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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7
저자 소개
저자 :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고국 체코에서 발표한 작품은 『농담』과 『우스운 사랑』 두 권뿐이었다. 『농담』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성을 얻어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이후 역경을 겪고 1975년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생은 다른 곳에』, 『불멸』, 『이별』,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의 작품을 썼으며,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스 소설상 등 전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23년 7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역자 : 김병욱
프랑스 사부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 프랑스어권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느림』, 『배신당한 유언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로맹 가리의 『게리 쿠퍼여 안녕』, 『징기스 콘의 춤』,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 『철학은 전쟁이다』, 에드위 플레넬의 『정복자의 시선』,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 『촛불』,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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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호텔이 되어 버린 파리의 옛 성,
그곳에서 펼쳐지는 18세기의 사랑과 20세기의 결투

‘나’ 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호텔이 된 파리의 옛 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고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한 후 베라는 잠이 들고, ‘나’는 창가에 서서 이백여 년 전의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를 목격한다. 18세기 한적한 시골 성이었던 그곳에서 T 부인은 남편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정부인 후작 대신 한 젊은 기사를 식사에 초대한다. 남편은 뚱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둘만 남긴 채 자리를 뜬다. 이때부터 그들의 밤이 시작된다. 그들은 정원을 산책하고, 정자에서 사랑을 나누고, 이른 새벽, 헤어진다. 한편 20세기의 이 호텔에서는 지식인 베르크와 뱅상, 체코 학자가 각자 자존심과 명예, 쾌락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 베르크, 뱅상, 그리고 체코 학자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베르크. 자신의 이미지와 명성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에이즈 환자에게 키스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아프리카로 날아가 얼굴이 파리 떼로 뒤덮인, 죽어 가는 한 흑인 소녀 곁에서 사진을 찍고 시대의 위대한 어릿광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춤꾼들의 순교왕”이다. 어느 날 베르크는 호텔에서 열린 학술 모임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뱅상을 만난다.

뱅상. 그는 베르크를 “대중매체의 어릿광대, 엉터리 배우, 잘난 체하는 치, 춤꾼”이라 여겨 경멸한다. 뱅상은 감추어진 베르크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만 오히려 베르크에게 공격당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모임에서 만난 여자 쥘리와 정사를 나누려 한다.

그리고 체코 학자. 호텔에서 열린 학술회에 참석한 이 육십 대 체코 학자는 거대한 유럽 국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조국 체코의 그림자를 어깨에 짊어진 채, 자신과 조국의 명예, 그리고 그의 “우울한 긍지”를 지키려 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어딘지 뒤틀린 채 방향을 잃은 이 등장인물들은 그날 밤 달빛 환한 수영장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고,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절정에 달한다.

■ ‘속도’라는 엑스터시에 취해 버린 현대인, 그리고 ‘느림’의 미학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성에서 하룻저녁 하룻밤을 묵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옛 성이었던 호텔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미친 듯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도로에서 맞닥뜨린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서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나이,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이들, 자신의 근심거리 따윌 전혀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속도는 사람을 시간으로부터 해방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해방한다. 하지만 쿤데라에게 있어 이는 ‘긍정적’ 해방이 아니다. 마치 약에 취한 듯, 망각과 부정으로 점철된 해방이다. 호텔에서 벌어진 20세기의 전투와 18세기의 사랑은 작품 속에서 기묘하게 맞물린다.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조우하는 등장인물들. 무의미한 싸움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느리지만 감미롭게, 절대 잊히지 않을 사랑을 나누는 이백여 년 전 연인들. 쿤데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두 사건을 통해 ‘속도’라는 엑스터시에 취한 채 과거도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헛된 현대인들의 삶을 한탄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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