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편에서 진흥왕 황초령 순수비가 옮겨졌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정밀하고 방대한 고증이 펼쳐진다. 가령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윤관이 요의 세력이 미친 함흥평야의 여진을 정복해 영주 등 9성을 쌓으면서 그 점유를 역사적 이유가 있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그동안 철령 부근에 있던 진흥왕의 무자 순수비를 일부러 점령지 북쪽 경계의 요충지인 황초령으로 옮겨 세웠다고 생각한다.”(98쪽)
그 뒤 마운령비가 발견됨으로써 이 이치설移置說은 부정됐지만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진흥왕 무렵 신라의 북쪽 경계를 고증한 시도는 의미 있게 평가된다. 이케우치는 정복지역 내에 있던 고구려의 고비古碑가 바로 윤관 자신이 옮긴 진흥왕순수비였지만, 당시에 이미 상당히 마모된 비면을 정밀 조사하지 않고 고구려비로 속단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료 비판을 통한 사실 구명이라는 실증사학의 진수를 보는 것 같은 치밀한 고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문헌 중심의 관점에서 예정된 결론은 신라의 동북경은 안변 이북일 수 없는데, 그것과 내용이 다른 황초령비를 부정하기 위해 번쇄한 실증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김영하, 「일제 시기의 진흥왕 순수비론」, 『한국고대사연구』 52, 2008, 451쪽)
2·3편에서는 삼국통일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했다. 그 과정에서 사료의 비교·검토·수정 등이 정밀하게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편 「신라인의 무사적 정신」에서는 신라인의 무사적 정신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