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 시대 ‘인권과 평화’ 문제의 핵심 주제
양심적 거부는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고, 도덕적ㆍ정치적ㆍ사상적 신념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에는 2000년이 넘는 기나긴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 자체가 양심의 원천을 종교적인 것에서부터 도덕적ㆍ정치적ㆍ사상적인 것으로 점차 확장해온 과정이었기에 그렇다. 이 확장 과정은 20세기, 그것도 그 후반부에 대부분 성취되었다. 그러니까 20세기는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는 ‘위대한 세기’였다.
양심적 병역거부 주제는 ‘인권’과 ‘평화’라는 두 가치와 관련된다. 인권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주로 연관된다. 평화 차원에서는 전쟁 예방과 반대, 전쟁 준비 반대와 군비축소,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는 사회정의 실현 등과 주로 연관된다.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화두는 인권ㆍ자유ㆍ평화라는 중요한 인간적 가치들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제공한다. 저자는 앞으로 인권ㆍ자유ㆍ평화와의 연관성 문제를 숙고하면서 치열하게 파고든다면, 양심적 병역거부 주제를 이해하는 데 한층 다양하고 독창적인 사고의 지평이 열리리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양심적 병역거부 연구를 ‘평화연구’ 혹은 ‘평화학(peace studies)’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전쟁과 병역 문제 너머나 그 근저에서 폭력과 평화라는 주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폭력의 신성화나 탈신성화, 폭력 대 반폭력, 나아가 지난 수십 년간 세계교회협의회가 주창해온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 개념에 농축되어 있는 평화와 정의ㆍ평등의 관계 등 여러 차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 책에서는 ‘폭력’ 문제 부분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제를 도외시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논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평화 개념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적인 동기든 비종교적인 동기든, 대부분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평화주의(pacifism)’ 신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세계와 양심적 병역거부
제1부는 일종의 배경적 논의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국제적 흐름과 역사를 아우른다. 세계적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개관한 후, 보다 심화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미국 사례를 따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1부를 통해 독자들은 평화교회의 역사가 무려 4세기에 걸친 끝없는 ‘이주(移住)의 역정’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종교적 유랑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 신앙을 지켜냈던 반면, ‘잔류자들’은 대부분 현실과 타협하고 신앙을 포기했다. 20세기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점차 도입ㆍ확산되어 마침내 국제적 규범으로 인정되고, 이에 발맞춰 대체복무제도도 갈수록 인간적인 얼굴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함께 살폈다. 평화운동의 태동과 발전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다는 사실 또한 강조했다.
독자들은 1부를 읽으면서 로맹 롤랑, 버트런드 러셀, 헤르만 헤세, 바르트 더리흐트, 토마스 만, 알버트 아인슈타인, 헬렌 켈러, 도로시 데이 등처럼 이미 잘 알려진 평화운동가들 외에도, 윌리엄 제임스, 조지 허버트 미드, 지그문트 프로이트, 빅터 터너, 레온하르트 라가츠, 월터 라우센부시, 가가와 도요히코 등 평화운동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지식인들을 재발견하는 즐거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미국의 토머스 머튼과 무하마드 알리의 병역거부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심사 절차와 기준들을 보다 자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미국 사례를 통해 ‘모병제 하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과 양심적 병역거부(1): 일제 강점기~한국전쟁 이전
제2부는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온 한국전쟁 때부터 2000년까지 반세기 역사를 주로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식민지 시대가 한국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의 단순한 ‘전사(前史)’가 아니라는 주장을 개진하면서 1939~1945년 사이 출현했던 ‘양심적 병역거부의 선구자들’을 다시금 주목한다. 특징적이게도 저자는 1939년 6월부터 식민지 조선 땅에서 일어난 이른바 ‘등대사 사건’ 연루자들을 대신해, 그 직전인 1939년 상반기에 일본에서 투옥되어 고초를 겪은 재일조선인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 한국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아울러 식민지 말기 징병제 도입 시기의 선택적 병역거부자들을 한국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에 처음으로 편입시켰다. 1944년 1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덕유산ㆍ지리산을 거쳐 경남 함양 괘관산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하준수 등 ‘보광당’ 참여자 73명, 1944년 7~8월 징집을 피해 경북 경산 대왕산 일대에서 ‘죽창의거’를 일으킨 김특술ㆍ안창률ㆍ김경화 등 29명, 장준하와 김준엽 등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 3월부터 개별적으로 탈영한 후 무장독립투쟁에 합류한 50여 명 등이 그 주인공이다. 덧붙여 사실상 식민지 조선에서의 평화주의ㆍ평화운동의 부재 현상을 동시대 일본과 비교 맥락에서 고찰했다.
―한국과 양심적 병역거부(2): 1950~2000년
또한 제2부에서는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를 중심으로 징병제 도입과 정착에 따른 교회-국가 갈등의 점진적 격화 과정을 다뤘다. 196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를 대상으로 교회-국가 갈등의 극대화, 그에 따른 재림교회 내부의 진통에도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재림교회와 여호와의증인 교단을 체계적으로 대조하는 작업에도 신경을 썼다. 재림교회가 가공할 국가폭력에 떠밀려 분열되고 종국에는 집총거부 교리를 포기했던 데 비해, 여호와의증인 교단은 국가와의 공포스러운 상호작용 속에서도 비교적 단단한 내적 단결을 유지하면서 병역거부 포기 압력을 이겨냈다. 저자는 여호와의증인 교단의 ‘승리’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다각적으로 따져보았다. 아울러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재림교회와 여호와의증인 신자가 아닌 몇몇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한국전쟁 당시의 아나키스트 이문창, 1950년대의 김성호와 문기병ㆍ홍명순, 1960년대 베트남전 시기의 김동희와 김이석, 베트남전 당시 한국계 미군이었던 김진수, 1970년대의 김홍술과 승려 효림 등이 그들이다. 대천덕 신부 등 한국에서 활동했거나 대체복무를 이행한 외국인 양심적 거부자들 역시 시선을 붙잡는다. 자료가 많진 않지만, 예비군과 학생군사훈련을 중심으로 한 직장과 학교에서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도 최대한 상세하게 검토해보았다.
―한국의 군사주의와 양심적 병역거부
제3부에서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사(史)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서구 사회들과의 비교 맥락에서 고찰한다. 비교역사적 접근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의 ‘한국적 특수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일단 한국의 특징들을 개관한 후, ‘한국적 군사주의의 힘’에 초점을 맞춰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해결이 장기간 지체되었던 사정을 따져보았다. 또한 한국 주류 종교들에 깊이 파고든 군사주의?종교적 군사주의?를 개신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군사화된 개신교 현상’을, 군사주의가 교회 안으로 침투하여 뿌리내리도록 기여하는 ‘보다 제도화된 통로들과 기제들’, 그리고 공식적인 규범이나 교리로 제도화된 것은 아니나 군사주의가 신자들의 ‘일상적 생활 및 의식을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조장하는 기제들’로 나누어 고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