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붓으로 생명의 순환을 포착한 여성 과학자의 눈부신 여정
생애부터 스케치, 그림 작품, 연구 등 메리안의 모든 것을 담은 헌정집
18세기 유럽의 자연과학을 특징짓는 세 가지 요소는 표본, 텍스트, 이미지로 요약된다. 이 요소들을 신중하게 배치해 당시 자연 세계의 구조적 틀을 드러내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면서 지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요소들의 연계 지점에서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메리안은 해부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박물학자의 특성과 감정가들이 추구하는 심미적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며 1인 여성 장르를 창조해 냈다. 《꽃 그림책》과 《애벌래 책》, 그리고 대표작 《수리남 곤충의 변태》 등 메리안이 만든 책들은 “‘Liefhebbers en Onderzoekers der Natuur(자연에 대한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유럽 독자층에게 그때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었다”(20쪽).
메리안은 곤충 및 식물에 대한 연구와 관찰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애쓰는 동시에 예술가로서도 그림을 통해 자신의 발견을 대단히 극적이고 장식적인 작품으로 창조해 냈다. 이는 괴테가 메리안에 대해 말했듯 “예술과 과학 사이의 이중성과 융합”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메리안의 그림은 18세기 당시 다른 자연사 삽화와 차별되었다.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메리안의 기법은 동시대 또는 후대 박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메리안 이후에야 비로소 예술이 자연과학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 과학자로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어려움은 엄연히 존재했다. 린네의 분류학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자연과학의 연구 방식을 정의하는 틀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학문을 수행하는 남성 학자들에게 많은 권위가 부여되었고, 현장 조사 또한 대부분 비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졌다. 따라서 메리안이 곤충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고 몰입한 것은 당시에는 꽤 특이한 일이었다. 메리안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여성 영국 곤충학자 엘리너 글랜빌(Eleanor Glanville)의 경우, 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친척들이 “이성을 잃은 사람이나 나비 뒤를 쫓아다닌다”면서 정신장애를 내세워 유언 무효 소송을 걸기도 했다.
메리안 시대에 통용되는 과학의 언어는 라틴어였다. 예술가이자 장인의 가문에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았던 메리안은 사실상 중등학교에 다닐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 갔다면 라틴어를 배우고 대학에도 진학했을 것이다. (…) 저자가 과학 논쟁에서 목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관련 문헌에 대한 지식을 증명하는 것은 의무나 다름없다. 과학 담론의 측면에서 메리안은 평생 아마추어였다. 라틴어를 배운 적이 없기에 남성 동료와의 학술적 대화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220쪽)
그러나 메리안은 전통적인 학력의 부족을 예술적 노력과 역량으로 채웠고 실제로 그 이상을 해냈다. 오랜 시간 부지런한 관찰을 토대로 자신의 특별한 연구 대상인 나방과 나비의 생활사를 홀로 증명해 냈다. 나비의 계절별 행동은 물론이고 선호하는 환경이나 식단, 이동, 비행 패턴을 연구했으며, 애벌레가 배출한 배설물의 부피까지 기록했다. 또한 나비나 나방의 포식자나 기생체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이와 관련된 메커니즘이 밝혀지기 훨씬 전부터 번데기 상태의 숙주에서 나오는 기생말벌과 곤충을 정확하게 적고 묘사했다. 이 책은 이렇듯 식물학과 곤충학 분야에서 엄청난 공적을 남긴,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 인물에게 바치는 후대 연구자들의 헌사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든 천재 여성에게 바치는 책
“메리안이 그린 누에의 이미지는… 인시류 변태의 기본 지침이 되었다”
연대표에 이어 신시아 스노의 헌시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의 예술과 메리안이라는 인물이 박물학과 현대 예술에 끼친 영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글들이 수록되었다. 메리안의 일대기, 곤충 연구, 출간한 책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관찰한 내용을 그림으로 실감 나게 전달하는 예술가이자 판화 기술자로서의 메리안의 능력에 주목한다. 메리안의 《꽃 그림책》이 18세기 당시 뉘른베르크 자수 분야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의 사례를 살펴보거나(‘5장. 바늘로 수놓은 꽃 그림’), 18세기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우정수첩(Stammbu?cher)’에 남은 메리안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6장. 우정을 찾아서―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이 우정수첩에 남긴 흔적’).
동시대에 활동한 여성 화가를 소개하면서 메리안의 삶과의 유사성을 살피고(‘7장. 알리다 빗호스와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네덜란드 여성 식물 화가들의 사회적 인맥’), 1675년 제작된 《꽃 그림책》부터 메리안 사후에 출간된 《수리남 곤충의 변태》 1719년 판본까지 이들 각각에 관여한 활판 인쇄공을 수색한다(‘12장. 메리안의 활판 인쇄공’). 나비와 나방의 변태를 연구하기 위해 둘째 딸과 함께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으로 떠난 메리안은 《수리남 곤충의 변태》를 완성하기까지 현지 토착민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10장. 마리안 지뷜라 메리안과 수리남 사람들’에서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에서 현지 토착민들이 메리안의 연구에 기여한 바를 이야기한다.
메리안의 예술과 자연사 연구를 동시대 과학자 및 현대 예술가들과 연결시킨 글도 실렸다. ‘14장.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과 요하네스 스바메르담―개념의 틀, 관찰 전략 및 시각적 기법’에서는 ‘모든 동물(예: 곤충)은 기본 구조가 동일하며 생장과 번식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라고 여긴 요하네스 스바메르담(Johannes Swammerdam)과 메리안이 공유한 신념에 관해 다루고, ‘16장.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의 작품이 마크 케이츠비의 예술과 과학에 미친 영향’에서는 메리안과 예술가-박물학자인 마크 케이츠비(Mark Catesby)의 작업을 비교하고 유사점을 탐구한다.
독일 곤충학이 발달하는 과정에 메리안이 미친 영향의 흔적을 따라가거나, 18세기 개인 서재에 보관된 메리안의 출판물을 기록한 경매 목록집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기도 하고, 메리안의 출간된 저서는 물론이고 미출간된 〈연구 노트(Studienbuch)〉까지 참고해 곤충 분류군을 일관되게 정리하고 명명한 여러 박물학자의 사례를 드는 등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에 관한, 어쩌면 집요하게까지 느껴지는 탐구가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