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을 내면서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던 날, ‘계획적 오보’였던 ‘전원구조’ 속보를 보고 ‘참으로 다행이구나!’라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있다.
당시 박근혜를 아주 많이 불신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모든 사람을 구조했다는 소식에 ‘그래도 다행히 이 나라 안전관리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감탄하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가 집권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애써 확립한 이 나라 운영시스템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을 구조했다니 당연히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느리지만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동은 거기까지였다.
공중파의 ‘전원구조’ 보도는 오보였고, ‘구조된 탑승객의 숫자 파악이 잘못 됐다’는 보도가 전파를 탔다. 곧이어 돌이킬 수 없는 ‘초대형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보도 됐다.
그리고 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이것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라 엄청난 사건이며, 남아 있는 내 인생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단어가 끝까지 따라다닐 것이고, 진상규명의 끝에는 항상 내가 서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동안 강산이 한 번 변했고 또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참사가 있던 날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적중했고, 난 아직도 길 잃은 미아가 되어 진상규명의 무대 뒤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박근혜는 피해자들 앞에서 무려 세 번씩이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지만, 2014년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이후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오히려 피해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여당 국회의원, 보수단체, 어버이 연합 늙은이들, 일베 어린아이들, 심지어 장관과 대통령 비서관 등 고위급 공무원들까지 동원해서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더 심하게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에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할 사람을 추천했고, 그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방해 활동을 했다. 여기에 종편들까지 가세하여 날마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모욕하였고, 특별법 제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원고 피해자(유가족)와 일반인 피해자(유가족)들을 갈라치기까지 했다.
갑자기 앞날이 캄캄해지며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대로 가면 진상규명은커녕 희생자들의 명예도 지키지 못하겠구나! 국가를 믿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만 외치다간 아까운 시간만 다 허비해 버리겠구나!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뭘 해야 하지? 국가가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억울한 내가, 그리고 피해자인 우리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가시밭길인 줄 알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고 진상규명의 무대에 뛰어들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크기 만큼만 열심히 진상규명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기록을 모으고 사람을 만났다. 진상규명에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만 있다면 완도로, 여수로, 조도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렸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직 진상규명만 생각했고, 꿈도 진상규명의 꿈만 꾸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 그리고 먹고 자는 것을 빼고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감내하기 힘든 형극(荊棘)의 세월이었다.
좋았던 날보다는 나빴던 날이 더 많았고, 살고 싶었던 날보다는 죽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마음 안 변하고 11년이란 세월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둔 복수심 덕분이다.
이 사건 책임자들의 거짓된 가면을 모두 발가벗겨 버리겠다는 비장한 다짐을 했고,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 부는 날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님 동상 앞에서 범죄자들을 진실의 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고 분노의 칼을 갈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아직도 진실은 저 멀리에서 손짓하고 있고, 핵심 책임자들은 ‘무죄’란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으면서 법정을 떠났다. 법은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을 앞세워 핵심 책임자를 보호하고 있고, 공소시효란 시간은 언제나 그들 편이었다.
어쩌면 진실이란 종착역에 영원히 도착 못 할 것 같은 불길함이 뇌리를 스친다. 하지만 그들을 역사의 법정에라도 다시 세울 때까지 지지치 않고 실망하지 않고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에게는 진상규명을 포기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학문을 연구하는 탐구의 영역이 아니고 더 나아가 창작의 영역도 아니다. 오로지 조사와 수사의 영역이다. 그 때문에 이 땅에 해경을 빼면 특별한 전문가는 없고, 장래 보장과 돈이 되지 않으니 진상규명 활동에 새롭게 뛰어들 사람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조선(造船)… 등 관계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조사 범위가 방대하고 읽어야 할 자료는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나서 그 누구도 쉽게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나라 이 땅에는 이 사건을 모두 검토한 사람과 단체는 없으므로, ‘모든 진실이 명확하게 다 밝혀졌다.’고 확언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는 교만하거나 무식한 사람이다. 특히 침몰 원인 등 특정 분야만 수박 겉핥듯이 연구하고, 그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라 선동하면서 앞으로는 ‘사참위 권고 사항이나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자’는 사람들은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오직 국가만이 알고 있다.
특히 ‘구조 방기’에 대해서는 해경이 모든 증거를 틀어쥐고 허위 진술로 세상을 속이고 있다. 참사 직후 그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하여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였다. 또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독회’라는 이름으로 허위 진술을 훈련한 후 국회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에 대응했다.
그리고 검찰은 저들의 허위 진술을 어리숙하게 속아주거나 모른 체 했고, 결국 그들의 억지 주장은 판결문에 그리고 각종 보고서에 반영되어 돌이키지 못하는 진실로 확정되었다.
간혹 필자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음모론자로 몰리게 되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해경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쳤던 이유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누가 어떤 종류의 진상규명과 관련된 출판물을 생산하더라도 그 안에는 항상 ‘검찰 수사 결과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하고, 만약 잘못된 것들을 발견했다면 바로 잡거나 최소 검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관련 출판물 거의 전부는, 검찰이 생산한 기록을 바탕으로 인쇄되었다. 심지어 일부는 해경의 억지 주장을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전제하고, 나름대로 참사의 발생 원인을 정의하였다.
더 슬픈 것은 ‘희생자와 피해자의 한을 풀어줄 목적’에서 출범했던 사참위마저도 같은 태도였고, 결국 검찰과 법원의 판단과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참위 보고서를 보고 있노라면 ‘겨우 저것을 얻으려고 특별조사위원회를 위해 수년간 광장에서 투쟁했나?’ 하는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구조 방기와 관련해 유가족들이 꼭 알고 싶어 하는 진상규명 과제는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이다.
부끄럽게도 이 책은 그것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해경 구조활동의 민낯을 담으려고 새로운 관점에서 정말 많이 고민했다.
특히 해경을 상대로 700여 건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그 어떤 판결문과 보고서에도 없는 새로운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또 오류를 없애고 한 개의 진실이라도 더 찾기 위하여 해경의 동선을 바늘귀 꿰듯이 초 단위까지 추적하였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필자는 초대형 최악의 참사가 발생한 원인이 세월호 선원 15명과 말단 해경 1명에게만 있다고 믿지 않으며, 해경의 무식, 무능, 무책임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언컨대 세월호 참사의 발생 원인은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해경의 지독한 부진정부작위(不眞正 不作爲)에 있다.
당시 해경에게는 매뉴얼이 요구하고 있는 명백한 작위의무가 존재했지만,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그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만 제대로 수행했으면 모두는 몰라도 거의 모두는 분명히 구조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책 <세월호 사건 기록 연구 의혹과 진실>이 출간될 무렵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세월호 사건 진실 탐구가로 변신했다.
당연히 그간 변변한 소득이 없이 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가족들에게는 경제적 고통으로 전달되었다. 때때로 정말 이렇게 까지 하면서 살아야만 하나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었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기에 중단할 수도 없었다.
많은 경제적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응원해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함께 표현한다.
부디 빨리 이 나라에 안전한 사회가 건설되어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는 나라가 되길 바랄 뿐이다.
2025년 12월 24일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박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