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세상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헤테로토피아를 향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과 분리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을 뜻한다. 이 동인지는 제도와 규범, 일상과 언어의 틈새에서 잠시 드러나는 그 ‘다른 공간’을 시로 호출한다. 시인들은 가족, 노동, 몸, 사회적 사건, 침묵과 분노 같은 구체적인 삶의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 책의 시들은 위로를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붙든다. 하나의 미학이나 목소리로 수렴되기보다, 서로 다른 감각과 시선이 나란히 놓이면서 동시대의 복잡성과 균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다성성 자체가 이 책의 중요한 의미다.
『앉은뱅이책상』은 말하자면 하나의 문학적 실천이다. 개인의 고백을 넘어, 시가 다시 사회와 접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에게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건넨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독자를 함께 세운다.
책 속에서
젊어서 무모해서
가벼운 몸짓으로
얄팍한 말재주로
세상을 희롱할 때
커피는 달콤했다
-18p, 바퀴/차종숙 <사는 게 쓴데 커피는 시?> 중에서
비둘기는 사람이 좋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길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며
날개를 접어 양옆에 붙이고
영원히 함께할 것을 다짐합니다.
-43p, 바다/김자영 <뒤틀린 사랑> 중에서
발그스름한 백도
혹해서 먹다가
벌레가 지나간 구멍
눈 밝은 아우님이
먼저 다녀갔구나
-61p, 꺼벙이/노순일 <복숭아 형제> 중에서
자지러지는 웃음과 들썽거리는
발걸음들이 부산스럽지만
머리 위로 겨울비처럼 떨어져 단명으로
요절하는 꽃잎이 서럽다
-83p, 꽃님이/이경숙 <벚꽃 터널> 중에서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자주 내 자유를 접고 맞추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은 물론 성장하고 노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내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다. 이처럼 함께 사는 것과 개인의 자유는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은 때로는 개인의 자유를, 때로는 함께 살기를 선택하며 살아왔다.
-103p, 루뎅이/이광호 <기꺼운 삶> 중에서
그녀는 임상시험용 약을 먹는다고 했다. 임상시험 대상자지만, 그런 약조차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자신은 행운아라 말했다. 가끔 우리와 만날 때면, 약의 부작용이라며 살이 찌거나 직모인 머리카락이 갑자기 곱슬머리가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그녀와 만나는 시간이 소중해서 웃고 떠들며 그 변화가 더 어울린다, 예쁘다고 수다를 떨었다.
-136p, 마름모/나순희 <울어도 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