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나의 노래>
추억으로 나이를 먹는 걸까
하루하루 늘어가는 이야기 속에.
세 딸이 재롱 피우며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던 일,
이불 속 여덟 개의 다리를 묻고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부추전 먹고,
옛날이야기 해 주던 일.
이제 세 명의 손녀들의 재롱으로
세대를 넘기고,
더욱 푸짐한 웃음거리가 생겼다.
젊어서 고생했던 힘든 시기,
아이들이 잘못될까 걱정하던 일,
작은 수입으로 공부 가르치려던
속 타던 마음,
작게 크게 속 썩이던 남편도…
추억이 방울방울 영글어
또 다른 추억이 되고,
꿈이 되고,
희망이 되고,
시가 되고, 사랑이 된다.
그리고 나의 노래가 된다.
<주부의 행복>
바짝 마른빨래
깨끗이 청소된 집안도
바라보면 흐뭇하다.
냉장고 한켠,
참기름 한 병이 꽉 차 있어도 좋다.
계란 바구니에 계란이
소복이 담겨 있어도 행복하다.
저녁 시간
맛있게 무친 나물 한 접시
얼큰하게 끓인 찌게 한 냄비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피곤함을 잊는다
작은 부엌,
오늘 반찬 걱정 덜었다는
안도의 미소가 번지고,
사소한 풍요로움 속에서
주부의 마음은 행복하다.
주부의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냉장고 문을 열 때,
장바구니를 정리할 때,
그 작은 순간 속에서
웃음을 얻는다.
<오십 년 지기 친구들>
어느새 한 해가 저물고
또 겨울이 찾아왔다.
달력에 남은 마지막 한 장은
바쁘게 흘러간 시간을 버거워하는 듯하다.
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마치 인생이 결승선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 듯 느껴진다.
젊은 시절엔 새해가 오면
설렘으로 가득 차고,
앞으로의 꿈으로 가슴을 채웠다.
그러나 지금은
비워내고, 놓아주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새로운 시작보다
잘 마무리하는 법을
더 깊이 배워가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다행히도
나에겐 50년을 함께한 친구들이 있다.
여고 시절, 같이 울고 웃으며
같은 추억을 쌓았던 벗들.
세월은 흘렀지만
그 순간들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청춘의 얼굴은 주름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우리가 마주 앉아 웃을 때면
순식간에 소녀로 돌아간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지고
그 순간만큼은 나이도, 세월도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
여행 중 작은 찻잔을 나누며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들이켤때,
말없이 웃음이 번지고
지난 추억이 향기처럼 스며든다.
차 한 잔에 담긴 여유가
50년의 우정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50년이라는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그만큼 함께 흘려보낸 추억이
더없이 소중하다.
앞으로의 날들이
그만큼 길지는 않을지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서로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
영원히 지켜주리라 믿는다.
친구여,
우정이란 세월도 무너뜨릴 수 없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구나.
<늙어 보이는 아가씨>
오늘
3학년 여자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늙어 보여요.
늙고 뚱뚱하고 못생겼어요.”
장애가 있어
필터 없이 내뱉는 말,
그 말이 마음 한켠에
살짝 상처가 생기지만
천진난만한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난 할머니 아니고
아가씨야.
그런 말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니까
하면 안 돼.”
아이, 눈이 반짝이며 묻는다.
“아가씨가 뭐야?
사람이면서…”
아가씨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
순수한 영혼이라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잠시 웃음을 멈춘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살짝 헷갈리는 순간.
작년에도
이 아이와 체험학습을 나갔다.
예쁜 얼굴의 아이는
“선생님, 선생님은 어쩌다가
할머니가 됐어요?”
“너도 크면 아가씨가 되고
엄마가 되고
또 할머니가 될 거야.”
이렇게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의 눈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만큼 내가
세월을 많이 살아낸 것이다.
아이를 이해하지만
약간 마음은 쓰라렸다.
내가 많이 늙기는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