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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김시습, 우연히 만나 필연이 되다
읽기 도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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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김시습, 손을 잡다

매월당 김시습에 대하여 알아보자 / 김시습, 관동(강원)과 어떤 관계인가 / 김시습의 강원 한시, 시조로 다시 탄생하다

Ⅱ. 오세신동(五歲神童), 이십 전후에 고난이 오다

천재 소년 김시습, 본관(本貫)은 ‘강릉’이다 / 강릉에서 어머니 삼년상을 모시다 / 고난이 이십대(二十代) 전후를 강타하다

Ⅲ. 철원(김화) 사곡촌에 숨어들다

여덟 명의 은사(隱士)를 만나다 / 사곡촌에 충혼(忠魂)을 남기다 / 첫 유람은 관서 지방으로 떠나다

Ⅳ. 내금강, 그 절경에 빠지다

김화 누각을 지나, 단발령에 이르다 / 장안사·표훈사·정양사의 만천 구역을 가다 / 만폭동·보덕굴·세암의 만폭 구역을 가다 / 마하연·원적암·만회암·만경대의 백운대·비로봉 구역을 가다 / 백천동·송라암·망고대·국망봉의 명경대·망고대 구역을 가다 / 원통암·개심폭·진불암의 태상 구역을 가다 / 내금강에서 불심을 읊다 / 내금강에서 선경(仙境)을 보다 / 내금강에서 세상을 읽다 / 내금강을 뒤로하고, 단발령을 넘다

Ⅴ. 1차 관동 유람 길에 오르다

원주에 들어서면서 관동을 만나다 / 횡성을 거쳐 평창 여러 역(驛)을 지나다 / 전나무 숲에서 월정사를 만나다 / 오대산의 여러 봉우리와 사찰을 둘러보다 / 나옹도 만나고, 소옥(小屋)도 짓고 선담(禪談)도 나누다 /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접어들다 / 강릉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노래하다 / 강릉을 떠나 다시 평창으로 향하다 / 영월에서 단종을 만난 후, 호서(湖西)로 떠나다

Ⅵ. 경주에 머물며, 관동 남동부를 유람하다

어머니 품에 안겨, 울진을 돌아 보다 / 우릉도를 바라본 후, 태백산·정선에 이르다 / 다시 한성으로 올라가 폭천정사에 머물다.

Ⅶ. 한양에 머물며, 「춘천십경」을 쓰다

춘천 10경, 시작(詩作) 배경을 살펴보자 / 춘천십경, 누구에게 듣고 썼을까 / 춘천십경, 땅(地) 배경 다섯 편을 읽어보자 / 춘천십경, 강(江) 배경 다섯 편을 감상해 보자 / 환속, 재혼, 그러나 다시 한성을 떠나다

Ⅷ. 2차 관동 유람, 훌훌 털고 떠나다

사십 대의 한성 생활은 꿈이었다 / 한성에서 출발하여, 사탄(史呑, 사내)에 들리다 / 모진 나루를 지나 우두벌에 이르다 / 소양정(昭陽亭)에 올라 소양강을 노래하다 / 춘천의 절경(絶景)을 찾아 회포를 풀다 / 춘천 산하를 한 폭의 그림처럼 그리다 / 청평사 세향원에 머물다 / 겨울을 나니, 마음은 떠나고 있었다 / 인제 오세암에 들리다 / 홍천을 지나 평창 독산원에 이르다 / 사패(詞牌)에 전사(塡詞)하며 강릉을 노래하다 / 관향 강릉, 볼거리를 둘러보고 사연도 만나다 / 동산관(東山館)에서 동해를 바라보다 / 낙진촌(樂眞村)에서 산관(散官)과 젊은이들을 만나다

Ⅸ. 양양 검달동, 불꽃이 차츰 스러지다

검달동에 은거하며 세월을 낚다 / 마지막 사랑의 불꽃, 짧은 심지를 불사르다 / 오십 중반에 들어 노년기 현상이 나타나다 / 제자 선행(善行)을 놓아주다 / 검달동의 외로움, 시와 술로 달래다 /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삶을 돌아보다 / 낙산사 법회(法會), 번민을 보내다 / 벼슬아치는 힐난(詰難)하고, 백성 삶을 걱정하다 / 양양 부사 유자한과 깊게 교유하다

