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대와 한 개인의 삶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베이비붐세대의 원체험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읽는다
농경시대·산업시대·정보화시대·AI시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네 겹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그 변화의 과정을 목격한 세대는 ‘베이비붐세대’가 유일할 것이다(한국의 베이비붐세대란 1~2차를 합해 1955~1974년 사이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이는 곧 베이비붐세대가 지나온 60여 년의 시간이 한국 사회의 대전환기와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그들 개개인의 경험은 공동체 구성원의 공통 경험과 맞물리며 사회·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베이비부머인 지은이 엄창호는 바로 그 공통의 경험, 이른바 ‘원체험’에 주목하며 ‘시대와 한 개인의 삶은 어떻게 교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공통의 경험들이 모여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장소, 개념, 사람, 사물이라는 네 개의 창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그 장면들은 개인의 사적 기억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겪은 시대의 표정이기도 하고, 미세한 균열을 포착해 보여주는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한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서 나는 연어의 심정으로 과거를 거슬러 올라, 그 속에서 오늘의 좌표와 미래를 향한 단서를 찾으려 했다.”
어린 시절의 골목과 학교 풍경, 가난과 노동의 기억, 브랜드와 광고가 만들어 낸 소비문화의 변화, 민주화의 열기와 좌절 그리고 기술 혁신이 바꾼 일상의 모습 등 저자가 소환하는 기억 속에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변곡점들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의 회고는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단서를 길어 올리는 탐색의 과정이다.
지은이는 역사가 일직선으로 진보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발전과 혁신의 외피 아래 반복되는 전근대의 잔재, 산업화의 그늘에 남은 불평등, 민주주의의 확장과 동시에 나타나는 퇴행의 조짐 등은 과거가 결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 깊이 스며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는 찰스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에서 포착했던 역사의 역설(희망과 절망, 진보와 퇴보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을 오늘의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작업이며, 새로운 시대를 건너기 위한 좌표를 찾는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베이비붐세대만을 위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지은이는 세대 간의 간극을 넘어 이해의 접점을 찾고자 한다. 급진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의 경험이 MZ세대에게도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 전통과 미래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차분히 드러내, 두 세대 모두 오늘 우리가 처한 조건과 내일의 과제를 함께 바라보도록 이끈다.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정밀하게 들여다본 인문학적 성찰의 기록
이 책은 단순한 세대 회고록이 아니다. 삶의 층위를 구성하는 네 개의 창(장소, 개념, 사람, 사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정밀하게 조망한 인문학적 지도이자, AI라는 거대한 변화의 문 앞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묻는 사유의 기록이다. 또 은퇴의 문턱에 선 베이비부머에게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과 다시 만나게 하는 위로이자 재발견의 기회가 되고,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 사회의 기원과 구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앞서 던진 ‘시대와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교차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통해 더욱 깊고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