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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편지-에필로그 / 엑소포니 / 아가미 / 진주 / 내가 그린 늑대 그림 / 검은 시절 / 구전설화-작자미상 / 편지-투명인간 / 메멘토 모리 / 낙산사 / 선셋홀 / 유구한 일-유기;遺棄 / 궁수자리

2부
여름이었다 / 바람의 집 / 와이드하고 너무 가깝게 / 바라보다 / 하품 / 편지-사구 / 편지-버드 뷰 / 꽃의 진화 / 미러링 / 언두잉 / 맨스플레인 / 이미 / 4 / 편지-비문증 / 모르는 얼굴

3부
시간의 집 / 얼음의 집 / 그러니 오해일 것이다 우리가 만났을 리가 없었다 / 영은 영 / 흑체 / 플루토 / 꽃의 기원-아라키스의 잊혀진 문서 중 / 심리상담 / 양양 / K / 파워게임 / 롱테이크 / 환상통

4부
몬순샐러드 / 주머니 / 낙하 / 무중력 쇼 / 편지-워커 / 스토리텔링 뉴타운 / 호텔 스톡홀름 / 유구한 일-갤럭시 / 광안리 / 편지-랜드 오브 롤라 / 가붓하다 / 오래전 사람 하나가

해설 눈멀어야 입장 가능한 영원의 집 | 김유태 (시인·문화부 기자)
저자 소개
저자 : 신혜정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라면의 정치학』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 산문집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흐드러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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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끝내 오지 않을 너의 노크를
이미 듣고 있었노라

시인은 눈앞에 놓인 찰나와 영원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존재와 부재 사이에 놓인 교각 위에 올라, 그 사잇길에 잔류하는 신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지만,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는 상태가 되며 영원과 찰나와 한 몸으로 결속된다. 시인의 몸은 산개하는 찰나들의 아카이브이자 영원의 숨이 기탁되는 보관소다.
신혜정의 시집은 영원과 찰나의 목격자인 그의 화자들이 분기하는 집이다. 사라지거나 지워지거나 잊히거나 흘려보내지거나 지나쳐 버린 고아 유령들이 찰나를 비집고 영원의 틈에서 말을 거는 집. 시인은 자신의 몸을 영원과 찰나가 교차하는 성으로 내어주고, 한때 자신이었던 화자들을 머무르게 한다. 이 집의 거주자들은 이미 죽은 자이며 죽어가는 자이고 죽음으로써 죽어감으로써 산 자, 살아가는 자다. 우리는 그 집으로 진입하면서 영원과 찰나의 관계망 속으로 연루된다. 하지만 저 집의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선 몇 가지 경고음을 숙지해야 한다. 이는 첫 번째 시 「편지―에필로그」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시인이 규정하는 세계의 질서는 이처럼 몇 가지 법칙을 따른다. 경고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머뭇거려야만 한다.

시인은 전쟁과 참사라는 거대한 폭력의 궤도만을 응시하지 않는다. 이 시집의 미학은 조용한 폭력을, 폭력의 주변부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려는 데 있다. 「검은 시절」은 기억과 애도 사이에 놓은 부고가 주는 일상적 폭력을 다룬다. 죽은 이를 기리는 부고가 역설적으로 당사자를 이야기 속에서 삭제하고, 청자의 감정만을 중심에 서게 할 때의 폭력 말이다.
“이야기가 청자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이는 동안/그이가 지워지고 만다”란 문장 속에서, 망자는 은밀하게 밀려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다. 폭력은 피를 흘리고 뼈를 보이는 지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안다. 누군가를 서서히 지우는 일상의 가학은, 침묵의 행위로서도 가능함을 다음 시 역시 증언한다. 「4」에서 “무엇을 피하는지도 모른 채 달아나야 했던 아이가 남긴/가쁜 숨소리 같은 파도가/달싹달싹 검은 돌에 닿을 때”의 순간은 의식 없이 지속되는 폭력의 무심함과 이름 없는 피해자의 침묵을 소환한다. 개발이라는 폭력보다도 중요한 건 도망쳐야 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온 세계는 화자들의 진술로 인해 다시 호출된다.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과 애도되지 못한 죽음에 대해 화자는 기억하라는 요청을 부표처럼 띄운다. 말해지지 않은 폭력의 곁에 서서 기억의 윤리를 복원하라는 청구서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

혹독한 겨울이었다

잔가지를 쳐내자
상처에서 잎이 돋았다

봄의 한가운데였다.

책 속에서

서쪽으로만 뜨는 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져서 서쪽으로만 뜨는

당신의 반대 방향으로만
눕고 반대 방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지고
뜬눈으로 당신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드미러의 붉은 신호등처럼
지나치는 의미 없는 시그널들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가 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나는 눈이 조금 멀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 「편지-에필로그」 중에서

밥 한번 먹읍시다 비밀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말 하지 말고
이렇게 만나네요, 우리
수박의 속을 핥고
말에 올라 눈을 감아 보시겠어요?
검은 줄무늬가 머릿속을 휘휘 저으면
나는 헬싱외르에 앉아 헬싱보리를 섞고 있어요
필터를 끼운 렌즈처럼
기억에 세피아를 입히겠어요
인형 놀이하듯 갈아 끼우다 문득
총싸움하듯 죽이겠어요
덴마크에서 스웨덴을 한번 먹읍시다 비밀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닥치고 격렬하게
흐릅시다 해협에서
퐁당 빠진 뱀의
머리에 달린 용의 꼬리처럼
이렇게 붙었네요 우리
사방으로 흐르다
눈물을 쏙 빼고 나면 붉은 살점이 남나요
쏙쏙 수박씨를 뱉으며 우리 백야에서 극야로
긴 것들만 살아남는 창백한 거리로
남아보시겠어요?
광화문에서 종각을 먹으며
보지 않고 믿으면 복되다는 전단지를 받은 사람처럼 잠시
얼떨떨해질까요 그러니까
해를 따라다니다가
영영 눈멀어 보시겠어요? 영원을
보시겠어요?
---「엑소포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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