Ⅹ. 한성·설악에 들려, 무량사에서 잠들다

양양 검달동을 떠나 중흥사에 나타나다 / 다시 양화진에서 마지막 석별을 나누다 / 법수치에 들려 주변을 정리하다 / 설악을 떠나 만수산 무량사에 도착하다 / 방랑을 끝내고 잠들다 / 왜 무량사에서 입적하였을까

?. 김시습, 손을 놓다

그의 글에서 ‘사람됨’을 살펴보자 / 그의 글에서 진심을 찾아보자 / 김시습,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보았는가 / 김시습의 안식처, 관동(關東)을 다시 생각한다.

부록
* 부록 1 국역 매월당 전집 분석
* 부록 2 매월당 김시습 해적이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자 : 허대영
시조시인
허대영(許(大寧) 시조 시인은 1949년,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영귀미면 속초리에서 출생하여 서울 용산초등학교, 선린중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춘천교육대학, 원주대학(현 원주 상지대학 전신)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강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도내 초·중·고등학교와 교육행정기관에서 41년간 근무하면서, 강원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영월교육장, 춘천교육장 등으로 일했으며, 2011년 8월, 홍천농업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강원도문인협회장, 강원도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원회이사장, 통일교육위원강원도협의회장,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강원대학교,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림성심대학교, 한국방송대 강원지역대학 등에 출강하였다.
현재, 춘천 해솔직업사관학교에서 탈북학생 검정고시를 돕고 있으며, 한국YMCA전국연맹 부이사장, 통일부 통일교육 전문강사 및 통일교육위원, 드림상록교육봉사단장, 한서남궁억독립운동사연구회장, 강원도선배시민추진위원장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동안 오천석(吳天錫), 남궁억(南宮檍), 김시습(金時習) 등 역사 인물(歷史人物)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관련된 저서로는 『오천석과 미군정기 교육정책(2009년)』, 『한서 남궁억에 제기된「친일 의혹 및 문제」에 대한 진실 연구(2021년)』, 『독립운동가 남궁억의 삶과 꿈(2022년)』 등 있으며, 최근에 『시조로 다시 읽는 매월당 김시습의 강원 배경 한시(2024년)』를 저술하였고, 이번에 『시조로 읽는 김시습의 강원 한시(2025년)』라는 제목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아동문학가(동시), 시인, 시조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시집 『다시 불어오는 바람(2011년)』, 동시집 『봄이면 매봉채는 진달래 바다(2011년)』, 시조집 『영월찬가(2009년)』, 『춘천찬가(2017년)』 등이 있으며, 가족을 위한 시집으로 『사랑한다 함은(2010년)』 외 5권이 있다. 또 성지순례기 『내가 사랑하는 그분을 찾아서(2016년)』와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2016년)』을 출간하였다.
교육부장관상(교육활동 유공, 1972, 1994, 1997) 국무총리상(통일교육 유공, 2007), 황조근정훈장(정년 퇴임, 2011) 한국사도대상(교육활동 유공, 2011), 동곡상(교육연구 유공, 2015), 한서대상(남궁억 연구 유공, 2019), 한국시조협회 문학상(2022), 호암시조문학상(2024), 강원특별자치도지사 공로패(향토문학 발전 유공, 2025) 등을 받았으며, 천원(天園, 오천석) 교육사상연구비 수혜자(2004)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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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시습은 방외인이고, 경계인이었다.

김시습의 생을 요약하여 보면 유가(儒家) → 출가(出家) → 환속하여 유가(儒家) → 출가(出家)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일반적인 유자들과 달리 불교의 진리를 인정했으며, 도학에도 심취했다. 실제 거처했던 곳도 출세간(出世間)과 세간(世間)을 오갔고,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유학(儒學)을 기본 이념으로 삼아 불교나 도교 같은 사상을 이단으로 여기고 탄압했는데, 이러한 체제에 반발하여 이단(異端) 사상을 추구하거나 세속적 현실을 초월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방외인(方外人)으로 불렀다. 김시습은 유교를 숭상하는 사회 질서나 규범의 밖에서 살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세상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방외인의 삶을 살았다.

