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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끝
태양 아래 반짝이는
피아노
그 아이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유령의 집
모자이크
조망
통행증은 마스크
딸과 깍 사이

해설|선우은실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
저자 : 손원평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첫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아몬드』 『서른의 반격』으로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이외 장편소설 『프리즘』, 소설집 『타인의 집』 등이 있다. 2020년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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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선명하게 담아낸 동시대의 감각
단숨에 읽히되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지는 열편의 이야기

소설집의 문을 여는 「당신의 손끝」은 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강사 ‘효원’과 부유한 수강생 ‘주영’의 관계를 그린다. 효원은 자신을 열렬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주영 덕분에 폐강 직전의 강좌를 지키고, ‘자신만의 화실’이라는 꿈에 다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친밀하다고 믿었던 둘의 관계는 계약과 소비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효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 생각한 것이 실은 허약한 이해관계였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과 「모자이크」는 남루한 현실을 지워버리고 다른 삶의 표면에 스스로를 덧대어보려는 인물들의 위태로운 몸짓을 따라간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의 ‘나’는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가난과 실패, 빚과 곰팡이 슨 옥탑방의 기억까지도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새하얗게 표백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투숙객의 삶을 흉내 내고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착각에 빠질수록 그가 맞닥뜨리는 것은 계급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더 깊은 상처와 모욕뿐이다.

「모자이크」의 인물 또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집된 아름다움만을 SNS에 올리며 ‘선택받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가지각색의 파편을 서툴게 이어 붙인 ‘모자이크’된 정체성으로 귀결될 뿐이다. 작가는 이 허상의 실체를 냉정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해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이들의 시린 민낯을 또렷하게 조망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너뜨렸다고 생각한 것,
내가 넘었다고 생각한 경계도 모두 허울이었다”

생존의 압박 앞에서 인간의 윤리와 존엄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는 「통행증은 마스크」와 「그 아이」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통행증은 마스크」는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시기를 배경으로,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하며 손쉽게 심판하는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수습기자의 하루를 그린다. 이어 「그 아이」는 영하의 새벽, 명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인물의 사투를 통해 사치품의 가치 앞에서 무력하게 압도되는 인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피아노」와 「조망」은 비정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을 차분히 응시한다. 「피아노」에서 ‘혜심’은 공부방을 정리하며 한때 낭만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처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제자 ‘준용’과 실랑이를 벌이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본다. 「조망」은 높은 곳에 올라선 ‘수하’가 폭우 끝에 침몰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통해 파국의 풍경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서늘한 해방감이 스미는 역설을 그려낸다. 앞선 작품들이 생존과 위선, 자본의 논리 속에서 거침없이 타인을 밀어내는 현실을 드러냈다면, 이 두 작품은 일상이 무너지고 해체되는 자리에서도 끝내 인간다움의 흔적과 살아갈 이유를 붙드는 장면들을 비춘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와 「유령의 집」은 이 비정한 세계를 다소 비껴 선 자리에서 응시한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가 늘 패배하도록 예정된 ‘마왕’의 목소리를 빌려 정해진 역할과 운명에 저항하려는 욕망을 기묘한 유머와 함께 펼쳐 보인다면, 「유령의 집」은 창업의 꿈이 폐허가 된 자리에서 두 형제의 비극을 그린다. 결이 다른 두 작품은 예정된 패배와 이미 도래한 붕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며 세계가 인물에게 남기는 상처를 환기한다. 한편 「딸과 깍 사이」는 사무실의 기계적이고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균열이 불러오는 파문을 그리며, 효율의 논리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므로, 끝에서 내딛는 한걸음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오늘의 삶을 지배하는 냉혹한 질서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한편, “다양하게 슬퍼하고 다양하게 무지했으며 다양하게 간사하고 다양하게 절망”(해설, 선우은실)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열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처와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끝내 하나의 물음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과연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작품들은 그 물음 앞에서 섣불리 판단하거나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비루하고 위태로운 삶의 한가운데서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을,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미세한 떨림을 응시할 따름이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의 모순된 장면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삶은 지속되리라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표정을 모색해가는 인물들의 작지만 단단한 희망을 마주하게 한다.

작가의 말

이 소설집에는 타협하거나 스스로를 정당화하거나 미쳐버리거나 그럼에도 삶이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는 사람 들이 등장한다. 여러해에 걸쳐 쓰인 이야기들을 묶으며 새삼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타인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 혹은 그 말을 듣고 계속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표정 말이다. 이토록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에서, 이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잠시 걸음을 늦출 사람이 있을까. 혹은 고개를 들어 보이지 않는 어떤 곳을 잠시나마 응시할 사람이 있을지. 독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의 표정 역시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우리는 어떤 말들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어떻게 건드리는지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면, 만약 이 이야기들이 그런 시간을 잠깐이라도 만들어낸다면, 이 책은 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낸 셈이 될 것이다.
2026년 3월
손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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