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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해변엔 마감이 없다
문어 / Shall we move / 길고 흰 책 / 연화정도서관 / 소멸하지 않고 서성거리는 / 카이트보드 / 칠곡 / 최후의 심판 /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 별이 빛나는 밤에 / 숨은그림찾기 / 나홀로나무 / 세탁 / 몽돌

2부 서로의 이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거가대교 / 재재在在 / 손 / 희극과 비극 사이 / 구조 조정 / 어쩔 수 없는 일 / 목화 / 시소 / 점, 占 / 안국역 6번 출구 / 그러니까 / Kiss / 테베를 여는 100개의 문 / 간단합니다 /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 붉은점모시나비 / 체라푼지 / 바다 고양이 식당 / 무언극 / 해어화 / 나를 닮은 사람 / 싱잉볼 / 나 없이 너는

3부 바나나처럼 휘어 있는 소문
코끝의 도시 / 모르는 사람들 / 선 / 당신의 계절 / 고속도로 / 게르니카 / 거품에 대하여 / 사과는 없었다 / 종이 피에로 / 파이프오르간 / 코시안 / 무엇이든 위조해 드립니다 /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 초 / 포말하우트

해설 다시 쓰는 일은 다시 사는 일 | 고봉준(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성은주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창』, 그림책 『수박씨 발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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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상처의 자리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삶과 시

성은주의 두 번째 시집은 ‘관계’에 대한 지향이 특징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거대한 관계의 집합체이며, 그런 한에서 관계는 이미-항상 우리의 존재 조건이다. 사실 ‘관계’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혼자 있다고 느낄 때조차 사실은 나 아닌 존재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관계’를 지나치게 인간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 아닌 것, 가령 바람, 햇빛, 구름, 공기 등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보다 인간 아닌 존재들과의 관계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가 종종 자신을 모든 관계에서 단절된 존재, 요컨대 단독자로서의 개인이라고 상상하는 이유는 인간 아닌 존재의 존재함, 즉 있음(being)을 부재로 인식하거나 ‘관계’를 지나치게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근대적 사고, 그리고 모든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삶을 고립되어 살아가는 과정으로 느끼게 만드는 도시라는 현대적 삶의 조건, 이것들이 바로 관계에 대한 단절과 인식의 왜곡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은주의 시는 윤리적이다. 그녀의 시는 세상의 경계로 내몰리는 존재들의 삶, 유용성을 인정받지 못해 버려지는 사물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세계와의 ‘불화’를 강조하는 동시대 젊은 시인들의 시와 달리 도시 문명이 강제하는 단자화된 분할을 넘어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향해 따뜻한 손을 내뻗는다. 시인은 고독한 독주(獨奏)보다는 “느린 합주”(「파이프오르간」)을 선호하며, 세상과 타인을 향해 날카롭고 뾰족한 모서리를 내밀고 있는 형상보다는 몽돌의 “둥근 행성”(「몽돌」)에 한층 친밀감을 느낀다. 그녀의 화자들은 자신이 이러한 지향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할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가령 「손」의 화자가 그렇다. 이 시의 화자는 대학 병원 화장실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사내가 방향 잃은 채 손을 놓고 있”(「손」)는 모습을 외면한 후 “불쑥 들켜버리는 얼룩 같은 부끄러움”(「손」)을 느낀다. 이러한 윤리적 태도는 단자화된 개인의 삶을 강제하는 도시의 질서에 반(反)하는 몸짓이다. 접기

시인의 말

바다를 가르는 배 한 척처럼
삶에 밑줄을 긋는다

물때 묻은 밧줄로
잠시 여기 묶어 둔다

책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이해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

시간의 가지에 돋아난 가시를 잘라내는 가위

이길 수 없는 게임처럼
화분에서 꽃이 시들듯
같이 죽어가는 것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고
언젠가 지워지고
사라지고
잊히는

그래서 쓸쓸한 게 아니라
그래도 쓸쓸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일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사이 맴돌다가
바퀴를 굴려보면 세상 밖으로 떠밀리는 자국들
- 「어쩔 수 없는 일」 전문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앉아서 우린 구부러진 골목을 바라봤지요

이삿짐 트럭 옆으로 배달 오토바이 옆으로 가로등이 켜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우리 여기서 살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책장 한 모퉁이에 널어놓은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지
거기 누구 없나요
외쳐도
열리지 않는 이웃집 대문이 있어요

꾹 눌러놓은 빨래집게 같은 사람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보이는 열쇠를 쥐고
고층으로 올라가 구멍 찾는 흉내라도 내야죠

한쪽으로 휩쓸려 가더라도 겁내지 말고 옆에 앉아요
- 「코끝의 도시」 전문

불쑥, 안국역 6번 출구에 적힌 목소리를 꺼내 들었지요 주머니에 넣을까 하다가 입속에 넣었어요 동그랗게 말아 껌처럼 부풀려 봤죠 선물 받은 줄자로 우리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재 볼까요 결국 집 앞이군요 여러 날 동안 함께 다정해지기로 해요 풀 같은 당신이 누워 있네요 같은 방향으로 창문이 열리고 의자 밑에 있던 먼지가 자리를 옮겨요 서로의 이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이어 가요 사연 많은 사람의 긴 목 같은 골목을 끝까지 걸어 볼까요 손을 주세요 손을 잡아도 감정이 안 생기면 어쩌죠 계단 오를 때 노래를 불러 줄게요 나는 고음을 못 내요 모든 고음이 신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이 저음을 좋아한다면 고개를 더 숙여 볼게요 무슨 죄를 지었냐고요 평생 꽃이 시들지 않게 사 준다는 거짓말을 했지요 다 주겠다는 억지를 부린 적도 있고, 알면서 모른 척한 일도 많아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당신이 내게 올 수 있겠어요 여기와 거기를 건너는 이 밤, 또 하나의 발자국이 깊게 찍혀요 요즘 물건을 사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요 포장 비닐을 뜯다 말고 다시 접어 버려요 그만큼 결정이 어려운 걸까요 우린 미루지도, 버리지도, 지우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오늘도 수많은 목소리가 드나드네요 당신이 들어오고 내가 나가는, 내가 들어오고 당신이 나가죠. 겹쳐진 회화會話가 회화繪?처럼 번져요 선을 넘어 더 크게 번지네요 많은 눈물을 쏟았군요 이제,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 「안국역 6번 출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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