김시습은 유불(儒佛)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논(論)하면서도 백성의 정신적, 경제적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유·불(儒佛)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으로 보면서, ‘이념·사상·종교나 조정(朝廷)의 정책이 모든 백성의 삶을 궁핍하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시습은 세속적 삶에도 ‘방외인인가’, ‘아닌가’의 경계를 오가며 살았고, 학문에도 유·불·도를 모두 수용하거나 그 경계에서 살았다. 그가 걸어가는 방외인의 길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기에(직접적으로는 부모, 아내, 자식이 없었다) 더 가능하였다.

김시습은 유불도(儒佛道)를 통섭하는 삶, 지금으로 말하며 간학문적(間學問的) 탐구와 실천에 심취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방(方) 안팎 드나듦에 있어 제약이 없던 경계인이었다.

관동(關東, 강원도)은 김시습의 고향이며 안식처였다.
김시습은 관동의 사나이이다. 관동을 뜨겁게 사랑하였다. 중흥사에서 유람을 시작한 이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낸 곳이 관동이고, 강원이다. 그의 긴 호흡은 산마루에서, 강나루에서, 골 깊은 산골짜기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행동하는 지식인, 그래서 아직도 함께 걷고 있을 김시습, 그러나 이제는 일단 놓아주자. 더 큰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김시습은 진정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김시습은 부당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은 진정한 고독의 지식인이었다. 김시습은 유자(儒子)로 출발하였으나, 세상을 등지고 절집을 떠도는 불자(佛子)가 되었고, 불자가 되어 산천을 가까이하다 보니 도인(道人)도 되었다. 그래서 김시습은 유불선(儒佛仙)을 통달하게 되었다. 이는 그렇게 되기 위하여 시도하였다고 보기보다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된 면도 있다. 우리의 삶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꿈은 열심히 꾸고, 세밀한 실천 계획을 세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자각(自覺)하고는 ‘이것이 순리인가 보다’하는 그런 것.

정주동은 『매월당 김시습 연구』에서 이렇게 적었다. “김시습(時習)의 일생(一生)은 방랑(放浪)의 일생이요, 병고(病苦)와 투쟁(鬪爭)의 일생이요, 궁수비한(窮愁悲恨)의 일생이요, 자학(自虐)과 저항(抵抗)의 일생이요, 시주광객(詩酒狂客)의 일생이었다” 라고….

김시습은 강원도를 뜨겁게 사랑했던 관동인(關東人)이다.
금강산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보니 몇 가지 새로운 자료가 있어 추가한다. 『국역 매월당 전집(강원도, 2000)』에는 없는 김시습의 관동 관련 시(詩) ‘관동명산(關東名山)’을 「북한 지리 정보」에서 발견하였다.

관동명산(關東名山) 북한지리정보

臺嶠靑萬疊 (대교청만첩) 오대산 푸르고 푸르러 일만 겹이요
楓缶白千層 (풍부백천층) 금강산 희디희며 일천 층이라.
國島波雷? (국도파뇌장) 국섬 파도 소리 우레가 마냥 장하고
叢亭石柱稜 (총정석주릉) 총석정 돌기둥은 모나기도 하여라.
沙明三日浦 (사명삼일포) 삼일포 모래밭은 깨끗하기도 한데
苔蝕六書陵 (태식육서릉) 봉우리에 새긴 여섯 글자엔 이끼가 꼈구나.
渤海連天闊 (발해연천활) 하늘에 잇닿은 듯 저 바다 넓고 넓어
三山藥可仍 (삼산약가잉) 삼신산 불로초도 여기서 캐겠구나!

「번안시조」

오대산은 푸르르고 일만 겹 겹쳐있고
금강산은 희디희게 일천 층 층계 있고
국섬의 우레 파도는 총석정에 이른다.

삼일포 모래벌은 깨끗해 보기 좋고
사선정 여섯 글자 세월이 쌓였구나!
삼신산 불로초 약도 이곳에서 캤겠네.

이 자료는 2004년 북한에서 발행된 ‘금강산 한자 시선(상)’에 수록된 자료로 ‘북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라고 하며 유의 사항에 안내하고 있다. 북한에서 발굴(發掘)한 시(詩)라는 이야기이다.

김시습은 이 시에서 오대산, 금강산, 국도, 총석정, 삼일포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시습은 이토록 관동의 아름다운 산하(山下)를 사랑하였다.

