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무엇을, 어떻게, 왜
우리를 무대로 이끄는 물음들
『무엇을, 어떻게, 왜』는 배우이자 창작자 성수연이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공연 예술이 통과한 급격한 전환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팬데믹과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무대를 붙잡아 온 창작자들은 어느 순간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떻게 변화하며 어떤 책임을 품게 되는지를, 현장을 살아 낸 사람들의 언어 그대로 담아낸다. 단순한 인터뷰집을 넘어, 예술이 작동하는 조건과 생태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 주는 동시대의 증언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21~2024년 웹진 『연극in』에 실린 대화를 바탕으로, 2025년 초 다시 만나 진행한 두 번째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여러 해에 걸쳐 쌓인 시간의 결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번져 나오며,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흔들리고 갱신되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배우와 연출가뿐 아니라 무대감독, 수어통역사, 관객 등 무대를 지탱하는 다양한 자리를 담아낸 점도 이 책만의 폭과 깊이를 만든다. 현장의 공기를 섬세하게 담은 사진작가 김신중의 이미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더해진 인터뷰들은 한 편의 단막극처럼 흘러가며 독자는 페이지마다 호흡과 조명을 느끼듯 각자의 무대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이 책의 중요한 구조이자 질감이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기마다 창작자들은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었고, 그때의 무게와 고민은 지금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이 책은 그 변화의 궤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포착한다. 창작자가 어느 위치에 서 있었고, 무엇을 향해 걸어가려 했는지, 한 시기의 연극계가 품은 집단적 풍경과, 각자가 걸어가는 속도의 차이가 지형도처럼 드러난다. 독자는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며, 한 인물이 방향성을 찾아가는 순간들, 때론 미세하게 흔들리고 과감하게 돌파하기도 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인터뷰의 형식 또한 이 책에서 새로운 색을 띤다. 질문과 답변의 도식에서 벗어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서로에게 응답 없는 질문을 건넨다. 문장 사이사이에 잠긴 정적, 흔들리는 공기의 결은 지면에 남지 않지만, 질문이 질문을 부르는 뜨거움과 살아 있음은 또렷하게 스며 있다. 질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이 책은 그 조용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가
타인의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고,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하여
저자 성수연은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이어 가는지 듣고자 이 프로젝트에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터뷰 속에서 그는 질문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감각과 사유 또한 함께 드러낸다. 대화가 “아플 정도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상대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일”, 내 세계를 내어주며 “잠시 무방비해지는 일”이라는 말처럼, 그의 관심은 무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기록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책에 등장하는 스물한 명의 창작자는 저마다 다른 궤적을 따라왔지만, 예술과 삶에 대해 단단한 질문을 품는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팬데믹 속 연이은 공연 취소를 겪으며 “연극은 왜 있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이가 있고, 비거니즘, 퀴어,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토대로 무대에서 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게 하는 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또 다른 이는 관객으로서 무엇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각 인터뷰에서는 한 사람이 작업 세계를 어떻게 구성해 왔는지, 특정한 선택과 오랜 집요함이 어떤 장면을 만들어 왔는지 또렷하게 드러난다. 조심스럽지만 강렬한 고백부터 장광설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제각각의 속도와 리듬으로 이어진다.
사진 작업을 맡은 김신중은 음악과 공연 현장을 오가며 인물의 호흡을 포착해 왔다. 그의 렌즈는 인터뷰 문장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온도, 말과 말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여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각 장을 살아 있는 장면으로 일으켜 세운다. 창작자의 얼굴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돕는 그의 사진은, 이 책에서 인터뷰와 함께 숨 쉬는 또 하나의 대화다.
예술가들의 질문은 결국 무대 밖을 사는 우리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퀴어, 페미니즘, 접근성, 기후변화 등 동시대의 물음들은 이들의 경험과 고민을 통해 새로운 경계로 확장된다. 『무엇을, 어떻게, 왜』는 경계를 허문 그 자리에서 질문이 새롭게 피어오르는 여백을 건네며, 우리 각자가 서 있는 무대를 천천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