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원소가 인간과 결합할 때 어떤 차별을 낳는가
‘과학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의대에 진학했으나 “입학하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픽’되어” ‘데모꾼’으로 활동하다보니 “세상이 이 모양인데 의사는 해서 뭐 하나”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원진레이온 집회에 참여한 어느 날 저자는 한 선배의 권유로 예방의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때 인생 경로가 결정된다. 개인의 질병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는 사회의학을 업으로 삼게 된 건 “원진레이온 투쟁이 남긴 여러 유산 중 가장 소소한 것”이리라 저자는 회고한다.
137일 동안 이어진 원진레이온 ‘장례 투쟁’에서 ‘황’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자체로는 독성도 없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페니실린 같은 의약품, 비료 등의 주요 성분인 황이 어쩌다 ‘사신(死神)’이 되었을까. 황과 탄소가 결합한 이황화탄소의 독성을 알고도 생산기지를 계속해서 이전하며 노동자들을 방치한 국내외 기업들의 사례를 짚으며 저자는 “원인 모를 병마와 외롭게 싸우던 노동자들,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애초에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라고 일갈한다. 황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에피소드는 저자의 지식(과학)과 취향(SF)과 사회적 의식이 드러나는, 그 자체로 통쾌하고 의미심장한 의도적 반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나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던 분은 도저히 내가 넘어가지 않자 “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뇨, 저는 지옥 가고 싶은데요.” 그분은 옆 칸으로 도망갔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라면 인류가 꿈꿔온 무한동력, 거절할 이유가 없다. 파인만, 호킹, 힉스,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같은 일류 과학자들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이미 그곳에 가 있을 터, 무한동력을 이용하여 일찌감치 기술 문명을 꽃피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글러스 애덤스, 커트 보니것 같은 유쾌한 작가들과 많은 SF 작가들도 나보다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심심할 걱정도 없다. 직업병 걱정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유쾌한 동료 시민들과 신비로운 푸른색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유황 지옥 불을 불멍할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닌가?”
- 〈황: 아니오, 저는 지옥 가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납’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질화학자 클레어 패터슨이다. 그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으로 역사상 가장 완벽한 ‘클린룸’을 만들고, 마침내 지구 생성 시기에 떨어진 운석에 함유된 ‘순수한’ 납 함량을 측정함으로써 지구 나이를 추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는 뜻밖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도처에 존재하는 납이 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증을 갖고 다양한 가설을 검토한 끝에 1923년 등장한 유연휘발유가 납 오염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정유산업은 청부 과학자까지 동원해 그의 연구를 방해하지만, 패터슨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심해, 남극과 북극, 설산, 화산 분화구, 심지어 인체 유골과 미라까지 분석해 자신의 가설을 입증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의 플린트시의 상수관으로 뻗어나간다. 오염된 납 파이프 상수관으로 수도를 공급하던 가난한 유색인종의 도시 ‘플린트 물 사태’는 중립적인 원소가 인간과 결합할 때 어떤 차별을 낳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편, ‘과학이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울먹이던 질소에게
위로해줄 말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트랄파마도어 행성에 모인 화학원소들 사이에서 나치 경비병과 의사 몸의 일부로 비자발적 복무를 한 질소가 울먹이고 있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타임퀘이크》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질소’ 편은 인간의 불가해한 아이러니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질소가 어쩌다 사람들을 학살하는 데 이용되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공포나 슬픔보다 의아함이” 앞선다.
“독일의 부헨발트 수용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직접 가보았을 때에도 공포나 슬픔보다 의아함이 더 크게 일었다. 도대체, 이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인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기차에 태워 이 멀리까지 이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철로를 수용소 앞마당까지 연결하고, 그 많은 포로들을 특성에 따라 세세히 분류하여 라벨을 붙이고,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빠르게 죽이기 위해 별도로 가스실을 건설하고, 시체를 옮기는 수레에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수레 내부를 코팅하고, 가스실에서 소각로 입구까지 시체 운반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부지런함과 효율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 〈질소: 절멸 캠프에서 본 인간의 얼굴〉에서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어두운 면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살자와 방관자만이 아니라,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의에 저항하고, 가장 위험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인류애를 보여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꼿꼿이 버틴 사람들 몸속에도 질소가 들어 있었다”며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울먹이던 질소를 위로한다. 1980년 광주, 계엄군이 시가지를 장악하고 대중교통도 끊어진 상황에서 헌혈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혈액원 입구에서 병원 정문까지 구불구불하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 히틀러-나치에게 경례하지 않기 위해 “집 밖을 나설 때면 항상 양손에 무언가를 들었다는” 어느 과학자의 작은 실천에 숙연해지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인간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곧 타자를 어떻게 대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에 담긴 18개 원소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과학 지식을 품고 있는 물질의 기본요소인 한편,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증언하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철’ 편에서 이야기되듯이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 사회와 혈액마저 상품으로 거래되는 ‘매혈’ 사회, 그리고 특별한 보상 없이도 자발적인 ‘헌혈’로 생면부지의 타인을 돕는 증여 사회는 각기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주기율표 위에 그려낸 몸, 타자화, 연대의 지도는 자연과학의 재료로 사회를 읽는 지적 즐거움뿐 아니라, “나의 행동 혹은 행동하지 않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 1975년에 발표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담긴 아이러니와 2025년의 《주기율표 아이러니》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른지 답해보는 시간은 독자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