김시습 손을 잡고 다시 찾고 싶은 금강산
오늘날, 금강산은 2007년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 언젠가 다시 활짝 열려 한 번이라도 내 차를 몰고 표훈사 정류장까지 올라가 김시습의 발길을 따라 탐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마도 세 시간 정도면 갈 텐데….

국토적 통일 뿐만 아니라 민족 문화의 뿌리들을 자랑스럽게 정리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분명, 금강산은 다시 열려야 한다. 하여, 새로운 만남으로부터 더 아름다운 금강산 꽃을 활짝 피워야 한다.

한편, 금강산을 유람할 당시 김시습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찰에서 그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을 많이 지었는데, 당시 그의 작시(作詩)와 관련되는 일화(逸話)가 전해오고 있다. ‘김시습과 금강산(2018.08.23.)’ 이야기에서 인용한다.

“사찰 부근의 만폭동(萬瀑洞)계곡에는 수많은 폭포와 소(沼)들이 즐비해서 여름에 한참 소나기가 퍼부으면 순식간에 계곡물이 불어나 세차게 흘러내리곤 하였다. 시습은 이런 때면 으레 100여 장의 종이를 준비해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여울목의 너른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추악한 세조의 행위를 비판하는 시들을 썼다. 시 한 편을 쓰면 목이 메인 채 읊다가 여울물에 띄워 보내고, 또 한 편을 써서 읊은 다음 다시 띄워 보내곤 하였다. 이때 그가 하루에 쓴 시는 무려 백여 수에 달했다고 한다. 뒷날 누군가 이런 사실을 알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이 시(詩) 제목을 ‘누군가 김시습에게로’로 붙여보자.

‘작자 미상(未詳)의 누군가’가 김시습에게

세차게 흐르는 물 어디로 가나
굽이치며 흘러서 바다로 가지
푸른 하늘 한 조각 같은 종이쪽에
읊고 쓰고 쓰고 읊고 여념 없었네.

「번안시조」

세차게 흐르는 물 어디로 흘러 가나
굽이쳐 흘러 흘러 바다로 달리겠지
저 하늘 조각 종이에 읊고 쓰고 또 쓰네.

이런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왜 이런 기록이 남아 있느냐’에 있다. 남아(南兒) 26세면 아직 젊은 나이이다. 꿈도 있고 그 꿈을 이룰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계유정난 이래 세상이 온통 미처 돌아가고 있었다. 그 더러운 구정물에 몸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김시습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익히고,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당시 금강산에서 나오는 김시습은 마음이 많이 정리되었다. 집권층에 대한 증오에 가깝던 반감(反感)도 이십대 후반으로 가는 나이와 함께 상당히 무디어졌다. 그리하여 쓰고 또 쓴 후 물에 띄워 한양으로 보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 특히 내금강 관광이 다시 열린다면 김시습의 손을 잡고 김시습의 감성적 서정(抒情)으로 내금강을 천천히 걷고 싶다.

매월당은 지금도 관동의 어디에선가 걷고 있을 터…
김시습은 우리나라의 관북을 제외하고 관서, 관동, 호서, 호남, 영남 등 온 나라를 유람하였다. 그런 중에도 관동에는 여러 번 왔다. 관향(貫鄕)의 고향이고 맹모 같았던 어머니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간 머무른 것까지 고려한다면 충청남도 공주시 동학사 방문을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김시습은 단종의 위패(位牌)를 모신 공주 동학사(東鶴寺)에서 열리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에 참석하기 위하여 거의 빠짐없이 초혼각(招魂閣)을 방문하였다. 이런 특별한 예를 제외하고는 김시습의 발길이 제일 많이 머무른 곳은 관동이다.

김시습의 주거주지(主居住地)를 다시 살펴보자. 먼저 삼각산 중흥사는 과거시험 공부하던 곳이고, 수락산(水落山) 내원암 부근 폭천정사는 서울에 머물렀던 곳이며, 경주 금오산실(金烏山室)은 관향(貫鄕)의 본향(本鄕)이다. 강릉은 관향의 고향(故鄕)이고, 강릉(양양?)은 어머니를 모신 곳이었다. 춘천은 제자 학매의 고향이었고, 그 외의 산사(山寺)는 대개 나옹선사(懶翁禪師)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 많았다.

