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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5

박수빈

화성장대華城將臺에서 16
봄날이 간다 18
저 절로 가는 길 19
숲에 어떻게 도착하나요 20
바퀴 달린 신발 22
줌 인 줌 아웃 24
물 속의 잠 25
심연 26
미타쿠예 오야신 28
아보카도 30

진영대

수탄장愁嘆場 32
하늘에 뿌리내리기로 했다 34
이거면 되겠습니까 - 일출, 호미곶 앞바다 청동 조각상 35
사랑아, 사랑아 36
조장鳥葬 37
바람이 멈추었다 38
밥투정 39
말하지 마라 40
오래된 골목 41
탈피 42

서주석

모닝꽃 46
물꽃 47
마음꽃 48
알몸꽃 49
말차꽃 50
살데꽃 51
스윙꽃 52
멘탈꽃 54
미스테리꽃 56
숨꽃 57

윤정구

너구동의 여름 60
사과 속의 달빛 여우 61
소나기를 맞은 염소 - 사석원에게 62
사슴벌레 64
수석水石을 바라보다 66
산수유 화엄 68
세인트 히말라야 69
아버지의 아버지 70
목척교 71
유리시경琉璃詩境 72

최영규

부의賻儀 74
문안산 물감빛 75
덕항산 동무들 76
달항아리 - 국보 제310호 백자대호白磁大壺 77
하늘길 잠적潛跡 78
강경들녘 폭염 79
나를 오른다 80
환생還生 - 안데스 1 81
바다 - 안데스 2 82
고향故鄕 - 안데스 12 83

한이나

번개 낙관 86
어머니와 재봉틀 87
에코 브릿지 88
물빛 식탁 90
알맞은 그늘이 내가 될 때 91
침향 92
청호반새, 저 꽃잎 93
석양 무렵 여름 94
거대한 달력의 저쪽 96
뭇별 총총 98

고영섭

사랑의 지도 - 한글날에 100
연결되어 있네 101
마침내 - 대지 102
처서 - 더위가 그치는 103
사경가寫經歌 - 현대향가 12 104
동치미 105
절창絶唱 106
화불 - 그림으로 그리는 경전 107
벚꽃 사리 108
하루 109

이나명

구름신발 112
눈이 온다 2 113
忌日 114
느티나무 그림자 116
모든 날들이 117
아니 당신! 118
슬픈 꿈 120
울음열쇠 121
이슬방울 세상 122
저녁이 지나가네 123

해설 ┃ 『시천지』동인 31년을 돌아보며 -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시를 위하여 125
시천지동인 연보 149
동인 주소록 153

저자 소개
저자 : 시천지 동인
1994년 10월, 권력과 자본 혹은 친소 관계에 기반하여 발표 지면을 나눠먹기 하는 문단의 현실을 반성하고, “한국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시인 결사체를 만들자”는 듯으로 상희구, 이나명, 노명순, 윤정구, 한이나, 최영규, 김성오, 고영섭 시인이 모여 ‘시의 천지’ 또는 ‘시의 지천’을 만들기 위해 〈시천지〉 동인을 결성하다.
동인 이름은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시’, ‘좋은 시가 천지인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의 천지’. ‘시의 지천’을 함의하는 ‘詩天地’로 정하다. 이후 매월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 오상순, 한용운, 김수영, 정약용, 김소월, 윤동주, 김현승, 조지훈, 신동엽, 박목월, 주요한, 허난설헌(순례순) 등의 시세계 강의 및 시비를 순례하며 동인들의 문학적 우의를 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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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눈앞에 셀 수 없이 널린 길들도
내 정작 마음먹고 나가려 할 땐
너덧 길 서너 길 두어 길 되다
한 길로 줄어들기 마련이듯이

지상에서 제일로 부지런한 건
나의 손과 또 나의 발이라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못 옮기고선
가슴에서 발끝으로 못 이르고선

세상에서 제일로 머나먼 길은
머리에서 발끝으로 나아가는 길
발끝에서 온몸으로 못 나가고선
마지막엔 자기조차 못 버리고선

눈잎에 널려있는 길들 중에서
마음 둘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
지상 위에 남겨진 오직 한 길은
내 온몸을 던져서 열어가는 길
- 고영섭, 「길 - 사랑의 지도」 전문

