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베트남의 맛은 신선함과 향, 균형과 식감이 만들어내는 다층적이고 섬세한 감각의 조화이다.
베트남인이 말하는 ‘맛있다’는 단순한 혀끝의 자극이 아니다. 신선함과 향, 조화와 질감이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감각의 경험이다. 그 중심에는 재료의 생명력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 번 신선함을 잃은 재료는 어떤 조리법으로도 본래의 풍미를 되돌릴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선한 재료 위에 짠맛·단맛·신맛·매운맛이 균형을 이루어야 비로소 음식은 하나의 완성된 맛이 된다. 여기에 식감이 더해진다. 바삭함과 부드러움, 쫄깃함과 촉촉함이 서로 대비를 이루며 입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베트남 음식의 진짜 즐거움이 완성된다.
쌀국수 한 그릇에 담긴 베트남의 역사와 미각
쌀국수의 역사는 곧 베트남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1907년 무렵 하노이 거리의 행상에서 시작된 쌀국수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군이 남긴 소뼈로 끓여낸 서민의 국물이었고, 1945년 대기근 이후에는 가장 저렴하게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생존 음식이었다. 1954년 분단 이후에는 전쟁 난민들의 삶을 떠받친 생계의 음식이 되었고, 1975년 이후에는 디아스포라를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가 오늘날 글로벌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그릇의 쌀국수에는 시장경제의 형성, 식민지의 기억, 전쟁과 분단, 이주와 도시의 성장까지 베트남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맛는 베트남 음식의 비결은 감칠맛에 있다.
한국인에게 베트남 음식이 잘 맞는 가장 큰 이유는 두 나라가 맛의 중심에 감칠맛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감칠맛은 단순한 짠맛이나 단맛이 아니라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깊고 단단한 풍미다. 한국에서는 된장·간장·젓갈 같은 발효 양념이 그 역할을 하고, 베트남에서는 느억맘과 각종 절임 양념이 같은 기능을 한다. 여기에 고기와 채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구성,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양념, 라임과 허브가 더해 주는 상큼함이 더해진다. 이런 요소들이 감칠맛의 틀 안에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베트남 음식은 처음 먹어도 구조 자체가 낯설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음식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맛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 속에서
중국과 프랑스, 그리고 20세기 이후 미국까지 더해진 외래 식문화의 유입은 단순한 교류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베트남은 천여 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 백 년 가까운 프랑스 식민 통치, 그리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전쟁까지 수많은 격랑을 겪어냈고, 그 굴곡은 음식 문화에 강력한 흔적을 남겼다. 중국의 지배는 베트남 절임 채소 문화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와 이어진 전쟁의 시대는 껌땀과 같은 ‘살아남기 위한 음식’을 탄생시켰다. 베트남 전쟁과 급격한 도시화는 반미처럼 빠르고 간편한 음식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외래문화가 강압적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베트남인의 실용적 지혜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조응하며, 베트남 음식은 단순한 혼종을 넘어 더욱 넓고 깊은 세계로 확장됐다
베트남의 음식 문화는 또한 이 나라가 지닌 지리적 조건이 만든 풍경이기도 하다. 남북으로 1,600킬로미터 넘게 길게 뻗은 국토는 지역마다 전혀 다른 기후와 농업 환경을 낳았고, 그 차이는 고스란히 음식의 개성으로 이어졌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북부에서는 절제와 담백함을 중시하는 맛이 발달했으며, 산악과 해안이 맞닿은 중부는 태풍과 척박한 자연 속에서 강렬한 양념, 짠맛을 강조하는 음식이, 그리고 비옥한 남부는 열대 과일과 신선한 허브, 풍부한 해산물에 힘입어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베트남 음식의 또 다른 뚜렷한 특징은 향채와 채소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곁들여 먹는 식문화에 있다. 고수·바질·민트·딜·들깻잎 등 강한 개성을 지닌 향채들과 공심채·청파파야·숙주 등 채소는 한 그릇의 맛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기능한다. 조리된 음식과 향채와 생채소를 함께 내어 각자의 취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합해 먹는 방식은 뜨거운 불과 기름으로 응축된 풍미위에 생잎의 청량함과 씹는 질감을 더함으로써, 음식은 무겁지 않게 균형을 찾고 몸은 자연스럽게 계절과 기후에 순응한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 베트남의 향채와 채소 비중은 압도적이다.
베트남 음식의 또 다른 뚜렷한 특징은 향채와 채소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곁들여 먹는 식문화에 있다. 고수·바질·민트·딜·들깻잎 등 강한 개성을 지닌 향채들과 공심채·청파파야·숙주 등 채소는 한 그릇의 맛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기능한다. 조리된 음식과 향채와 생채소를 함께 내어 각자의 취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합해 먹는 방식은 뜨거운 불과 기름으로 응축된 풍미위에 생잎의 청량함과 씹는 질감을 더함으로써, 음식은 무겁지 않게 균형을 찾고 몸은 자연스럽게 계절과 기후에 순응한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 베트남의 향채와 채소 비중은 압도적이다.
이 모든 요소의 밑바탕에는 맑고 담백하며 균형을 중시하는 베트남 특유의미감, 즉 ‘탄(thanh)’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베트남어로 탄이란 맑고 깨끗하며 무겁지 않은 맛을 뜻하는데, 기름지지 않고 자극을 절제해 재료 본연의 맛이 또렷하게 살아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단어는 베트남 미식에서 매우 긍정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며, 한국어의 ‘개운하다’, ‘담백하다’, ‘맑다’와 가까운 표현이다. 베트남인이 이상적인 맛이라고 여기는 지점은 이 ‘탄(thanh)’에 도달하는 데 있다. 깊으면서도 무겁지 않고, 향이 뚜렷하되 과하지 않으며, 조화로우면서도 밋밋하지 않은 맛이 절묘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베트남 음식이 추구해 온 미학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밥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역사와 기후를 겪어 왔음에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두 나라 모두 오랜 세월 채소·허브·곡물 중심의 식사를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백반과 베트남의 껌니에우와 같은 가정식은 밥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반찬을 조금씩 섞어 먹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칼로리 밀도를 낮추고 식사를 가볍고 균형 있게 만든다. 여러 맛을 조합해 자신에게 맞는 조화를 찾아가는 방식은 체질과 체형 유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두 나라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익숙한 식문화의 리듬을 만들어왔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감각, 낯선 재료와 기법을 유연하게 흡수하는 힘,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합을 실험하는 창의성은 베트남 음식이 세계 미식 무대에서 더 중요한 위치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 음식은 이제 ‘싸고 간편한 길거리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다양성과 세련미를 갖춘 아시아 미식의 핵심 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에 서 있다. 젊고 역동적인 인구 구조, 활발한 외식 문화, 그리고 세계와의 빠른 교류는 이러한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며 V-푸드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