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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9
옮긴이의 말 348
저자 소개
저자 : 세실 피보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언론인. 방송계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여러 출판사에서 일한 후 뉴스 매거진에 합류했다. 2017년에 첫 책을 발표했고, 2019년에 발표한 첫 소설 《심장 박동Battements de cœur》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에스테르의 편지들》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

역자 : 백선희
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아멜리 노통브, 피에르 바야르, 리디 살베르, 로제 그르니에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 나탈리 아줄레의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하늘의 뿌리』,『단순한 기쁨』, 『프루스트의 독서』, 『랭보의 마지막 날』,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책의 맛』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어느 인생』,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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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는 왜 중요한 이야기를 늘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남겨두는가”프랑스 북부 릴의 서점 주인 에스테르가
편지 쓰기 아틀리에를 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에스테르의 편지들》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세실 피보의 장편소설로,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서간 소설이다. 상처 입은 여섯 영혼이 편지 쓰기 아틀리에에서 만나 석 달 동안 편지를 교환하며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고 밀도 있게 전개된다.

마흔두 살로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에스테르는 편지 쓰기 수업을 개설하기로 마음먹고서 지원자를 모집한다. 지역신문에 공고가 나간 후 지원자가 쇄도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다섯 명이 지원하여, 어쩔 수 없이 에스테르 자신도 참여자가 되기로 한다.

여섯 명의 참여자는 각자 두 명의 편지 상대를 정해, 주기적으로 자신의 삶을 편지로 써 내려간다. 편지는 반드시 육필로 써서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그들 사이에 오간 편지는 카피하여 에스테르에게도 전달한다.

에스테르는 이 과정을 기획한 사람이자, 모든 편지를 읽는 관찰자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편지로 써 내려가는 참여자다. 그녀는 누구의 문제도 대신 해석하지 않는다. 다만 글로 쓰는 과정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참여자와 기록자라는 에스테르의 이중적 역할이 이 책에 독특한 긴장을 만든다.

말과 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

소설 속 여섯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는 관계일 수도, 삶의 방향일 수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일 수도 있다. 이들은 그 문제를 직접 마주하는 대신, 편지라는 우회로를 선택한다. 말로는 엉키던 감정과 생각이, 글로 옮겨지는 순간 조금씩 형태를 갖기 시작한다. 저자는 여섯 개의 삶을 누군가를 중심으로 배열하지 않는다. 각자는 자신의 편지 상대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의 기억과 선택, 현재의 삶을 서술한다.

《에스테르의 편지들》은 말과 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에스테르는 홀로 지내는 아버지와 가까이에 살면서도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 경험을 통해 말로는 닿지 못하는 영역이 글로는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 개인적인 기억은 여섯 명이 참여하는 편지쓰기 아틀리에로 확장된다. 이 책에서 편지는 감정을 토로하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기록하기 위한 거리이자 윤리적 장치로 작동한다. 직접 말하면 감정이 되지만, 편지로 쓰면 사유와 판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구성된 기억’의 소설은 단순히 회고가 아니라 삶을 다시 배열하는 시도로 전환되어,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뒤늦게 언어를 찾는 과정으로 되살아난다.

참여자들이 편지에 쓰기 시작한 것은, 문제의 당사자에게도,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정확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였다. 편지는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삶을 설명해보라는 요청 앞에서, 각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문장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받는다. 타인의 반응보다 먼저, 스스로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그 말들이 글이 되어 터져 나오는 과정이, 편지에 담겨 전해진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수신인들의 자세가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렇게 각각은 이해하고, 이해받고, 그 단계를 지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말이 막힐 때 글이 열어주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이 책은 겉으로 보면 편지 형식의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한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 가족, 사랑, 죄책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늦은 고백을 차분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세실 피보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정확하다. 드라마틱한 사건을 앞세우지 않지만,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지닌 무게를 놓치지 않는다.

《에스테르의 편지들》은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다. 참여자 각자의 삶은 에스테르라는 인물을 경유해 드러난다. 에스테르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인물은 각기 다른 선택과 기억의 방식을 지닌다. 누군가는 말했고, 누군가는 끝내 침묵했으며, 같은 사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남았다. 저자는 이 차이를 섣불리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진다.

이 책에서 편지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사유의 형식이다. 직접 말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쓰며, 스스로의 기억과 판단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위로를 건네기보다, 독자 각자가 자신의 관계와 침묵을 돌아보게 만든다. 덕분에 이들의 편지는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관계와 기억, 말의 윤리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에스테르의 편지들》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려 애써본 적 있는 모든 독자에게, 말과 침묵 사이의 긴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것은 “편지를 써보라”는 조언이 아니다. 대신, 말이 막힐 때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바라보는 단계까지는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말하지 못했던 나를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하고 대화의 물꼬를 찾으며, 용기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소설. 그리하여 한 삶이 마침내 자기 언어를 찾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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