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63-64) 내가 있든 없든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수천만 명의 인간이 죽어도 지구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내 앞에도 자연이 있고, 내 뒤에도 자연이 있으며, 나의 존재도 부재도 자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희망처럼 보인다. …… 한창때가 지난 것, 쇠퇴해 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을 좋아한다. 쇠락은 사실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사람도, 사물도, 나라도, 도시도 태어나서 피고 지고 썩는다.
(140) 경험의 계승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 정신적 외상에 대한 취약성은 ‘공감’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적인 관계는 그 취약성 자체를 치유한다.
(184) 인지증 진단에 사용되는 ‘하세가와 척도’를 고안한 인지증 치료의 일인자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和夫 박사는 본인이 인지증에 걸려 2021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전부터 인지증 환자에게는 주간 돌봄센터가 좋다고 설파해 왔지만 정작 본인이 인지증에 걸려 주간 돌봄센터에 다니게 되자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 마음은 이해된다. 나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194) 요양 보호 대상 판정을 받더라도 주간 돌봄센터 같은 데는 절대 다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어쩌면 헨미 씨와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한다. 늙는다는 것, 돌봄을 받는다는 것이 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이런 목소리의 기저에, 이토록 분노와 비애가 서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
돌봄 대상이 되면 우리는 무력해진다. ‘무력하다’는 것은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인은 어린애가 아니다. 아이처럼 순진하지도 무구하지도 않다. 아이처럼 아름답지도 않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온갖 고생과 경험이 몸에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여기까지 살아 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조금만 여의치 않아도 맥없이 무너질 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인지증을 앓는 노인들은 자주 화를 낸다.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자존심이 상처받기 때문이다.
(195-96) 나는 강연의 마지막을 “안심하고 돌봄받을 수 있는 사회를!”이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요양 보험 제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도가 내 마음까지 구해 주지는 못한다. 뜻대로 안 되는 몸, 여의치 않은 움직임,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심스러운 삶에 이가 갈리는 그 원통함과 애처로움까진 제도가 닿지 않는다. ...... 늙음 앞에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여의치 않은 신체라는 타자를 껴안은 채, 우리는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야 한다.
(199-200) 망자의 시간은 멈춰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죽은 아이의 사진 앞에서 늙어 가는 부모의 시간은 점점 멀어지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망자의 사진 앞에서 내 나이는 망자를 따라잡고 추월해 결국 망자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접어든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후에야 그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단샤리’ 운운하며 단출하게 산다고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기억의 지층이 쌓여 두터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엔 즐겁고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 기억 속에는 잃어버린 것,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것,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넘쳐 난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들, 인생은 필연의 연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미숙함을 탓하며 후회해도 무르고 다시 시작할 순 없다. 우연에 휩쓸려서, 생각이 짧아서, 충동에 사로잡혀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왔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수업료는 충분히 치렀다. 후기 고령자가 되었다. 동년배의 부고를 듣게 된다. 지기知己를 잃으면 그 사람과 공유하고 있던 기억 속의 내가 모조리 저세상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나 자신이 깎여 나간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고 증언해 주는 사람을 잃으며 내 기억의 윤곽이 흐릿해져 간다.
(204) 죽을 때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은 일…… 그것은 바로 용서할 수 있는 상대를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용서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 그것은 분명 자기 인생과 화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여의치 않은 관계로 끝나 버린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싶다. “몇 달 후면 죽는데 그전에 만나고 싶어서……”라고 말을 꺼내면 상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반대로, 누군가가 그런 말을 꺼낸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까? “잘 왔어”라고 말한 다음 말없이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안아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274) 나는 강연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저는 저보다 앞서 걸어온 여자들로부터 그 언어와 사상을 넘겨받았습니다. 저보다 앞선 여자들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께 넘겨야 할 시기가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 바통이라는 건, 받아 줄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에 떨어지고 맙니다. 저는 이전 여자들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께 이렇게 넘겨드리고자 합니다. 제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 모쪼록 받아 주세요.
같은 노래를, 다른 목소리로, 몇 번이고, 언제까지나 이어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는, 확실히 넘겨받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