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동의하는 독자에서 저항하는 독자로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고전을 읽는다
주디스 페털리의 『저항하는 독자』는 미국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장을 연 핵심 고전으로, 출간 이후 오랫동안 페미니즘적 독서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비평 이론의 전범으로 읽히고 언급되어 왔다. 이 책에서 페털리는 남성 중심적 문학 전통이 어떻게 여성 독자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여성 자신의 경험과 욕망을 배제하도록 독해 방식을 구조화해 왔는지 집요하게 분석한다.
그가 말하는 ‘저항하는 독자’는 단순한 비판적 독자를 뜻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문학을 읽으면서도 여성 독자로서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 읽기, ‘동일화하라’는 텍스트의 암묵적 요구에 저항하며 독자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적극적 독법을 가리킨다. 페털리는 텍스트의 구조, 인물 구성, 서사적 시선이 여성 독자를 어떻게 주변화하는지 분석해 내고, 독서 행위 자체를 정치적·해방적 실천으로 변환시키는 가능성을 찾는다.
이 책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단순히 여성 중심 해석을 제안한다는 차원을 넘어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읽고 있는가’라는 독해의 근본 조건을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독법을 문제 삼지만, 그 성찰은 문학의 정치성과 독자의 주체성에 대한 폭넓은 질문으로 확장된다. 남성 중심성에 길들여진 독해 관습을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독자가 자신이 읽기 과정에서 수행해 온 동일화의 방식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페털리는 문학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위치를 비판하면서도, ‘여성만의 독법’처럼 본질주의적 결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와 해석 주체가 놓여 있는 사회적·성별적 구조를 자각하는 일이며, 그런 자각을 통해 텍스트와의 관계를 새롭게 짜는 것이다. 『저항하는 독자』는 이 과정을 탁월하게 보여 주는 책으로, 이후 미국 페미니즘 비평의 출발점이자 참고문헌으로 끊임없이 호출되어 왔다.
한국어판에서는 독자적 가치가 있는 구성도 하나 포함했다. 이 책의 1장에서 분석하는 네 편의 미국 단편소설―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셔우드 앤더슨의 「이유를 알고 싶다」, 너새니얼 호손의 「모반」,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옮긴이가 새롭게 번역해 함께 실었다. 한국에서 이 작품들의 번역본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독자들이 본문의 분석을 바로 대조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며 텍스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