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나를 안정된 삶, 미래를 이야기하는 삶으로 옮겨놓았던 이가
이제는 나를 돌봄을 이야기하는 삶으로 끌어당겨놓았다.”
사별과 애도의 시간을 지나 돌봄을 말하는 삶으로
총 3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가 힘든 시간 속에서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씩씩하고 힘차게 살아내려 노력해온 모습들을 읽을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돌봄 경험을 증언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역시 캔디는 캔디다(유여원·추혜인 추천사).” 이 책이 읽는 이들에게 건강한 힘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첫 번째 장 ‘나와 력사의 이야기’는 파트너의 암 선고와 이어진 투병, 돌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이 그전까지는 간병과 돌봄에 대하여 완전히 무지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만큼 돌봄은 힘든 일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하기에,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퀴어 커플은 제도적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전에 자신이 파트너의 장례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고인이 생전에 작성하려 했던 유언장에 집행인을 저자, 즉 자신의 파트너로 지정하였어도 현행법상 실제 장례 절차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혈연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음으로써 강력한 주장 없이도 우리 사회가 단순히 결혼을 통한 이성 간의 결합을 넘어서는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힘있게 역설한다.
두 번째 장 ‘더 많이 잊기 전에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에서는 파트너를 떠나보낸 이후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애도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돌보며 다시 계속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친구들과 공동체가 건넨 도움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해나간다. 생일 제사, 1주기 등 저자는 세상을 떠난 파트너를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방법을 친구들과 꾸준히 모색한다. 결국 상실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껏 슬퍼하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장은 당시 저자가 기록했던 일기를 각 편 사이에 엮어 수록했다.
세 번째 장 ‘남겨진 나날, 살아갈 날들’은 사별 이후의 삶이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관계와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퀴어의 돌봄과 장례, 애도 문제에 관해 계속해서 증언해왔다.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오면 피하지 않고 응했고, 연구 활동과 단행본 집필을 위한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기에까지 이르렀다. 자신이 겪은 아픔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는 문제이며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저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한 상태다. ‘력사’도 우리의 가족이라고, 우리 모두가 당신의 경험을 통하여 언젠가 겪게 될 문제에 대하여 더 깊이 고민하고 새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배우자 ‘오쓰’의 관용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프고 슬픈 과거라 하여 반드시 우리의 현재 및 미래와 단절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우리의 상실이 우리를 더 크고 넓은 삶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는 언젠가 자신과 같은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그 취지에 맞게 권미의 부록에는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설명, 덴마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 하는 방법,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취득을 신청하는 법까지 실제 경험에 바탕한 실용적인 조언들을 담았다.
퀴어 커플의 돌봄과 장례, 애도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우리에게는 지금 바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이 책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가 겪은 돌봄과 사별의 과정은 한국 사회의 제도적 공백 또한 드러낸다. 이 공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내 삶의 일부를 력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지 두려워하며 보냈다. 다행히 력사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할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임종할 때 곁을 지키고 장례식 때 그의 원가족과 함께 상복을 입고 장례 절차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걸 ‘다행이었다’라고 회상해야 하는 현실은 슬프다.
언젠가 오쓰와 나,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는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마지막 순간을 당연히 함께 보내고 싶다.” _본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퀴어들은 ‘법적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라는 이유로 제도와 관습의 벽에 부딪힌다.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실에서 밀려나거나, 장례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저자는 친구들과 돌봄 공동체를 이루어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사회의 책임까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개인의 경험을 통해 거창한 선언 없이도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 등 관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왜 필요한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사랑과 돌봄, 애도의 과정이 특정 가족 형태에만 허용될 수는 없다는 것,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저자는 삶으로 역설한다.
지금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그 중요한 질문을 독자와 사회에 조용히, 하지만 힘있게 건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