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리는 과연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의 파랑(波浪)을 지나, 북국(北國) 고려로의 통합과 재탄생을 그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구)려인이 되었고, 광활한 대륙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큰 그림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연은 우리에게 과제를 남긴 것이다.
책 속에서
고려본기를 보면 ‘소수림왕의 즉위 2년 임신은, 곧 동진의 함안 2년으로, 효무제가 즉위한 해에 해당한다. 이해, 전진의 부견이 사자와 함께 승려 순도로 하여금,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또 소수림왕 4년 갑술에, 아도가 진(晋)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이듬해 을해 2월에 초문사를 창건하여, 그곳을 순도에게 맡기고, 나아가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이곳은 아도에게 맡겼다. 이것이 고구려의 불법의 시초라고 한다. _18면
처음 찰주를 세우는 날에, 공장이 본국 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을 꿈꾸었다. 공장은 곧 의심이 나서 손을 멈추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어두컴컴한 속에서 한 노승과 한 장사가 금전문서 나와, 곧 그 기둥을 세우고, 노승과 장사는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공장은 이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찰주기(刹柱記)에는 “철제 노반 위의 높이가 42척이고 이하는 183척이다.”라고 했다.
자장이 오대에서 받은 사리 100알을, 기둥 안과 통도사 계단과 태화사 탑에 나누어 안치하였는데[일찍이 중국에 유학을 갔을 때, 지나던 대화지의 신인(神人)과 그 아들인], 이것은 호법룡의 청을 따른 것이다. _185면
제54대 경명왕 때, 흥륜사 남문과 좌우 낭무가 불에 탄 채 아직 수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정화와 홍계 두 스님이 장차 시주를 모아서 수리하려고 하였다. 정명 7년 신사 5월 15일에 제석이 절의 왼쪽 경루에 내려와서 10일 동안 머무르니. 불전과 불탑 및 풀과 나무 흙과 돌들이 모두 이상한 향기를 풍기고. 오색구름이 절을 덮으며 남쪽 못의 어룡이 기뻐서 뛰놀았다.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고 감탄하면서, 옥과 비단과 곡식을 산더미처럼 시주하였다. 공장(工匠)이 스스로 와서 며칠 안 되어 그것을 완성하였다. 공사가 끝나자 천제(天帝)가 막 돌아가려고 하니. 두 스님이 아뢰기를 “천제께서 만약 궁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란다면, 성스러운 모습을 그려서 지성으로 공양하여 천은을 갚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영상을 남겨서, 오랫동안 아래의 세계를 진호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제가 말하길 “나의 원력(願力)은 보현보살이 두루 현화를 펴는 것만 같지 못하니, 이 보살상을 그려서 정성스럽게 공양하여 그치지 아니함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스님은 가르침을 받들어, 보현보살을 벽 사이에 공손히 그렸는데, 지금도 그 상이 남아 있다. _212면
동도의 남산 남쪽에 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세상에서는 고위산이라고 한다. 그 산의 양지 쪽에 절이 있는데, 속칭 고사 혹은 천룡사라고도 한다. “토론삼한집”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계림(鷄林)의 땅에는 객수(客水) 두 줄기와 역수(逆水) 한 줄기가 있는데, 그 역수와 객수의 두 근원이 천재(天災)를 진압하지 못하면 천룡사가 뒤집혀 무너지는 재앙에 이른다.
속전(俗傳)에는 이르기를, 역수는 고을의 남쪽 마등오촌 남쪽으로 흐르는 내가 이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 물의 근원이 천룡사에 이른다고 하였다. 중국 사신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 절을 파괴하면 며칠 안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_3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