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느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속도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생명의 표정이 드러난다.
이일하 교수가 들려주는 놀라운 식물학의 세계
이 책은 식물과 동물이 어쩌다 같은 지구 행성에 함께 살게 되었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식물학적 지식을 통해 하나씩 알려준다. 식물이 살아가는 이치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과 식물이 맺어온 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곰곰 돌아보게 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식물의 삶을 ‘정지’로 오해하고, 그들의 존재를 배경처럼 취급해 왔다. 하지만 식물의 느림은 단순한 생리적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식물의 생존전략이자 존재 방식이다.
식물은 지구의 시간을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아왔다. 30억 년 전, 광합성을 시작한 세포가 태양 빛을 화학에너지로 바꾸면서 비로소 생명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원형이 바로 그들의 세계 속에서 완성되었다. 그 먼 후손인 식물은 행성의 대기를 바꾸고, 산소를 만들어 내며, 모든 동물의 시간이 놓일 기반을 마련했다. 오늘 우리가 호흡하는 이 공기도 수억 년에 걸쳐 이어진 광합성의 축적이 남긴 선물이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식물의 정의’, 2장은 ‘식물의 생장’, 3장은 ‘식물의 진화’를 각각 담고 있다.
1장은 ‘식물이란 무엇인가’며 식물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단순’하지만 ‘복잡’”한 식물의 세계를 다룬다. 특히 식물이 움직이지 않고 한군데에 뿌리 박고 사는지 살피면서 식물의 이런 불편한 선택을 한 이유를 찾는다. 식물은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빛만 있으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으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선택’, 그것이 바로 식물의 방식이란다.
2장은 씨앗이 발아하여 한 송이 꽃을 피우기까지 식물이 어떻게 생장하는지 그 한살이를 들여다본다. 추위를 견뎌낸 식물만이 꽃을 피울 수 있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꽃이 피지 않아도 다음 계절에 다시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의 시간에는 조급함이 없다.
3장은 식물이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면서 진화해 나가는지를 살핀다. 특히 식물은 곤충이나 곰팡이 등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공생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식물의 뿌리에는 뇌가 있다고 말한다. 뿌리는 “뿌리가 단순히 흙 속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기관이 아니라, 식물 전체의 생장을 조율하는 중추”(찰스 다윈)라고 보았다. 이 관찰은 당시에는 상상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오늘날 여러 연구가 그것이 단순한 은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느린 시간 속에서 식물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자기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지를 탐구한 기록이다. 빠름을 미덕으로 여기는 인간의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식물의 시간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자.
책 속에서
만약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을 이 행성의 지배자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생명체가 식물이니까요. <13쪽>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놀라운 생리적 기작(機作)을 통해 살아갑니다.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빛 에너지만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내죠. 움직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겁니다. 빛만 있으면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굳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20~21쪽>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대신 생장을 통해 세상에 반응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 빚어내며, 그 생명력으로 시간을 건너 존재를 이어가는 생명체입니다. 동물은 죽음의 종착점을 향해 살아가지만, 식물은 ‘죽음을 넘어 생명을 이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발명한 생명체’인지도 모릅니다. <30쪽>
식물은 자신이 어디에서 싹틀지, 어떤 환경을 맞이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고, 회피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능력이 생존의 핵심이 된거죠. 이 과정에서 식물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많은 유전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43쪽>
괴테는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깊은 관찰력을 지닌 식물학자였습니다. 1790년에 발표한 짧은 에세이, 〈식물의 형태학(Metamorphosis of Plants)〉에서 그는 놀라운 통찰을 제안합니다.
“꽃은 잎이 변형된 형태다." <116~117쪽>
식물은 단지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응하고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움직임을 느끼기에는, 식물의 시간이 너무나 천천히 흐를 뿐이지요. <129쪽>
이처럼 식물이 화학 신호로 곤충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사실은 자연계에선 흔하지만, 인간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발상입니다. 아마 그래서 영화감독 나이트 샤말란-〈식스 센스〉라는 유명한 공포물 제작-은 식물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영화 〈해프닝(The Happening)〉에 담았을 겁니다. <164쪽>
일본과 미국에서는 GE 기술로 개량된 작물을 ‘GMO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습니다. PCR 검사로 GMO를 구분할 수는 있지만, GE 기술로 만들어진 작물은 자연 돌연변이와 과학적으로 구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