그중에서 지방으로 나들이할 때는 관동에 대한 발길이 가장 잦았다. 김시습에게 관동은 현실의 도피처요, 휴식처요, 공부하는 곳이요, 고향처럼 아늑함이 있는 곳이다. 또 비교적 서울에서 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수(山水)가 수려하다는 특징도 있었다.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시습에게 산은 세속에서 고뇌를 잠재울 수 있는 자연이 있었다. 사람의 세계에서는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부끄러움 없이 행하고 수없이 이루어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적인 사실이 끝없이 계속되고 반복되지만, 자연은 그냥 거기에 그 모습으로 늘 있었다.

김시습의 마지막 주 거주지는 양양군 법수치리 검달동의 띠 집이었다. 띠집은 띠풀로 지붕을 올린 집이다. 골 깊은 산골짝에는 논이 없어 논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볏짚이 있어야 이엉을 엮고 이엉을 지붕에 올려서 초가집을 짓는데 볏짚이 없으니 볏짚이엉 대신 산골짜기에 흔한 띠풀로 띠풀 이엉을 엮어 지붕에 올려 눈비를 막았다. 울타리와 대문은 짐승의 접근을 막을 정도면 되었기에 싸릿대를 엮어 세운 싸리문이면 충분했다.

검달동은 김시습의 놀이터요, 생활 공간이요,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는 농경지요, 목축지였다. 그리고 시문(詩文)이 솟아오르는 샘터였다. 그러니 자연은 김시습 영육(靈肉)의 모두였다. 이 모두를 충족시켜 주었던 검달동을 비롯한 관동은 김시습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었을까?

유람의 긴 세월 중에 전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거지로 삼고 유람하고 은거하며 영육이 숨 쉬던 혈육의 고장 강릉에서, 어머니의 본향 울진(지금은 경북이지만)에서, 김화(사곡촌), 금강산, 화천(사탄, 지금은 사내면), 춘천(소양강과 청평사), 인제(오세암), 홍천, 횡성(각림사), 원주(치악산), 평창(오대산, 상원사), 영월(청령포와 주천), 정선, 태백, 삼척, 양양(동산관, 낙진촌, 법수치, 낙산사, 검달동) 등등 관동의 산하(山河)를 누볐다. 이외에도 저자(著者)가 알지 못하는 곳은 또 얼마나 많을까?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으로서의 절의(節義), 뛰어난 재능, 선구자적 면모, 방외인(方外人)으로 사는 삶, 시대를 앞선 선각자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괴벽한 행동, 은둔생활에 대한 의문(은둔이냐 현실 도피냐) 등은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10대에는 학업에 전념하였고, 20대에 산천과 벗하며 천하를 돌아다녔으며, 30대에는 고독한 영혼을 이끌고 정사수도(靜思修道, 조용히 사색하면 도(道)를 수련하여 인생의 터전을 닦는 것) 하였고, 40대에는 더럽고 가증스러운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행동으로 항거하다가, 50대에 이르러서는 초연히 낡은 허울을 벗어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1492년,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 충청남도 홍산(鴻山, 현재는 부여) 무량사였다. 이곳에서 1493년(성종 24)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작은 키에 뚱뚱한 편이었고 성격이 괴팍하고 날카로워 세상 사람들로부터 광인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배운 바를 행동으로 옮긴 실천하는 지성인이었다. 이이 율곡도 ‘백 세의 스승’이라고 칭찬하지 않았던가.

영원한 관동인(關東人) 김시습, 일단 손을 놓아주자.
짧은 기간이었고, 애당초 감히 손을 대서는 안 될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기왕 손을 댄 김에 관동 곳곳에 숨어 있던 김시습 시혼(詩魂)의 샘(泉)을 더 많이 깨워 온 나라를 향해 도도하게 흐르게 하고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 보니, 다 파내지는 못했어도 이제 마라톤 출발선에는 함께 손잡고 서 있을 만큼은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지루한 씨름을 하며, 완주(完走)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시습의 ‘자회(自悔)’를 읽어보자.

스스로 후회하며[自悔] : 64

詩酒淸狂四十年 (시주청광사십년) 시와 술로 마음 비우고 미처 살기 사십 년
如今往事更依然 (여금왕사갱의연) 이제 와서 지나간 일 생각해도 그대로 하리
迷途末遠應須覺 (미도말원응수각) 길 잃어도 멀리 벗어나지 않았으니 응당 깨닫기만 한다면
擬把□□學地仙 (의파□□학지선) □□잡고서 지상선(地上仙) 배움만도 하여라.

