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첫 창작집을 낼 때, 아마도 여섯 번째쯤의 창작집을 펴낼 즈음엔 꽤나 여유롭고 널널한 심경이리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정작 여섯 번째 저서, ‘작가의 말’을 쓰는 내 마음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힌 듯 모호하고 혼미하기만 하다. 차라리 쓴다는 것의 속성을 깊이 알지 못했던 등단 초기의 미숙이 외려 더 담대를 불러 온 것은 아니었을까. 집필에서 흔히 말하는, 용불용설의 이론이 내 경우엔 잘 들어맞질 않는 거 같다.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책 속에서
저녁 예불을 알리는 고운사의 범종 소리가 들려왔다. 더없이 은은하고도 가슴을 파고드는 알연한 소리에 혜인은 긴 회상에서 깨어났다. 우화루 창가 나뭇가지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흔히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새. 주황빛 가슴에 잿빛 날개가 선명한, 사람을 잘 따르는 예쁜 새. 가슴을 찌르듯 맑고 명징한 울음이 묘한 위안과 여운을 안겨주었다. 그 옛날 어린 동자승, 아버지도 곤줄박이의 고운 울음소리에 힘겹고 외로운 수행의 길을 거뜬히 이겨낸 것은 아닐지…….
불현듯 지난 봄 J대 명예졸업장 증정식을 끝내고 일행과 함께 이곳 고운사를 다녀갔을 유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만난 지 근 3개월이 지나고 있었으나 그간 단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은 좀 너무 소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혜인은 급히 핸드폰을 꺼내 유쿄의 전화번호를 검색한 후 차분히 문자판을 두들겼다.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한국에 오셨을 때 뵌
스즈키님의 딸, 혜인입니다.
오늘 남매들과 고운사에 오니 유쿄님이 생각나
급히 몇 자 안부 올립니다. 사진도 첨부하오니
일견하시길요. 늘 안강하시고 복된 나날이시길 빕니다.
유쿄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니 혜인은 만감이 교차,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마치 자신이 아버지의 심경이 된 듯 야릇한 일체감에 휘말림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고운사 경내를 빠져나와 마악 차에 오르려 할 때였다.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유쿄의 답신이 도착했다.
잘 지내시죠. 지난 번엔 가족들 모두 만나
너무도 반가웠어요. 고운사가 어찌나
유서 깊고 아름다운지
거길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한국엘 다녀 와 무척 기쁩니다.
내년 봄, 벚꽃이 필 때쯤 일본에 한번 오시어요.
스즈키상과 걸었던 벚꽃길 함께 걷고 싶어요.
꼭 초대하겠습니다. 온 가족 늘 평안하십시오.
다정함 가득한 유쿄의 문자는 근원 모를 우울감을 털어내는 마법이었을까. 산다는 일의 허망함,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연민과 그리움, 세월의 흐름에 대한 끝 모를 허무와 슬픔 등이 일거에 사라지고 다시금 그윽한 기분이 몰려왔다.
혜인은 그러한 기분이 좀 더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고운사를 떠나왔다. -「고운사 가는 길」
이별의 빛깔이듯 유독 처연한 가을빛이 더없이 견디기 힘들어 하현은 더욱 일에 몰두하며 여행팀을 이끌곤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그러나 가이드로서 더 이상의 기쁨이 없음은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었다. 4월, 준우와 함께 한 곤명 여행 이후 그녀의 내면에서 진정한 기쁨이란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희한한 일은 1년간의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 3년 차에 접어들었던 진성과의 헤어짐보다 곤명행 단 사흘간의 만남이 가져온 이별이 훨씬 더 저리도록 가슴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 심장이 통째로 구멍이 난 듯, 아니 얼이 빠져나간 듯 그렇게 텅 빈 몸과 맘으로 그녀는 단지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을 뿐인 그런 시간이 흘러갔다. 언젠간 회복기가 오겠지. 그녀는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르며 단지 여행가이드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나날을 이어갔다.
