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청소년의 학대 피해와 부부폭력 목격에 따른 자살 생각 차이 분석〉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가정에서 직접 학대를 당한 청소년보다 부부간 폭력을 목격하며 간접 피해를 본 청소년이 자살을 더욱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일상처럼 목격하고, 늘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자신도 죽이는 어두운 생각을 하며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엄마의 몸에 새기는 폭력의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고,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불안전한 공간이었다. 기억할 수 있는 까마득한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처참히 깨어진 살림이 매일같이 나동그라져 비명을 질러댔고, 형태를 잃고 부서진 것들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버지로 인해 많은 것들이 깨지고 버려질 때마다 어린 소녀의 꿈과 희망도 함께 부서져갔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감정은 성인이 된 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슴에 새겨진 어린 시절의 상처가 결혼 후 튀어나오며 조울증, 불안장애, 강박장애로 모습을 바꾸어 작가를 괴롭혔다. 우울과 불안이 한순간에 삶을 덮치자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워졌고, 계속되는 자살 기도로 원치 않게 가족과 지인을 우울의 구렁텅이로 함께 몰고 갔다. 힘겨운 나날이었다. 보이지 않는 희망은 저만치 멀리 있었고, 눈앞의 하루는 너무나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물처럼 뱃속에 아이가 찾아왔다. 새 생명을 위해서라도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끊어내려 작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아이에게 자신의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정 폭력을 다룬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그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의 ‘고백’이라는 걸 깨달은 작가는,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팠던 기억을 꺼내어 적는 건, 힘겹게 통과한 시간을 되감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어떤 시간은 여전히 아프고 무서워서, 어떤 시간은 화가 나서 울었다. 반복하며 글을 고치는 괴로운 과정이 이어졌다. 잊혔던 기억이 꿈으로 재현되며 수시로 잠을 깨웠고, 과호흡으로 손발이 저리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러는 사이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아 움직이던 기억 속 장면은 점차 흐릿해졌고, 단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시큰거리고 저릿했던 몸은 어느 순간 반응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이처럼 엉엉 울지 않고 과거의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고 있었다. 결국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토닥여주고 나서야 오래된 상처가 떠나갔다. 상처에 고운 날개를 달아주며 작가는 비로소 아팠던 시간을 안녕히 보내줄 수 있었다. 과거의 상처가 헤집고 간 자리에 시나브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자리 잡았다.
오직 바랄 뿐이다. 이 이야기가 자신을 닮은 누군가에게 한 줌의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삶을 버텨낼 작은 의지가 되어주기를. 오직 상처의 연대를 통해 비슷한 아픔이 있는 이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처가 상처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를 딛고 선 생존자인 작가의 이야기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는 고통의 터널 속에서도 어떻게든 내일의 희망을 찾아내는 인간의 존엄과 상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안겨주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