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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강지영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파주에서 살고 있다. 첫 소설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발표한 이래,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전방위적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살인자의 쇼핑목록』, 장편소설 『신문물검역소』, 『엘자의 하인』,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프랑켄슈타인 가족』, 『심여사는 킬러』, 『하품은 맛있다』, 『페로몬 부티크』, 『살인자의 쇼핑몰1, 2』, 『굿 드라이버』 등을 발표했고,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에 [스틸레토], [마녀 사월], [살인자의 쇼핑목록] 등을 연재했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이광수, 설현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큰 주목을 받았다. [살인자의 쇼핑몰] 역시 이동욱, 김혜준 주연의 디즈니플러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현재 소설가로, 웹툰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치는 틈틈이 글쓰기 강의를 통해 미래의 작가들과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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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아비규환 속에서도 믿을 건 가족뿐!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 지 불과 3년 만에 또 하나의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극동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과 한국에서만 발병한 이 감기는 Far East influenza virus, 이른바 페인플루라 불리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감염 의심자들이 마구잡이로 격리되고 확진되면 살처분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도는 가운데, 정부는 여전히 대책이 없었다. 아니, 일부러 방치하는지도 몰랐다.

기온이 35도가 넘는 이상고온현상이 이어지면서 심각한 페인플루 후유증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뇌가 부패하기 시작하자 감염자들은 정신 줄을 놓고 이웃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초과가 눈을 돌려 집 앞을 내려다봤다. 초저녁부터 뒤엉켜 있던 두 노인은 여전히 서로를 끌어안은 채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좌빨 좀비를 척결하자”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최 집사의 러닝셔츠가 붉게 물들었다는 정도. 주찬 할아버지의 입에서 피 묻은 살점 한 조각이 툭 떨어졌다.
“엄마, 현관문 잘 잠겼나 확인해.”
초과가 황급히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내렸다.
“왜 그래, 무섭게.”
초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현관으로 뛰어가는 숙영에게 차마 주찬 할아버지가 최 집사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단 말은 하지 못했다. _본문 중에서

감염자들이 좀비화되자 정부는 외부 출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삶이 어떻게 한순간에 중단된단 말인가.

좀비가 창궐해도 산모는 아기를 낳아야 하고,
오타쿠는 코믹페스티벌에 가야 한다.

좀비가 창궐해도 우리에겐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생기며, 끝내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속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이 집의 막내 초과는 자신의 희귀혈액형을 물려준 딸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 있는 생부에게 떠나보내야만 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서 딸의 입국 소식과 수술 소식을 들은 초과는 썸남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수혈 원정을 떠난다. 집안의 장남 근대는 “덕후는 절대 죽지 않으니까. 우리한텐 다음 주에 나올 애니, 다음 분기에 출시될 신작이 기다리고 있거든.”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코믹페스티벌이 열리는 AT센터로 향하고, 이들을 키운 엄마 숙영은 만삭의 큰딸 초희를 오토바이에 태워 서울의 대학병원을 찾아 나서는데…….

산부인과가 있는 건물들은 모두 셔터가 내려졌거나 감염자들이 에워싼 상태였다. 길바닥에서 애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 우리 이제 어디로 가?”
숙영의 등에 붙어 매미처럼 울던 초희가 흐느끼며 물었다.
“우리 서울 가자. 늬 오빠랑 초과도 서울 간댔어. 너도 지성대학병원 가서 낳고 싶댔잖아.” _본문 중에서

숙영의 가족들은 대환장의 혼란 속에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눈앞에 벌어진 일을 묵묵히―라고 하기엔 꽤 시끌벅적하지만―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
무너지는 세계를 지탱하는 것들

현실에서도 그렇듯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속 정부도 신종 바이러스 출현 초기에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사람들이 좀비화되기 시작하자 뒤늦게 확산을 방지한다며 감염 의심자를 마구잡이로 격리하고 좀비로 변이한 사람들을 살처분한다.

정부의 폭력적인 방침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고 약한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지는 세계를 지탱하는 것 역시 슈퍼히어로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엄마,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시험체로 내놓았던 아버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했던 오타쿠들, 죽음과 상실을 끌어안은 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토닥이는 것 역시 그런 사람들이다.

일요일 아침 엄마의 도마 소리처럼 두 사람이 토닥거리는 소음이 근대의 마음을 푸근하게 다독거렸다. 멀리서 백신 개발 소식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사이렌 소리,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함성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 가족을 되찾은 사람들의 환호가 거리를 메웠다. 이름 없는 피해자들과 이름을 숨긴 가해자들의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근대는 유이를 내려놓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페인플루보다 더 지독한 그 무엇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작가 강지영이 새롭게 선보인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소설이다. 전통적인 좀비 소설의 문법과 비교하자면 이 작품은 정통 좀비 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모성애와 가족애 그리고 오타쿠라는 소재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무대를 그 어떤 좀비 소설보다 더 탄탄하게 지탱하고 있다. 마치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에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환호처럼 말이다.

네오픽션 ‘ON 시리즈’는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SF 등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을 소개합니다.
허구 속 재미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담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복기합니다.

작가의 말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속 초과 가족들도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앞에 벌어진 일을 묵묵히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본능과 본성에 충실하며, 대혼란 속에서도 스스로 앞가림을 한다. 전통적인 좀비 소설의 문법대로면, 좀비보다 광기에 사로잡힌 생존자들이 더 골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는 정통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서사를 이끌어 가는 초과 가족은 저마다 잘못된 선택으로 비루한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를 통해 비로소 생기를 되찾고, 꺼졌던 욕망을 추동해 한 뼘씩 성장해 나간다. 엄마 숙영이 만든 가풍이 그 원동력일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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