 전체엔 새로 싱싱하게 일어나고 있는 푸른 새싹들이 보인다. 벽 가득히 비치는 햇살 아래 무수히 뻗어나가는 덩굴들을 시인은 “가야 할 데가 많은” 존재로 묘사한다. “오라는 곳”도 없이 생은 힘들지라도, 이미 “이겨놓고 싸”우듯이 “봄”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사진 속의 그림자는 “텃밭에 기대어” 오는 봄을 믿으며 밝은 햇살을 등에 받고 무수한 길로 뻗어나가는 푸른 생명을 본다.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만드는 오대환 시인의 작업에 윤기를 더하는 것은 그의 반짝이는 유머 정신이다. 유머는 시인을 어둡고 우울한 정서에 오래 빠져 있지 않도록 하고 삶을 경쾌한 율동 속에서 빛나게 한다.

게으른 주인
갑작스런 한파에
밀짚모자를 씌우는가
사람보다 배추가
속이 찼기 망정이지
― 「속이 보여」

사람 머리 모양을 한 배추가 게으른 주인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 우스꽝스럽다. 시인은 갑작스러운 한파에 한여름에나 쓰는 밀짚모자를 배추에 뒤집어씌운 게으른 주인의 “속이” 들여다보인다고 말한다. 미물인 배추는 속이 찼고, 거꾸로 사람의 가벼운 속은 들여다보인다는 대비는 얼마나 유쾌한가. 일상의 어느 순간에 삶은 이렇게 가벼운 코미디처럼 즐겁고 경쾌하다. 이런 유머야말로 힘겹게 삶을 유지하다 결국엔 죽음의 운명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렇게 진지한 사유의 계곡에서도 경쾌한 유머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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