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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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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일상의 온도
- 숨 쉬는 바람에서 파르르 떠는 나뭇잎

낫 / 우리 동네 홍반장 / 비 / 솥 / 푸른 노을 / 해어화 / 순대와 파블로바 / 참기름을 짜며 / 어느 일요일 오후 / 목화 / 기다리는 시간 / 내 마음의 버그

제2부 내 안의 별
- 봄이면 꽃을 보고 가을이면 단풍을 보는

별의 길 / 지구의 마지막 밤 / 어린 기사 / 홀로서기 / 틈 / 하늘과 땅 사이의 이치 / 눈(眼)의 저편 / 연보라색 기억 하나 / 우아한 수다 / 온종일 아름답기만 한 세상 / 또 다른 모순 / 열두 번째 주인공

제3부 자연의 위로
시든 꽃을 일으켜 세우는 즐거움

사막에서 / 그랜드 캐니언을 걷다 / 봄 바다 / 진남교반의 봄 / 인간을 닮은 후두 / 보발재 단풍 / 엘 캐피탄의 꽃 / 버드나무 사랑 / 깻잎 끝에 달린 햇살 / 반딧불이의 노래 / 하얀 가면 / 로키의 풍경

제4부 길 위의 사색
떠남은 또 다른 기억의 시작이다

떠남은 파도처럼 / 남강의 시린 물비늘 / 샌프란시스코의 이별 / 누에보 다리에서 /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 존재 자체가 들판인 사람들 / 이른 꽃 / 바람의 길목에서 길을 찾다 / 샌프란시스코의 주말 /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칸 / 로키의 크레바스, 주유소 / 키스의 향기
저자 소개
저자 : 김남희
커피를 좋아하고,
노을을 좋아하고,
갓 구운 빵을 좋아하며
어둠이 오기 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별을 좋아하고, 화성의 푸른 노을을 그리워하며
유아교육기관에서 아이들과 생활합니다.
그런 날들 속에서 책을 읽고,
여행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꿈꾸며
감정이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수필집 『푸른 별 지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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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삶에 첫사랑 같은 달콤함이 묻어있기를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김남희 수필가는 커피, 노을, 갓 구운 빵, 별, 어둠이 오기 전 하는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아교육기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기다린다.

작가는 신작 『사랑도 말을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모든 순간을 감각적으로 펼쳐 놓는다. 첫 번째 작품집 『푸른 별 지구』에서보다 한층 성숙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적었다. 작가는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우리 일상에 있다고.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삶이 너무 다큐 같아 지루한 날도 첫사랑 같은 달콤함이 묻어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사랑하면 그 사람의 첫사랑을 알고 싶지 않다고, 올 계절엔 그 사람의 첫사랑을 알고 싶지 않은 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4부로 엮어졌다. 1부 ‘일상의 온도’에는 하루의 틈새에서 채집한 시간의 숨결을, 2부 ‘내 안의 별’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속삭임을, 3부 ‘자연의 위로’에서는 여행을 떠나 만난 바람과 나무, 구름과 별을, 4부 ‘길 위의 사색’에서는 떠남과 머묾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서

화분을 든 노인이 어린이집 문을 두드렸다. 화단에 목화를 심어보지 않겠냐며 막 봉오리가 맺힌 목화 화분을 들고 서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다. 화분을 주러 왔는데 빌리러 온 사람처럼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며 직접 키웠다고 했다. 뜻밖의 꽃을 받고 나니 고맙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였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니 목화 키우는 방법이라며 세 페이지 분량의 자료까지 주고 갔다.
실물 목화는 처음 본다. 아이들과 함께 견학을 가거나 책을 통해 그림 목화를 본 적은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꽈리 모양으로 봉우리를 부풀린 목화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여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솜을 만들고 옷을 만드는 목화라고 하니 신기한 듯 쳐다본다.
탐구에 나섰다. 잎은 초봄의 어린 순처럼 보드라운 연녹색이다. 크기는 아이들 손바닥만 하다. 키가 더 자란다면 잎이 내 손바닥만 해질까 궁금하다. 입을 꼭 다문 봉오리가 맺혀있기도 하고, 활짝 웃는 봉우리도 있어 만져본다. 하얀 솜과 같은 느낌이다. 이불 한쪽 찢어진 귀퉁이에서 느꼈던 그 솜의 느낌과 비슷하다. 솜 안에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진다. 검은색 씨앗이다. 좀 더 단단히 굳으면 씨앗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목화를 어린이집 화단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햇빛이 잘 드는 넓은 곳으로 옮기고 흙도 두둑이 높여 주며 물을 준다. 이름표도 달았다. 목화의 이름은 목화꽃이다.
때마침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이 목화꽃을 처음 본다며 신기한 듯 들여다본다. 목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디서 났냐며 묻기까지 한다. 꽃집에서도 구하기 힘든 목화이니 출처가 궁금한 모양이다.
어린이집 화단은 이내 아파트 단지 내에 소문이 퍼졌다. 지나가는 초등학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목화를 본다. 낯선 사람들도 유모차를 세우며 아이에게 목화에 대한 설명으로 분주하다. 나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목화를 그윽한 눈길로 쓰다듬으며 목화에 대한 자료를 읽기 시작한다.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꽃말이 생기게 된 배경은 중국의 ‘모노화 이야기’가 그 시작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모노화가 가난과 굶주림이 지속되자 배고픈 딸을 위해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딸에게 먹인다. 그로 인해 모노화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딸 소조차는 고아가 되어 혼자 남겨진다. 이듬해 모노화의 무덤에서 눈처럼 하얀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노화가 딸을 위해 따뜻한 꽃을 보내준 것이라 여긴다. 그 꽃의 이름을 ‘모노화’라 불렀다. ‘모노화’는 ‘목화’라 불리게 되었고 지금의 ‘목화’가 되었다. 딸을 위한 지독한 사랑이다.
결혼할 때 어머니는 목화솜 이불을 해주셨다. 그때는 솜이불이 무거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목화의 사연을 읽고 나니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요즘의 이불과 비교해 무겁기도 하고 낡기도 해 결국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자식은 엄마의 사랑을 철 지난 꽃처럼 후회에 묻고, 어머니는 자식을 향한 사랑을 몸에 새긴다.
얼마 전 고래가 새끼를 입에 물고 바다 위를 헤엄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죽은 새끼를 안고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새끼의 호흡을 위해 물 밖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이라고 한다. 숨진 새끼를 어미 고래가 인정할 수 없어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바다고래도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데 부모는 오죽하랴.
동화책을 찾아 문익점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모노화 이야기와 고래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문익점의 붓 대롱에 숨겨온 것이 목화라며, 목화 씨앗을 보여주자 관심을 보인다. 씨앗에게 인사를 하고 “씨앗이 숨 쉬어요.” “눈도 있고 코도 있어요.”라며 궁금해한다.
어른이 볼 수 없는 세상을 보는 아이들이 참 좋다. 아이들은 목화씨에서 눈과 코를 찾는 것처럼 맑은 미래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맞다. 목화가 어린이집을 즐겁게 한다.
-p. 55, ‘목화’

