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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에밀 졸라 (Emile Zola)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 귀화한 이탈리아인 토목기사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로 옮겨가 프로방스 자연에 깊이 물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비록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며 가정에 위기를 맞았지만, 중학교 시절 미래의 위대한 화가가 될 폴 세잔과 친분을 나누고 열여섯 살에는 처음으로 드라마와 시를 습작했다. 열여덟 살에 파리로 돌아가 창작을 향한 열정을 이어갔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스무 살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지식인들과 교류한 졸라는 몇몇 신문에 처음으로 기고문, 서평, 콩트 등을 실으며 본격적으로 작가,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대표작인 『테레즈 라캥』(1867)은 비평가들로부터 “포르노 같은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파헤치는 그의 첫 자연주의 소설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이후 졸라는 『목로주점』(1877), 『제르미날』(1885), 『인간 짐승』(1890) 등 총 스무 권에 달하는 ‘루공 마카르 총서’를 20년에 걸쳐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써 자연주의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한 졸라는 동시대 작가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1898년에는 프랑스 언론사상 가장 유명한 기고문이 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했다. 고등사범학교 학생들, 작가들, 예술가들, 과학자들, 교수들의 대대적 지지가 잇따랐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졸라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중죄재판소로 소환된 그는 열다섯 차례의 공판 끝에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아 런던으로 원하지 않는 망명을 떠났다. 졸라는 1902년 파리의 자택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을 두고 반드레퓌스파가 저지른 암살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졸라의 장례식에서 아나톨 프랑스는 “인류 양심의 한 획”인 졸라를 기렸다. 사망할 때까지 노동자와 인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시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1908년에 졸라의 유해는 시민의 애도 속에서 위인들의 안식처인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역자 : 이미혜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의 불문학 수용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불문학과 예술사를 가르쳤고 현재는 집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경제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는가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의 역사』, 『이미지의 시대』, 『예술의 사회경제사』, 『사랑의 예술사』, 『초상화』 등 예술 관련 저서와 소설 『사라진 서재』, 자녀 교육서 『아이를 살리는 공부, 아이를 죽이는 공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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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 집안의 역사로 시대 전체를 해부한 졸라
그 거대한 연작 속에서 발견된 가장 인간적인 내면의 기록,
『사랑의 한 페이지』

“그녀는 자신의 죄가 소중했다.”(본문)

에밀 졸라는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회 구조와 환경, 유전적 조건이 한 인간의 성격과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냉정한 관찰로 기록했다. ‘루공 마카르 청소’가 바로 그 관찰의 기록으로, 한 집안의 혈통을 따라 제2제정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를 해부하듯 보여준다. 부르주아 가정의 사교계부터 도시 빈민의 거친 생활, 성직자와 정치인의 위선, 병증의 유전, 산업 노동자의 투쟁까지 모든 계층과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 안에서 맞물리면서 졸라는 한 세계를 창조해 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졸라는 인간을 낭만적 주체가 아닌 복잡한 조건들의 총합으로 바라보고, 그 조건들이 일으키는 갈등과 욕망, 비극과 희망을 사실적인 언어로 압축해 냈다. 루공 마카르 총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시대의 문화를 통째로 경험하는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내부 구조를 해부하듯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이 연작의 여덟 번째 작품이 『사랑의 한 페이지』다.

『사랑의 한 페이지』는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조용하고 내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사랑’ 이야기다. 졸라가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 대신 인간 감정의 미묘한 떨림에 집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총서의 다른 작품들이 거대한 산업, 빈곤, 계급 갈등 같은 외부 세계의 충돌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했다면, 이 소설은 그 초점을 좁혀 파리의 한 언덕 위에서 살아가는 한 미망인과 그녀의 병약한 딸, 그리고 한 의사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감정소설이 아니다. 루공 마카르 가문의 계보 속에서 이어지는 신경질적 기질과 유전적 요인이 아이 ‘잔’의 병약함과 엄마를 향한 질투, 정서적 불안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연작의 전체 구조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다시 말해 『사랑의 한 페이지』는 사회적 현실을 다루는 졸라의 전작들과 결을 달리하면서도, 인간 내면과 유전이라는 연작의 근간을 잇는 독특한 한 권으로 자리하게 된다. 졸라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탐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거나 구원하는지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다.

