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고교 시절, 『도덕경』을 한 구절씩 외우곤 했다. 그래서 소설가 켄 리우가 『도덕경』을 번역한다는 소식을 듣자 “도가도는 비가도요”라는 첫 문장이 떠올랐다. 내 버전은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였던가? 시작부터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 고전을 켄 리우는 왜 번역했을까?
다들 알다시피 켄 리우는 환상적인 이야기꾼이다. 그의 소설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놀라운 광경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그런 그에게 더이상 소설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면? 절망 속에서 『도덕경』을 그의 문장으로 다시 쓰며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면? 그 이유에서 결과까지 모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끝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이 책은 단순 번역이라기보다는 대화록이다. 이야기가 고갈된 소설가와 위로할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의 대화. 읽다 보면 나도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셋이서 티격태격하다 저절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하늘과 땅은 자애롭지 않으니 우리 인간들끼리라도 서로 친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
잔인한 세상에 지칠 때,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켄 리우처럼 『도덕경』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읽기 쉽고 편안한 번역이고, 노자의 말 사이사이 등장하는 켄 리우의 해설도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가 된다!
김연수 | 소설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 저자
살다 보면 내가 원한 줄도 몰랐던 것이 대뜸 주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켄 리우가 번역하고 산문을 곁들인 『도덕경』이 출간된다니. 노자의 『도덕경』을 거듭 읽고, 강독 수업을 몇 차례 듣고도 ‘완독’했다고는 차마 말한 적 없는 내게 참으로 신나는 소식이었다. 이번에는 켄 리우와 함께 헤맬 수 있겠구나! 여백을 두려워 않는 켄 리우 덕에 마를 리 없는 행간을 유영하듯 재독하였다.
춘추전국시대 노자의 문장을 팬데믹과 AI 시대 켄 리우가 번역해냈다. 지천으로 널린 혼란과 고통을 이해하고자 한 두 사람의 분투가 세상 맑은 언어로 소박하게 포개져 있다.
하지만 당신이 켄 리우의 팬이라면 당장 그의 손에서 『도덕경』을 빼앗으시라. 켄 리우가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에. “노자를 읽을수록 덜 쓰고 싶어졌다.” 책을 압수한 뒤에 이 책을 집어드시라. 너무하다고 생각한 그의 고백이 어느 정도 지당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될지 모르기에. 물론 켄 리우는 글을 계속 써줘야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노자의 문장보다도 켄 리우가 들려주 는 해설과 이야기에 더 많은 밑줄을 그었다. 노자의 노여움을 살까 두렵진 않았다. 하늘과 땅이 그러하듯 노자 또한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이 글을 꼭 읽으라고 힘주질 않는 노자와 켄 리우 때문에 나라도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꼬일 대로 꼬인 바람에 웬만한 훈화는 ‘흰소리’로 들리는 분께, 그럼에도 내심 조용한 깨달음을 구하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한다. ‘노자는 트위터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켄 리우의 말마따나, 이 책은 함축적이고 깊다. 그러니 장광설은 도저히 못 견디는 분께도 이 책을 권한다. 무엇보다 한 인간이 ‘인생의 책’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품고 살아가는 과정을 애틋하게 여길 분께도 이 책을 권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는 저절로 배우고 있다.
원소윤 | 소설가, 『꽤 낙천적인 아이』 저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나는 노자의 철학에 깊이 몰두해있다. 내 마음이 평온을 찾은 것은 『도덕경』을 읽은 덕분이다.
톨스토이
책 속에서
걸을 수 있는 길道은 영원한 길이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불변하는 이름이 아니다.
(첫 문장)
나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도덕경』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읽거나 들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읽었다. 미래가 완전히 절망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읽었다. 어둠에서 벗어날 길을 찾길 바라며 읽었다. 그리고 책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도덕경』에 등장하는 노자는 오리엔탈리즘 동화 속에서 공허한 상투어를 쏟아내는 친절하고 지혜로운 현자가 아니었다. 그는 날카롭되 베지 않았고, 정의롭되 판단하지 않았으며, 희망을 품되 달콤하지 않았다.
(25쪽, 딱히 서문은 아닌 서문)
나는 도를 깨달은 제비가 호화로운 물건과 이국적인 볼거리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진흙 둥지에 편히 앉아 있는 이미지를 사랑한다. 당신이 도를 붙들고 도가 당신을 닻처럼 고정해주면,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호의에 대한 갈망도, 필멸하는 우주가 부리는 변덕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사지의 떨림은 멈춘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공포와 아름다움의 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당신과 상관없이, 또한 당신 때문에 벌어지는 그 춤을.
(96쪽, 차라리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친해짐에 흔들리지 않고,
멀어짐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이로움에 흔들리지 않고,
해로움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호의에 흔들리지 않고,
경멸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모두가 도를 깨달은 자를 존경한다.
(56장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두 팔로도 감싸지 못할 나무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하고,
하늘에 닿는 둔덕도 몇 줌의 흙에서 시작되며,
천 리 길도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종종 목표에 거의 다 이르러 휘청거린다.
끝을 처음과 똑같이 살피면 넘어질 일이 없다.
(64장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노자가 대답했다. “좌절되면 침울해지고, 충족되면 교만해지는 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지. 우리는 정념의 포로라네. 들뜨면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우울해지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으며, 고요할 때는 심연보다 깊다가, 움직일 때는 달리는 구름보다 가볍지. 사람의 마음보다 더 제멋대로인 것도 없다네. 역사를 한번 돌아보게나. 인간의 마음을 한 치라도 ‘개선’하는 데 성공한 지혜로운 왕이나 현명한 입법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게나. 처형된 시신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감옥은 넘쳐나고 있네. 그런데도 유가와 묵가는 여전히 밖에서 논쟁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남의 눈길을 끌려 하고, 권력을 다투며 족쇄와 호위병에 둘러싸여 있지. 이보다 더 뻔뻔한 일이 어디 있겠나?
만일 우리가 현자들을 숭배하길 멈추고, 영리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제야 세상은 평화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네.”
(191쪽 개입 없이)
무엇이 최선의 길인가?
하늘의 길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고, 늘 친절함과 함께한다.
(79장 늘 친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