뉴욕의 가을을 거쳐 캐나다의 몇 개 도시를 돌아보는 긴 패키지 일정을 마친 후 대형 그룹을 인솔, 지친 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저녁, 준우에게서 톡이 왔다. 이즈음 되도록 그의 전화나 문자에 응답하지 않으려 애를 썼기에 이제 더 이상은 그로부터 연락이 없으리라 예상했었다. -「베네스 하우스(Benesse House)」
소현이 장편을 연재하는 문예지 화보 사진을 보곤 긴가민가 의아해하며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소현의 소재를 확인한 민의 음성엔 짙은 반가움이 묻어났다. 샘, 저 기억하시나요. L중 1학년 마치고 전학 갔잖아요. 그때 샘께서 전학 가서도 공부 잘 하라며 안아주신 게 생각나요. 그럼 생각나고 말고! 소현도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음성은 까까머리 시절의 음성 그대로인데 그새 무려 3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니! 아득한 시간의 흐름에 소현은 가슴이 먹먹해왔다. 민은 그녀의 예상대로 매우 유명한 각자장이 되어있었다. 국내 유수 대학 행정학과를 나와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부업으로 인테리어 일을 병행하여 한때는 상당한 돈도 모았으나 타고 난 끼는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오랜 세월 꿈꿔 오던 각자를 시작하려 모든 걸 정리하곤 산골로 내려와 몇 년에 걸쳐 직접 황토집을 지었다. 남들은 돈을 들여 단시일에 완공할 것을 몇 배나 더 걸려 한 칸 한 칸 손수 지은 것이다. 강한 투지와 집념이 이뤄낸 성과였다. 작업을하는 틈틈이 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시 공부도 시작했다. 우연히 이름난 시인 두 사람이 그의 산방 이웃인 것도 큰 영향을 미쳐 은연중 그의 시작에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었고, 몇 해 전 그 또한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꽤 이름난 시인이 되었다. -『두렵고 사랑스러운 나의 목격자들』
두 사람은 2호선 강변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와수리행 버스를 탔다. 이심전심 시내도 어렴풋이 생각해오던 계획을 서하가 먼저 조심스레 내비쳤고 둘은 동시에 뜻이 맞아 가족 전원이 참배할 현충일을 한 주 앞둔 주말, 마침내 와수리행 계획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버스엔 빈자리가 많아 다행이었고, 두 사람은 한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그의 고백이 있은 후 어쩜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년 가을 시내 혼자 왔던 길을 서하와 둘이서 오다니! 당시 그녀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삶이란 정말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임을 절감하는 시내의 눈에 후룩, 물기가 배어났다. 그땐 단풍이 절정인 가을이었고 지금은 초여름. 불과 몇 개월만에 상황은 완전 바뀌었고 민하가 이제 이 세상에 부재한다는 사실이 시내는 아직 도저히 믿겨지질 않는다.
버스가 신길로 접어들어 차체의 요동이 심해지자 서하가 한 팔을 올려 시내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잠시 눈 감고 제 어깨에 좀 기대요. 멀미가 날 수도 있으니.
바로 그런 점이 그의 형, 민하와 너무도 닮아 놀라울 정도였다. 시내는 말없이 서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긴긴 상념에 빠져들었다. -『비누풀꽃』
지난겨울 잔뜩 얼어붙은 몸과 맘으로 홀로 운중천을 걸을 때면 외다리로 홀로 서있는 흰두루미의 존재에 자주 눈길이 머물곤 했다. 꽁꽁 얼어붙은 개울에 외발을 딛곤 무언가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서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자신의 실체를 목격한 듯 외로움이 엄습해 옴을 피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반짝이는 얼음 발찌를 찬 채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짙은 공허감을 안겨줌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들네를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동네에서 홀로 사는 까닭일까.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상헌을 만난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그가 판교로 달려 와 둘이 함께 운중천을 걸을 때면 그런 외로움 따윈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그러한 점이 그녀가 상헌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마냥 지속적 만남을 이어간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와의 만남에 전혀 걸림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엄연히 유부남에 직장에서의 업무도 제한을 둘 만큼 세심히 돌봐야만 할 병든 아내가 있다. 그러한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녀는 늘 스스로를 견제하며 일정 선을 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에 그나마 둘 사이가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12월에서 5월 사이. 근 6개월간 그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두번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열애도 아니고 결코 불륜이랄 수도 없는, 초교 동창과의 만남. 하지만 그러한 우정은 그들의 무미건조한 삶에 엄청난 활력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선 판교로 이사 온 후유증으로 인해 그녀는 한동안 전혀 글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를 만난 후부턴 이상하게도 작품을 쓰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오름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운중천의 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