시앗을 두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시앗이 생겨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이 고영섭 시인입니다. 소금항아리 같은 사람입니다. 필자의 예전 집에는 토광 구석에 소금항아리가 붙박이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사 나올 때까지 한 번도 그 자리를 옮겨본 적 없는 질항아리였습니다. 오래된 소금독은 간수가 베어 하얀 소금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시천지〉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시인은 문학과 철학, 불교학자로 명성이 높지만 ‘시는 문학청년 시절부터 내 삶을 지탱해 준 고갱이였다’는 고백에서 보듯 그의 중심에는 시가 있습니다. 2005년 6월부터 인문학 계간지 『문학 사학 철학』을 20년 동안 주간해오면서 필자는 시인이 엄살을 부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 ‘마음먹고 나가려 할 땐’ 그는 ‘남겨진 오직 한 길’을 향해 미동 없이 ‘온몸을 던져서 열어가는’ 사람입니다.

살면서 옆에 길을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도(道)를 아는 사람과 동행하는 여행처럼 안심되고 즐거운 여행이 없습니다. 〈시천지〉가 기울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한 세대를 동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든든한 안내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는 돌부처에 의지해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해와 미당, 원효와 퇴계, 향가에 이르기까지 불도유(佛道儒)를 넘나들던 시인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셀 수 없이 널린 길’을 지나 결국 ‘너덧 길 서너 길 두어 길 되다/한 길로 줄어들’어 ‘마음 둘 수 있는 길’을 찾은 듯합니다. 몇 해 전 고향인 상주에 농가를 마련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시인을 만날 때마다 종종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마침 필자의 농장도 상주에 있어 이제 남아 있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날의 끝자락에는 동향인으로 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었을지 모릅니다.

햇빛의 길을 보았니

일 초에 백만 리를 달리는
억만리 허공의 곧고 투명한 길을 달려와

흙을 만나면 흙속으로 들어가 싹 틔우고
나무나 풀을 만나면 그 속으로 들어가 꽃 피우는

눈부신 흰 말들

그중의 한 마리 말이 환생하여
잠시 피어난 꽃다지인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니

돌밭둑이라도
기쁘게 피었다 갈 뿐이야

바람 속에 끄덕이는
한 뼘 꽃다지
- 윤정구, 「꽃다지에게」 전문

내가 깨문 대추 한 알 속
그 달큰한 과육 속
대추벌레 한 마리 꿈틀했다

그렇게 나는 네 몸을 보았다
허옇게 살찐 대추 벌레의 몸으로
흰 이빨 딱딱 벌리며
내 속을 파고드는
막무가내 씹어대는 너의 입질을 느꼈다
너에게 살뜰히 먹히고 있는
점점 네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내 몸을 보았다
여지없이
썩어 문드러질 내 몸이 통통한
사랑 한 마리로 자라고 있는 걸 보았다

내가 깨문 대추 한 알 속
그 향긋한 과육 속
사랑 벌레 한 마리 꿈틀했다
-이나명, 「사랑 벌레」 전문

그녀가 물의 정원 나무 그늘에 식탁을 차렸다
눈앞 강물이 반짝이고 풀밭은 초록의 그림자
우리만 나이를 한참 먹었다

정성을 차린 우리들의 싱싱한 식탁
찰진 이야기 술술 풀려나오는
물빛 사윌 만찬인 듯

오늘 하루 나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힘껏 살지 않기로 했다

계단이 없는 평평한 물의 정원 저 푸른 그림자의 풀밭
나무 그늘에 누워 하늘을 독차지한 게
오늘 내 전부
아무도 슬프지 않아 지루한 내 생의 정점

그림자의 그림자인 내가 웃는다
죽은 친구는 저승 벌판 헤매느라 오지 못하고
오래 펄럭였던 얘기 한 줌 바람으로 정결했다
- 한이나, 「물빛 식탁」 전문

시가 뭐냐고 묻기에
흰 솔나리 꽃이라 했지요
허리 접어 토슈즈 신고 있는
발레리나의 클래식 튀튀처럼
경계를 사뿐히 허물고
발가락 끝으로
하늘 위 걷고 있는
푸른 잎맥의 발레리나꽃.
- 서주석, 「발레리나꽃」전문

아버지가 즐겨 찾던 안주는 죽은 아내를 부르는 것이었다. 곡기가 소주였던 일이 다반사였다.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다짐이 밤마다 꿈을 꾸며 이불을 걷어찼는데, 그럴 때마다 이불에 붙어 있던 별들이 떨어져 나갔다. 밥값이 부족하던 청춘은 허기를 메울 단어를 찾아 번역을 했다.
- 오석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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