「번안시조」
시주(詩酒)로 마음 비워 미처 살기 사십여 년
내 삶이 반복돼도, 지금처럼 살아가리
깨닫고 지상선(地上仙) 닮아 옳은 길을 걸었네.

지상선(地上仙)은 하늘로 승천하지 않고 이 세상에 머물며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선을 의미한다. 김시습은 지상선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뜻깊은 작품인데, 시어(詩語) 두 자가 누락된 것도 계획적인 듯 기가 막히게 빠져 있다. ‘□□잡고서 지상선(地上仙) 배움만도 하여라.’라고 하였는데 과연 빈 자리에 어떤 시어가 채워져 있었을까? 매우 궁금하다.

이 시는 만년에 쓴 작품이다. ‘시주(詩酒) 사십 년’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거의 육십이 다 되어 쓴 작품이다. 제목을 자회(自悔)라고 썼으나 실제로는 ‘이제 와서 지나간 일 생각해도 그대로 하리. 길 잃어도 멀리 벗어나지 않았으니 응당 깨닫기만 한다면….‘라고 하였다. 잘 살았고, 올곧게 살았다고 자위(自慰)하고 있다. 자기의 삶에 만족한 김시습, 역시 ’김시습‘답다.

일단 여기서 잰걸음을 멈추고 김시습의 오른손을 놓아주자. 그래도, 관동(關東)의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휘적휘적 걷고 있을 매월당. 그 이름 김시습! 그가 말한 천년 뒤가 아니라, 영원히 영원하리.

저자의 머리말

김시습, 우연히 만나 필연(必然)이 되다

김시습, 만나기는 여러 차례 만났다.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의 작가로 지나가듯 만났다. 두 번째도 강릉의 매월당김시습기념관에서 스치듯이 만났다. 세 번째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고서점에서 정말 우연히 만났다. 구하는 책이 없어 이런저런 도서 산책을 하던 중에 『매월당 김시습 연구』가 눈에 띄었다. 네 번째는 한국시조협회에서 펴내는 『시조』 지에 게재한 「강원도 배경 한시의 유적지를 찾아서」를 쓰면서 ‘번안시조’를 통해서 만났다. 그때는 김시습뿐만 아니라 강원도를 배경으로 하는 대표적인 여러 한시를 현대시조로 번안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이 다섯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 만남은 대부분의 학생이 접하는 만남이요, 매월당김시습기념관에서의 만남은 관광 중 지나가는 만남이요. 세 번째는 『매월당 김시습 연구』라는 도서를 통한 머릿속의 만남이요, 네 번째 만남은 한시를 현대시조로 번안하는 과정을 통한 가슴 속 단타(短打) 만남이고, 이번에는 매월당의 강원 배경 한시를 현대시조로의 번안하는 뜨거운 만남이니, 이는 온몸으로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전체적으로는 한 발짝 김시습에게 가까이 다가가다가 지난해에는 헤어질 수 없는 주제로 만났으니 첫 만남은 우연이었으나 결국은 끈질긴 인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은 ‘이렇게 더운 날들이 계속되는 건 처음이다’라고 힘들어하였지만, 1905년에 있었던 치욕의 을사늑약(乙巳勒約) 두 번째 회갑을 뼛속 스미는 아픔으로 맞이한 저자의 이번 여름은, 김시습과 동행하였기에 시원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 글을 마치면서 극복할 수 없는 무거움과 두려움이 어깨를 누른다. 저자의 수준에서는 너무 벅찬 상대를 만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였다는 부끄러움이다. 더 깊은 연구를 통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 보리라. 많이 읽어보시기를 바라며, 아울러 많은 지도 편달을 기다린다.

평생 서예와 글을 즐기셨던 영원한 문인 아버님(仁(園, 許南圭), 언제나 크신 자애로움으로 올곧은 길을 가게 인도하셨던 어머님(朴玉順), 그리고 늘 은은한 사랑으로 언제나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이끌어 준 아내와 세 딸에게 이 책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아울러 이 책이 발간될 수 있도록 후원하여 준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문화재단, 그리고 어려운 편집 과정을 거쳐 예쁜 책으로 재탄생시켜 준 도서 출판 윈클루에 고마움을 전한다.

