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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밀 벌레와 신성한 손 : 어느 식소수자의 풍성한 사계 - 이매진의 시선 29
이매진 2025.10.31
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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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바보가 되겠습니까?
식소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빛과 소금 | 오트밀을 다시 만나다 |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알게 된 | 비트에서 배우다 | 소박한 밥상 | 모심의 손 | 제약 속의 창의 | 미지의 맛을 요리한다는 것 | 바보가 되겠습니까? | 눈물의 맛

2부 밥의 평범성
불편함이 가르쳐 준 것 | 은행 손질하기 | 꿈속에서 | 다정한 헤아림 | 급식의 기억 | 밥의 평범성 | 병명 없는 병 | 고단한 하루 | 대접과 거절 | 대단하다는 말 | 마켓컬리와 할머니의 텃밭 | 귀찮지만 즐거운 일 | 자립의 집밥 | 밥은 먹었나?

3부 어쩌다 미식가
맛의 조화 | 청국장 변주곡 | 도서관 시식회 | 어쩌다 미식가 | 미안한 마음 | 세뇌와 번뇌 사이에서 | 비싸지 않은 풍요로움 | 먹방과 상상의 맛 | 재미난 맛 | 음식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것들 | 달달한 기억의 맛

4부 두부를 많이 먹어라
특별한 선물 | 위반에서 회복으로 | 새로운 난관 | 가서 차나 드세요 |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 | 밤 하나의 미세한 세계 | 씨앗을 심다 | 밀 벌레, 바구미 | 몸과 몸 | 미니 밥솥 들고 떠난 여행 | 넘어서기, 아니 밀어내기 | 열 번의 요가 수업 | 두부를 많이 먹어라
저자 소개
저자 : 신아영
대천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이랑 읽고, 쓰고, 작은 텃밭도 가꾸면서 산다. 온몸으로 겪고, 느끼고, 배운 것들에 담긴 견고한 힘을 믿는다. 그 힘으로 작고 미미한 세계의 드물고 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다. 그런 바람을 담아 《대천마을을 공부하다》와 《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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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나도 바구미도 다 먹고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 ‘성실한 바보’의 아픈 몸으로 다르게 먹고살기

‘먹기’는 ‘살기’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이 말은 모두 똑같이 잘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균형 잡힌 식단이 몸에 해로운 사람도 있다. 이름하여 식소수자 신아영은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덜 아픈 사람이다. 어느 날 파스타에 붙은 검은깨가 눈에 들어왔다. 묵은 밀에서 생겨나 ‘밀 벌레’라고 이름 붙인, 흔히 바구미라 불리는 징그럽고 새카만 벌레들은 농약 없는 밀을 성실하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아픈 몸으로 먹고살려면 성실한 바구미처럼 성실한 바보가 돼야 했다.

해법은 ‘안 먹기’가 아니라 ‘다르게 먹기’다. 통증은 아픈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비싸고 좋은 음식만 골라 잘 먹어야 건강하게 잘 산다고 믿는 세상에서 제한된 식재료로 차린 단출한 밥상은 바보나 하는 선택이었다. 바보가 돼 꽉 찬 식탁을 비우고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재배치하자 이유 없이 아픈 삶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다고 모든 욕구에서 초연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먹방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멀리해야 하는 음식을 먹는 일탈도 저질렀다. 책 먹어 해결할 길 없는 문제는 직접 손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고 낯선 맛을 탐험해 해결했다. 콩과 두부, 청국장과 오미자, 오트밀과 롱간(용안)을 새롭게 먹었고, 미니 밥솥 들고 나선 외국 여행에서는 베트남 마사지사의 따듯한 손에 연결됐다. 갑자기 떠난 아버지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식소수자의 먹고살기를 걱정하는 넉넉한 마음들도 만났다. 먹는 일에서 사는 일로 확장되는 식소수자 이야기는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가 확장되는 풍성한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두부를 많이 먹어라” ― ‘신성한 손’에 담긴 씨앗과 ‘씩씩한 애도’ 품은 마음에서 싹트는 사계

