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허블에서 펴내는 국내 최초 SF 시집
”직관만이 열어내는 세계가 있으므로,
시인들은 SF 없이도 시를 쓰겠지만,
SF에는 시인들이 필요하다.“
“직관만이 열어내는 세계가 있으므로,
시인들은 SF 없이도 시를 쓰겠지만,
SF에는 시인들이 필요하다.”
SF 시집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태
SF와 시라니, 이 둘이 어떻게 맞물릴 수 있을까.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 시집』은 물론 SF적인 요소 혹은 소재들인 로봇, 인공지능, 외계 행성, 미래 / 괴물, 아포칼립스, 기이한 것-돌연변이, 재앙 / 생물성, 인간적인 것, 비인간, 기후, 생태, 자연 등에 대해 형상화하지만, 강조점은 아무래도 ‘시’에 있다. 인아영 평론가가 시집 해설에서 견실히 짚어나가고 있듯, SF(science fiction)가 과학과 허구의 만남이라는 개념적 모순 속에 있으면서도 보편 법칙에 대한 ‘추론(speculation)’으로 세계를 쌓는다면, SF 시는 ‘직관(intuition)’의 힘을 보여준다. 소설이 논리를 바탕으로 세계를 구축해나간다면, 시는 세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직관의 언어로 돌연 창발한다. 돌출, 번뜩임, 솟구침, 도약, 모호함 속에서 꿰뚫는 듯한 언어. 우리 삶이 어쩌면 대단한 논리나 특별한 인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시적 언어가 더 진리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때문에 돌연 비치는 섬광처럼 “직관만이 열어내는 세계가 있으므로” “SF에는 시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SF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잘 조응하는 지점은 아마 시간과 존재의 형식일 것이다. 소설은 플롯으로 시간을 설계한다면, “시에서는 언어 자체가 시간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시는 한 문장만으로도 시간을 지시하고 여러 시간대를 열 수 있다. 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영원한 가능태로서의 존재를 다룬다. (관측되기 전까진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적 사고를 떠올려보라.) 우주의 양상이 비선형적이라는 걸 시는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우주에 대한 가장 적실한 표현은 어쩌면 ‘은유적’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 그때 무수한 시공간에서 SF 시는 타자와 만난다. 그러니까 이 역시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주체성을 허물어뜨리면서, 한데 얽혀서, 사랑의 여러 가지 모양과 역량까지도 보여주면서. “사랑에는 우주적인, 그러니까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을 호소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의미를 압도하는 소리와 통제되지 않는 리듬”으로 음악이 되고 물결이 된다. SF적이면서도 시적인 것 사이 쏟아지는 무수한 경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펼치시길.
책 속에서
이제 시를 낭독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까마귀와 사마귀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우주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청중들은 알까?
_「에밀리의 방」 부분
내게 속하지 않는 것들로 나를 이루는 소외의 쓰라린 목록. 식별할 수 없는 상실의 목록. 휩쓸리는 고독의 목록. 무차별이다. 평등하다.
_「괄호 안에 은총을 하나의 은총을」 부분
무한은 원과 선과 면과 점과 흙과 바람 사이에서 자꾸만 작아지면서 자라나고 있다
_「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부분
나는 실의에 빠진 상태로 산책도 갔다 왔다고 말했다.
더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잘 살기 위해서만 사는 것들을 혐오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_「콘솔」 부분
이마에 뾰꼬뾰고 유록색 잎이 돋아나는 자연발생학적 인간 포기 그 신비를 꿈꾸는 것일 테다
_「죄인 되기」 부분
내가 오늘 들고 있을 부케는 우주대폭발
한 아름에 받을래? 양손으로 쥐어볼래?
_「드론과 결혼하기」 부분
우주는 강아지가 산책하는 넓은 운동장, 무서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그렇게 상상해요.
_「크런치」 부분
연구실이나 병원 복도에 밴 특유의 공기를
보지도, 듣지도, 맡지도 못하면서 어슬렁대는
하릴없고 말 많은 유령들을 위한 것
_「얼굴」 부분
어떤 시를 쓰게 될지는 결코 알 수 없고 시를 쓰면서 조금 알게 되거나 재수가 없으면 영영 모르게 될 수도
_「매일은 조금 일요일 같다」 부분
하지만 자기야,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사라질 거야. 자기는 살아서 나를 기억해야지.
_「사랑과 자유와 평화」 부분
슬프기 때문에 우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가설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슬프기 때문에 괴물을 만들어 내는 생물은 인간밖에 없겠지만.
_「세기말적 의문」 부분
빛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 속을 유영하기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모체 속의 자신을 느끼기
_「넛셸Nutshell」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