2025년 여름, 춘천시 석사동 가천우거(佳泉寓居)에서
허대영 쓰다.

읽기 도움 자료 : 이렇게 썼으니, 이렇게 읽으세요

* 어떻게 썼을까?

첫째, 통사적(通史的) 시각(視覺)으로 썼다. 김시습의 생애와 시(詩) 작품을 통사적(通史的)으로 들여다보되, 관동(關東)에서의 삶과 관동 배경 작품에 중점을 두었다.

둘째, 김시습 해적이를 먼저 정리하였다. 김시습의 생애를 분석하여 관동에 은거하거나 유람하였던 시기를 유목화(流目化)하였고, 그 사이에 있었던 관동 이외의 삶도 요약 정리하여 김시습의 일생을 통찰(洞察)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셋째, 『국역 매월당 전집』을 분석하였다. 매월당 작품 분석은 『국역 매월당 전집』(2000, 강원도)을 기본으로 하고, 정주동의 『매월당 김시습 연구』(梅月堂金時習硏究, 1965년 판) 와 심경호의 『김시습 평전』(2021년 판)을 참고로 하였으며, 그 외 많은 참고문헌의 도움을 받았다. 또 필요한 경우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여 활용하였다.

넷째, 강원 배경 한시를 분류하였다. 『국역 매월당 전집』을 분석하여 강원 배경 한시를 분류해 내고 의미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시대별로 정리하되 필요한 경우, 주제별로도 정리하였다.

다섯째, 강원 배경 한시를 국문으로 번역하였다. 『국역 매월당 전집』(2000, 강원도)의 번역을 주로 활용하였으며, 불가피할 경우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사전, 그리고 다른 관련 문헌의 자료를 응용하고 참고하였다. 해석은 가능하면 직역(直譯)하되 필요한 경우, 의역(意譯)도 하였다. 선정된 시(詩)에 대해서는 시의 배경이나 해설 등을 곁들여 이해를 도왔다.

여섯째, 한시를 시조로 번안하였다. 제시된 김시습의 한시와 번안 시조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먼저 한시의 제목을 적고 한자 제목을 병기(倂記)하였다. 제목 오른쪽의 숫자는 『국역 매월당 전집』에 수록된 해당 페이지이다. 한시(漢詩)에 이름이 없는 것은 모두 김시습의 작품이며 김시습의 작품이 아니면 제목 앞에 원작자의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한 줄에 한시 원문(原文), ( )안에 한글 음독(音讀), 그리고 한글 해석을 수록했다. 마지막으로 현대시조로 번안(飜案)하였다. 이때 전문(全文)이 긴 장시(長詩)일 경우, 필요한 부분만 뽑아 번안하였다.

* 어떻게 이해할까?

첫째, 주석(註釋)이다. 주석은 모두 본문에 포함하였으며, 상식적인 것은 주석에 연연하지 않았다.

둘째, 번역문은 한글을 원칙으로 하고, 한문을 병기(倂記)하였다. 번역문의 문장은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인명 및 어려운 용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에 따라 ( )안에 한자를 함께 적었다. 원본의 탈자(脫字)는 □로 표시하였다.

셋째, 한글맞춤법을 준용(準用)하였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한글맞춤법에 따르되 시적 표현이나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다소 변화를 주었다.

넷째, 연대 표기는 서기를 원칙으로 하였다. 서기 연대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묘호, 연호는 ( )안에 표기하였다. 단, 문장의 내용상 묘호나 연호를 그대로 본문에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우는 그대로 표기하였다.

다섯째, 부호는 다음과 같이 사용하였다. ( )에는 음과 뜻이 같은 한자를 묶었고, [ ]에는 음과 뜻이 다른 한자를 묶었다. 그리고 “ ”에는 대화체나 인용문을 묶었고, ‘ ’는 재인용이나 강조 부분을 묶었다. 또 『 』에는 책명을 묶었으며, 「 」에는 논문이나 글의 제목을 묶었다.

여섯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진·지도(地圖)·도표(圖表) 등을 필요한 곳에 첨부하였다.