동화사는 ‘오동나무꽃이 피는 절’이라는 뜻이 있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깃들이는 나무로 매우 신성하고 길한 나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장소로 여긴다.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 좌우에는 오동나무와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이 있다. 오동나무는 일주문 개울 건너편에 신선처럼 자란다. 우리는 동화사 입구부터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관찰하고 올라오던 터라 쉽게 오동나무를 찾았다. 나무는 연보라색 꽃을 달고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동화사의 중심은 대웅전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아미타불, 약사여래 등의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그 위에는 세 마리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들기 때문에 오동꽃이라는 절 이름과 잘 어울린다.
칠성각에 있는 동화사를 창건한 심지 대사 오동나무 앞에 섰다. 심지 대사를 기념하는 오동나무라는데 생각보다 너무 단출해 놀랐다. 곁가지가 부러진 상처 난 줄기를 제외한 나뭇가지에서 연보라색 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이 벌써 시들어 땅에 떨어진 것도 있었다.
갓 떨어진 싱싱한 연보라색 꽃을 주워 머리에 꽂아보았다. 꽃을 단 여인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나팔꽃을 닮아 통꽃인 오동꽃이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연보라색이라 더욱 마음이 동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직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천연의 색 오동꽃 한복을 입고 꽃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
신부에게 결혼예물을 보낼 때 오동나무 궤짝에 담아 보낸다는데, 연보랏빛 오동나무꽃을 곁들여 보낸다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신랑이라도 신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꿈속 같은 꽃 속을 들여다보니 어린 시절 소 등에 탄 오동꽃 한 송이가 떠올랐다.
우리 집 담벼락 너머에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나지막한 동산처럼 길이 난 숲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오동나무와 아카시아가 경쟁했다. 아버지는 덩치 큰 오동나무에 소를 메어 놓았고 나는 그 주변에서 오동나무꽃이 떨어지면 그것을 주워 소꿉놀이하곤 했다.
꽃을 연필 칼로 자르면 오그랑오그랑한 모양이 나왔다. 그것을 소꿉놀이의 재료로 쓰거나 통째로 실에 꿰어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었다. 예쁘고 싱싱한 꽃은 꽤 쓸모가 있었으며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처럼 소중한 놀잇감이었다.
소가 오동나무에 메이고 나서는 좀처럼 꽃을 얻을 수 없었다. 소도 오동나무꽃을 좋아하는지 꽃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로 밟아버리거나 짓이겨 버렸다. 꽃을 깔아뭉개는 소가 여간 미운 것이 아니었다.
오동꽃 하나가 소 등에 떨어졌다. 꽃을 등에 태우고 눈을 지그시 감고 되새김질하는 소 옆으로 꽃을 주우려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소가 펄쩍 뛰며 일어났고 그 바람에 꽃은 떨어져 밟혀버렸다. 꽃은커녕
내 손과 옷은 소똥으로 뒤덮였고 오동꽃 역시 소똥꽃이 되어버렸다.
집 주변에 오동나무가 있는 것은 오동나무가 길한 나무이기도 하지만 잘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결혼할 때 장롱을 만들어 준다는 속설이 있듯 딸이 많은 우리 집에서 오동나무는 꼭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오동나무는 빨리 크고 그 재질이 단단하여 장롱 재료로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결국 오동나무를 베었다. 오동나무 옆에 있는 논에 오동꽃과 씨가 떨어져 논농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머니가 오동나무 베는 것을 말렸던 듯싶다. 그러나 장롱보다 쌀이 더 필요한 살림이었으니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오동나무를 잊고 있다가 불현듯 떠올린 것은 동화사 오동나무꽃 덕분이었다. 방천 옆이 우리 집이라 태풍과 폭우로 지형이 변해 잊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추억이 살아나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모님을 드문드문 떠올리는 바쁜 날들이지만,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어 기뻤다.
나무는 나와 부모님의 시간을 기억한다. 동화사를 들러보며 연보라색 기억 하나를 얻는다.
-p. 95, ‘연보라색 기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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