아픈 사람에게 손이란 음식 만들고 씨앗 뿌리고 아픈 몸 달래어 나와 세상을 잇는 신성한 통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성한 손을 써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뭔가 모자라도 충분한, 자극적이지 않아도 단순하고 소박한 다른 맛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내처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픈 아빠는 세상을 떠나기 전 딸에게 말한다. “두부를 많이 먹어라. 두부가 영양도 많고 최고로 몸에 좋다.” 먹는 이야기를 유언으로 남기고 떠난 아버지를 씩씩하게 애도하며 딸은 오늘도 다르게 먹고 다르게 살기 위해 밥 읽고 책 먹는다. 이제 어느 식소수자가 차린 이야기 밥상에 앉아 다채롭게 펼쳐지는 풍성한 사계를 따라가 보자. 새롭게 등장한 이야기꾼을 만나는 행운은 덤이다.

책 속에서

이제 나는 아프기 이전의 ‘원래’ 삶이 아니라 내가 머무는 ‘여기에서’ 세상 모든 것들을 더 깊이 만나고 교감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랑 이어진 무수한 것들의 소리를 잘 듣고 성실히 응답하는 삶 말이다. 그렇게 내 한 몸을 잘 돌보면서, 머지않아 내 주변도 살뜰히 보살피는 그런 생활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 p.14

바보가 되고 보니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과 당장 증상을 완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치료가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나는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어 병원이나 약에 지나치게 매달린 듯싶었다. 그저 외부에서 손쉬운 방법을 구하려고만 했다. 통증은 몸이 보내는 신호였지만, 그 신호를 제대로 알아차리거나 바라보지 못했다. …… 그러니까 건강을 회복하는 일은 어느 날 기적처럼 찾아오는 구원이 아니라 매일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자기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오직 내 일상의 삶을 견실하게 잘 일궈야만 건강한 삶을 만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나날이 더 성실한 바보가 돼 가려 한다.
--- p.58

‘이제는 이 생활에 적응이 돼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구나.’ 식단 조절을 몇 년간 하다 보니 나름 이 생활에 도가 터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체질식은 어느덧 애를 써야 하는 일이 아니라 습관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로 유지하는 일이 됐다. 그렇다고 음식에 관련된 모든 욕구에서 초연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어느 날은 가까운 이들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평범한 기쁨을 누리고 싶어서 마음이 울적해진다. 누가 뭔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입에 군침이 돌고, 음식을 먹으며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금 외로워지기도 한다.
--- p.76

단맛 없이 어떻게 사나 걱정하면서도 하루하루는 그럭저럭 잘 흘러갔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말을 그 시기를 지나며 더욱 실감했다. 얼마 뒤에는 전에 모르던 또 다른 단맛을 발견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한 맛도, 순식간에 기분을 바꾸는 강렬한 맛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이제 나는 푹 익힌 채소에서, 된장국에서, 귀리쌀과 흰콩과 통밀을 넣고 갓 지은 밥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단맛을 만난다.
--- p.175

쌀바구미를 만났다. ‘갈무리해 둔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수수나 옥수수에 꼬이는 해충’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른벌레는 석 달에서 넉 달을 살면서 알을 백 개 넘게 낳는다고 하니, 집 안에 그렇게 많은 벌레가 빠르게 번식한 상황이 이해됐다. 벌레가 꼬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 게으름이니 성실한 바구미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나도 바구미도 다 먹고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 p.218

두부를 많이 먹으라고 하면서 아빠는 또 다른 말을 했다. “내가 죽으면 네가 엄마랑 살아라.” 뜬금없다고 생각해서 별 대꾸도 하지 않은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엄마가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살 수 있게 네가 애를 좀 써 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되새겨 보니 아빠는 늘 그렇게 엄마와 내 건강을 마음 깊이 염려했다.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오늘도 엄마랑 함께 집을 나서서 한의원으로 간다. 우리는 그렇게 씩씩하게 애도하고 있다.
--- p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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