아름다운 미망인 엘렌,
집안의 광기를 물려받은 딸과 황홀한 사랑을 선사해준 남자 사이
비극의 삼각 지대에 서다

“오늘 그녀에게는 타락이 필요했다.
그녀는 당장, 그리고 심각한 타락을 바랐다.”(본문)

소설은 남편을 잃은 뒤 파리의 구석진 언덕 위에서 딸 잔과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미망인 엘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잔은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기질을 타고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불안해하며, 발작이 찾아올 때면 밤낮이 뒤바뀐 듯한 긴장과 공포가 집 안을 뒤덮는다. 어느 날 밤 잔이 심한 발작을 일으키고, 엘렌의 집에 세를 내준 젊은 의사 앙리가 급히 찾아와 아이를 치료하게 된다. 결국 의사는 아이가 낫기까지 아이의 엄마인 엘렌과 고요와 긴장 속에서 밤새 아이의 곁을 지키고, 그 과정에서 엘렌과 의사 사이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서서히 싹 틔우기 시작한다.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이 첫 만남은 이후 세 사람의 위태롭고 병적인 관계를 규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엘렌은 의사에게서 남편을 떠나보낸 후로 잊고 살았던 안정감과 설렘을 느끼고, 의사는 엘렌의 침착함과 고요한 기품 안에 숨겨진 정열의 온도를 감지한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에 생겨나는 이 변화를 직감적으로 느끼며, 자신에게만 향해온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점점 강하게 휩싸이고 만다.

『사랑의 한 페이지』가 단순히 ‘로맨스’ 장르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엘렌과 의사 사이에 피어난 사랑과 정열이 잔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기묘하게 뒤엉키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질투로 인한 발작은 어머니와 의사의 관계를 격동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한순간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아픈 아이를 겨우 잠재우고 방의 한구석에서 은밀히 나누는 사랑의 밀담은 어머니 엘렌에게 비할 데 없는 관능을 선사하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변화를 서서히 알아차리며 압박해 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의사의 아내 쥘리에트와 그녀의 사교계 친구들, 그리고 파리 상류층의 가벼운 불륜 문화가 등장하면서 엘렌이 속한 세계와 의사가 속한 세계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렇듯 에로스적 사랑과 모성, 질투와 죄책감이 하나의 매듭처럼 얽히며, 이 이야기는 로맨스, 미스터리, 코미디, 추리 등 다양한 장르를 분주히 오간다.

한 페이지의 사랑이
한 인생 전체를 다시 쓰기까지

『사랑의 한 페이지』는 거대한 사회적 서사 위에 구축된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 가장 사적이고 조용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 여성의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사랑과 죄책감, 병든 아이가 느끼는 불안과 질투, 부르주아 사회의 가벼운 욕망과 빈민층의 절박함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긴장은 곧 인간이 어떤 조건 속에서 사랑하고 흔들리고 무너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졸라는 이 소설에서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파리의 빛과 바람, 고지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 아픈 아이가 누워 있는 푸른 방의 정적 같은 일상의 장면 속에 감정의 균열이 조용히 스며들게 만든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소리 없이 시작해 서서히 무게를 늘려가며, 결국 독자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사랑의 한 페이지』는 한 집안의 유전적 역사라는 거대한 기획 안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다시 쓰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책을 덮고 나면, 사랑이 누구에게 어떤 모양으로 찾아오는가, 그리고 한 페이지의 사랑이 어떤 대가를 남기는가, 라는 질문이 잔향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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