이천이백자(二千二百字)로 요약한 김시습의 생애

김시습은 143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재성이 드러났으며 조부 및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5세 때 세종께서 시험을 보도록 하였을 때 깜짝 놀랄 시를 지어, 이때부터 오세신동(五世神童)으로 불렸다. 15살부터 3년간(1449~1452) 강릉(양양?)에서 어머니 시묘살이하였으며, 서울로 돌아와 과거시험을 보는 등 관직에 뜻을 두었으나, 계유정난 등으로 왕도정치가 실종하자, 서책을 불태우고 은거와 유람을 시작하였다. 첫 은거지(1455~1457)는 강원도 김화(현 철원군) 사곡촌이었다.

이후 청령포로 유배 갔던 단종이 사망하자(1457), 동학사에서 단종 초혼을 한 후 조선 팔도 유람(1458)에 나섰다. 첫 방문지는 관서 지방이었으며, 이어서 관동 지방을 유람하였다. 관동 지방은 조선 최고의 명승지 금강산과 원주, 평창, 강릉 등 관동 남동부를 거쳐 영월, 주천(酒泉)을 지났으며, 이어서 호서지방과 영남지방을 두루 유람하였다. 이후 신라의 고도 경주에 정착하여 9년(1462~1470)간을 머무르며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완성하였다. 또 짧은 기간이지만 어머니(울진 장씨)의 본관인 울진을 포함하여 강원 동남부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관서, 관동, 호서, 금오 지역을 유람하면서 쓴 글로 사유록(四游錄)을 엮어 남겼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폭천 부근에 정착하였다. 폭천정사에서 지낸 약 12년(1471~1482)간은 김시습으로서는 변신을 위한 다양한 접근을 하였던 시기였다. 한때 벼슬에 관심을 두고 여기저기 눈을 돌리기도 하고, 환속(還俗, 1481)하여 고기를 먹고 조상들의 제사를 지냈으며, 두 번째 아내와 재혼하는 등 삶에 변화를 추구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이때 춘천에서 온 사람(아마 학매일 것이다) 의 이야기를 듣고 춘천십경(春川十景)을 썼다.

이어, 폐비 윤씨 사건[甲子士禍]으로 정국이 혼란해지자, 1483년, 두타(頭陀)의 모습으로 다시 서울을 떠났다. 이번에는 화천 사탄, 춘천 청평사, 인제 오세암, 홍천을 거쳐 평창 오대산과 강릉으로 발길을 향하는 관동 중동부를 지나는 길이었다. 이후 강릉을 지나 동산현, 낙진촌을 거쳐 양양 법수치 검달동에 주로 은거하며 양양 부사 유자한과 잦은 교유를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서울을 떠나 관동에 7년(1483~1490)이나 머물렀으나 생활은 매우 궁핍하였다. 그 사이사이 거의 해마다 음력 3월과 10월이면 공주 동학사에 들러 단종의 제를 지냈다.

조선팔도 유람을 이야기할 때 김시습을 따라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나 『대동여지도』의 김정호가 전국을 다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김시습보다 300~400년 뒤의 일이다. 김시습은 조선팔도를 유람하며, 때로는 은거하며 수많은 시문을 남겼으며 유·불·도(儒佛道) 모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몸은 자유로웠지만,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방외인이었다.

만년(1491)에 다시 서울 중흥사에서 지내다가 설악을 거쳐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부여의 만수산 무량사(당시는 홍산군(鴻山郡))이었으며,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으니, 59세(1493) 되던 해 이른 봄이었다. 평생, 단종을 추모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살면서 단 한 번도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사후(死後), 1782년(정조 6)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784년(정조 8)에는 청간(淸簡)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강릉에 매월당 김시습기념관이 있다.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이며, 2,200수가 넘는 한시를 남긴 조선 초기의 문인이자 학자이자,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머리에 든 것은 많았으나 제 길을 가지 못하게 되자, 탕유(湯裕)와 은거(隱居)의 유람 생활을 통하여 전국을 두루누비고, 자연을 벗하여 시문(詩文)을 즐기면서, 평생 꿈을 꾸며 외롭게 살다 간 늙은이. 그 이름 매월당 김시습!’

자! 지금부터 김시습 오른손을 잡고 시를 읊으며, 시조로 번안하며, 관동 유람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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