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7쪽 ‘여는 글 - 말맛을 일깨우는 단 한 글자’ 중에서
달랑 한 글자로 수많은 뜻과 꼴을 아우르는 한 글자 의성의태어는 현태(현실 자각 타임)이나 할말하않(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는다)처럼 단순히 글자 수만 줄인 말이 아니라 여러 뜻을 두루 품은 동시에 그 모든 뜻에 걸맞은 형상을 갖춘 기막힌 줄임말이다.
25쪽 ‘1장 하 호 후 - 내뿜다’ 중에서
이 책의 모든 말이 그렇듯 하, 호와 후의 방향성도 그 뜻과 꼴에서 유추했다. 입을 기점으로 했을 때 입김을 부는 행위는 고개를 숙이든 치켜들든 굳건히 수평의 방향성을 유지한다. 바람이 가로채기 전까지 입김은 입이 터진 방향으로 향한다. 미약하나마 찬 것을 데우고 더운 것을 식히는 하, 호, 후는 반듯이 나아가는 올곧은 말이다.
37쪽 ‘ 2장 똑 뚝 - 떨어지다’ 중에서
무언가 부러지거나 끊어질 때, 따거나 떼낼 때 쓰는 똑과 뚝은 그 쓰임새가 조금 다르다. 손가락뼈가 부러지면 똑, 어깨뼈가 부러지면 뚝이 알맞다. 무언가 떼낼 때도 그 대상이 앵두나 버찌라면 똑, 월급의 절반 혹은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라면 뚝이 적당하다.
55쪽 3장 사선의 말 ‘삭 싹 - 베다’ 중에서
‘사랑이라 말하면 문득 칼춤 소리가 들린다’던 한 시인의 말처럼 시옷은 금속성을 가진 닿소리다. 실제 ‘사’를 느긋이 길게 발음하면 어설피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 살모사가 모래밭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에 끝소리(ㄱ)을 더해 삭이라 하면 쇳소리의 서슬은 더욱 시퍼래진다.
91쪽 4장 사방의 말 ‘흑 흠 흥’ 중에서
코를 풀 때 쓰는 의성어로는 흥이 있다. 엄마가 엄지와 검지로 아이의 콧볼을 누르며 “흥 해, 흥” 할 때의 그 흥, 그럼 또 아이는 있는 콧물, 없는 콧물 다 짜내며 “흥흥!” 할 때의 그 흥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자식에게 평생 같은 말을 한다. “내 새끼 흥(興)해라, 흥해!”
147쪽 5장 순환의 말 ‘앙 왕 - 울다’ 중에서
아이의 앙, 왕 울음소리는 울림이 커 소리가 그친 후에도 한동안 메아리가 멤돈다. 앙, 왕의 첫소리와 끝소리, 이응은 목청이 떨리는 울림소리라 그 울림이 더욱 크다. 아이가 집을 비워도 부모의 귓전에 자꾸 아이의 울음소리가 웅웅대는 이유는 그 때문인지 모른다.
218쪽 6장 정지의 말 ‘텅 - 비다’ 중에서
과연 텅의 쓸쓸함을 이길 한 자가 있을까. 텅은 듣는 순간 마음에 바람이 스치고 이내 헛헛해진다. 텅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테두리나 경계도 없어 무얼로도 가둘 수 없는, 실로 하나도 남은 없이 그저 텅 빈 말이다.
236쪽 닫는 글 ‘뜻이 담긴 꼴을 그리다’ 중에서
이 책에서 글씨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소리와 모양을 표현하는 말이 실제 말을 걸 듯 생동하는 글씨를 쓰려 고심했다. 한글이 그러하듯 글씨에서도 한글에 담긴 생과 사, 그리고 희로애락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