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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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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7
테라스 45
밸런스 게임 75
오영과 해영 103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137
지구의 밤 169
수영장 203
앨리스 증후군 237
훠궈 265
배드민턴 315

해설 무익한 지킴이라는, 불가능한 윤리 | 임정연(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347
작가의 말 368
저자 소개
저자 : 이소정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앨리스 증후군」이, 202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밸런스 게임」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25년 제3회 연세-박은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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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소설집의 표제작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을 비롯해 「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훠궈」, 「앨리스 증후군」, 「배드민턴」의 인물들은 모두 “복원 불가능한 균열”의 상태를 일상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실금 같은 것들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까 봐 미세한 균열 “딱 그만큼”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관계를, 가족을,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살아 있음을 놓쳐버리고 만 사람들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의 은영과 보숭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미래”와 “하지 않아서 생긴 일” 사이에서 좌초된 관계라 할 수 있다. 보숭 누나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간 은영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한쪽 신발만 신겨진 채 발견되었다는 누나의 모습에서 캐나다 유학 시절 자신의 ‘버려진 신발’을 떠올린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여주던 과한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한 짝씩 사라지던 동양인 아이들의 운동화. 그 운동화들이 버려진 외지고 어두운 응달의 이미지는 ‘보편의 행복’도 ‘보편의 죽음’도 누릴 수 없었던 보숭 누나의 레즈비언 정체성과 환치되며 그녀들이 감당해야 했던 ‘보편’이라는 세계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선명하게 적시한다. 그런데 은영이 그 ‘버려진 신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신발이 무사하기 위해 나중에 전학 온 보숭의 신발이 대신 사라지는 것을 외면했고, 이를 보숭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숭 누나의 죽음을 막지 못한 어린이집 차량 기사처럼 그 시절 보숭이 당했던 일들은 은영이 “손을 내밀지 않고 가만히 있”어 생긴 일이다.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한 「훠궈」의 가족―화자인 딸 최지은을 비롯해 엄마 고미영, 아빠 최태훈, 동생 최동운―은 ‘귀신’이 된 처지인데도 여전히 열두 번의 이사 끝에 마지막 집이 된 과수원 냉동창고 컨테이너 안에 함께 머물며 밤마다 모여 마늘을 까는 일상의 노동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나 실상은 이들 가족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농약병이 뒹구는 집 안에 부패 중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배제로 보호와 지킴이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사건 현장으로 전환된다. 여기서조차 이들의 존재감은 “이곳에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챌 수 없고, 발견되더라도 “일가족 생활고를 비관해……”라는 기사 한 줄로 정리되고 말 정도로 미약하다. 이 가족의 마지막 음식이었던 ‘훠궈’가 남긴 뒷맛과 과로사한 유정이 옛 애인인 지은의 집에 들고 온 빈 화분 속 씨앗은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한 모든 단서이자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은은 화분에 핀 꽃을 보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구하라는 것, 죽은 이들이 살아서 미처 하지 못한 말, 너무 늦어버려 할 수 없는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수영장」 「테라스」 「밸런스 게임」은 끝내 누군가를 구하지 못해 마음에 ‘자국’이 남은 채 붕괴된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수영장」의 ‘나’는 원전 화학단지 누출 사고로 폐허가 된 도시를 부유하는 유령이다. ‘나’는 피난 상황에서의 무모한 선택으로 가족과 헤어져 운전 중 ‘판’을 차로 치고 자신도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나’는 매일같이 재앙이 휩쓸고 간 텅 빈 도시 한구석 버려진 수영장에서 ‘판’을 만나 가족과의 마지막 “그날을 이야기”하고 가족이 없는 빈집으로 귀가하는, “다시 그 시간을 사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살아서 보호받지 못했던 아동학대 피해자 ‘판’은 화자의 죄책감이 고여 있는 장소인 수영장에서 매일 ‘생존수영’을 연습한다. 이때 이 수영장이 본래 소방서 건물을 개조한 시설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곳이 실패한 보호와 구조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알게 한다. 다시 태어나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화자의 말 역시 물이 빠진 수영장처럼 이미 실패한 지킴에 대한 가망 없는 희구일 뿐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복기하며 구하지 못한 아내와 쌍둥이 아이들 대신 판을 돌보는 ‘나’의 모습은 행위로서의 지킴이 ‘책임’의 형태로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견을 두고 혼자 도망갔다는 죄책감에 죽어서도 방독면을 쓴 채 개를 찾아 헤매는 미진 엄마도 그런 경우다. 그녀에게 지키지 못한 가족인 반려견 ‘미진’은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기란 더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이다. 상실의 경중에 상관없이 지키지 못한 자들의 애도에는 유효기간도 골든타임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소정 소설에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말은 거창한 약속이나 의지, 당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헤아리던 날씨, 반복하던 놀이, 미묘하게 조율해온 거리, 작은 선택들의 연쇄와 같이 균열을 내장한 일상의 자리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지킨다는 말은 약속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취약함을 드러내는 결핍의 언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그렇게 발생하는 일상의 마찰을 세밀하게 포착함으로써 ‘지킨다’는 행위가 사실상 얼마나 불완전한 감정과 조건 속에서 발현되고 소진되는지를 보여준다. 힘 있는 지킴의 숭고함이 아닌 무력한 지킴의 무익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지켜낸 결과가 아니라 지키려 했던 마음의 자국일 터,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그 자국이 세계의 온도를 미세하게 바꾸는 진동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이소정 소설이 역설하는 대가 없는 무익한 지킴이란 권력의 회로를 거부하는 조용한 반항, 무너진 세계 속 더 약한 존재의 얼굴을 향하는 마음, 그 생을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 소멸 이후에도 남는 잔존의 힘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 이 불가능한 윤리를 언어로 새기며, 이소정의 문학은 보잘것없는 온기로도 지켜지는 존재와 사람의 체온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 언어를 기억하는 한 아직은 우리가 이 세계의 셈법에 길들지 않고 ‘지키는 자’로 남을 수 있음을 증언한다.

추천사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가운데 한 편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을 인용한 에피그래프가 있다. “죽음은 갈라놓지 않고 하나로 합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삶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고 죽음 역시 삶을 완성하는 마침표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아픈 이유는 삶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정은 상처를 봉합하려 하는 대신 왜 상처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픈 이들이 이 소설들을 읽어보길 간절히 바란다.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쓸쓸한 이들 말이다. 이소정은 타인의 슬픔을 유린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신중하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런 소설가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켜 자신이 서 있는 곳 어디나 슬픔의 한복판임을 증명하는 소설가를. “지금도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과 그 밤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끝나지 않는 밤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소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무서우리만치 침착하게 보여주는 소설가를. “세상에는 좋은 말이 많고 그걸 문장으로 쓰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는 문장을 이소정에게 되돌려줄 수 있어 다행이다.
-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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