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장은 윤봉길의 조부가 덕산에 정착했을 때부터 윤봉길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의 생애를 다루었다. 한학을 배우고 서당을 열어 생계를 잇다가 야학을 세우고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던 청년 윤봉길의 삶이 잘 소개되어 있다. 유족의 도움으로 윤봉길 의사의 제적등본이 학계 최초로 공개되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본명은 봉길이며, 후에 호적 정리하며 항렬을 따 우의禹儀라 하였다. 자字는 용기鏞起이며, 호號는 매헌梅軒이다. (본문)
2장은 1930년 봄 중국 망명길에 올라 칭다오 중원세탁소 점원을 거쳐 1931년 봄 상해에 도착한 이후 약 일 년여 간의 삶의 궤적을 다루고 있다.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가다가 검문에 걸린 이야기, 칭다오의 일본인 세탁소에서 점원으로 일한 이야기, 상하이 도착한 항구 위치,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 김구를 만난 이야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장소,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던 시기의 모습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두 번째 날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을 답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木之內 誠이 편저한 책 「상하이 역사 가이드 맵」에서 ‘大韓民國臨時政府所在地[初期]’라는 글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재지’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주소나 확인하자고 찾아간 곳이었는데, 그곳엔 떡하니 〈대한민국임시정부탄생지구지〉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학계에서는 그간 임시정부가 수립된 1차 임시의정원 회의 개최 장소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본문)
3장에서는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 의거 전후의 매헌의 발자취를 비교적 촘촘히 따라가 보고 있다. 일본인 밀집 지역이었던 홍커우 지역의 야채 장수에서 한인애국단 전사가 되고, 홍커우 공원(현재의 루쉰 공원) 거사를 성공시킨 후 양수푸 헌병대 군사령부 감옥에 수감되기 까지, 상하이에서 매헌의 삶을 복기해볼 수 있는 곳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김해산 거주지, 홍커우 마켓, 루신 공원 내에서 의거지로 추정되는 3곳에 대한 증언, 강남기계제조총국, 일본해군특별육전대사령부 구지, 복민의원 등 상하이 곳곳에 산재한 윤봉길 의사 관련 유적지들을 꼼꼼히 답사하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무엇보다도 그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양수푸 헌병대 감옥, 곧 상하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점은 상하이에서 매헌을 기리고 선양하는 일의 시야가 더욱 넓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루쉰 공원을 답사하는 필자 일행의 최대 관심은 의거 현장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낙 선생은 세 가지 장소를 꼽아 주셨다. (본문)
방삼단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50여 년 되어 보이는 나무 뒤에 3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일본헌병사령부구지日本憲兵司令部舊地이다. 건물에 특별한 표지가 작게 붙어 있다. ‘특호特?’이다. 특호라는 말은 상하이에서 거의 보기 어렵다. (본문)
또한 저자들은 당시 홍커우 공원에서 지근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면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윤봉길 의거, 나아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루쉰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오늘날 루쉰 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홍커우 공원 안에는 매헌이 찾은 ‘죽을 자리’와 루쉰의 무덤이 한자리에 있다. 이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루쉰의 침묵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본문)
4장은 1932년 11월 일본 오사카로 끌려가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순국하시고, 해방 후 유해 봉환 및 순국기념비와 암장지적비 건립이 이루어진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윤봉길 의사 순국 및 유해 수습, 봉환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오전 9시 30분경부터 유골을 수습하고 수습한 유골을 알콜로 세척했다. 201조각의 뼈를 수집하였다. 내가 해부학 교실에서 배운 바로는 208조각의 인체의 뼈가 정상이라고 한다. 7조각이 부족했다. 7조각이 미수집 된 것이다. 미수습 된 유골 7개는 손뼈 등이 고문으로 상하여 13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 뿌리 속에서 없어진 것이다. (본문)
5장은 매헌의 농촌계몽운동과 평화 사상을 이어가고 있는 (사)매헌 윤봉길 월진회의 100년사를 고찰한다. 덕산에서 열리는 매헌 윤봉길 평화축제를 매개로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등 동북아 각국이 평화교류를 하는 모습을 알리고 있다. 또한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를 비교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6장은 중국 각지의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에서 보직을 맡았던 중국인들이 윤봉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을 모은 것이다.
몽골에서 ‘윤봉길 의사 길’을 명명하는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었다. 2008년 월진회가 몽골 아르항가이를 방문하여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의거한 윤봉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윤봉길로尹奉吉路’ 명명을 요청하자, 아르항가이 의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2010년 체체를렉 시가 윤봉길 거리 명명을 의결하여, “대한민국의 민족의 영웅인 윤봉길의 길로 명명한다.”라고 의결한 문서를 월진회가 수령하기도 했다. 체체를렉 시청 앞 800미터가 ‘윤봉길로’로 명명된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본문)
중국에서 일본 고관이 사살된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한 것이며, 두 번째는 윤봉길이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사살한 것이다. 두 명 다 조선의 방랑 의사였다. 조선 사람이 중국 땅에서 이런 장거를 한 것은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들이 중국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항상 생각한다. (본문)
우리는 세계평화와 한ㆍ중 우의를 위하여 영웅이신 윤봉길 의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