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한국인은 적지 않다. 군부대 장교로서 목사 활동을 한 이는 드물다. 신상만은 미 공군(United Stated Air Force) 목사로 일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경찰 목사로도 일했으며, 나아가 NATO군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해 현지에서 7개월간이나 군목으로 지냈다. 신상만은 또한 한인교회뿐 아니라 백인과 기타 다양한 인종이 함께 하는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했다. 이 책에는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아주 생생하게 서술돼 있다. 도전하는 사람이 새로운 길은 열 수 있다는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값진 에세이다. 일독을 권한다.
저자의 말
무지개를 꿈꾸며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무지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그려보며 나름대로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어 본다. 그러다가 우리네 인생이 무지개처럼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고 무지개 너머에는 상상속의 세상과 많이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장미꽃을 뿌려 놓은 탄탄대로는 더욱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마치 그림속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과 같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시인은 시상을 떠올리고 글 여행을 떠나본다. 화가는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아보려고 한다.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기억하는 것이다. 각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모습을 통해서 각자의 경험과 능력을 살려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그러기에 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은 다르면서도 아름답다. 각자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우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에 유학 와서 경목으로, 군목으로 여러 지역과 여러 부대를 다니면서 경험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군목으로 파병되어 나토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펼쳐보았다. 아시안으로서는 최초로 목회했던 백인교회 두 군데에서 겪은 일들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 삶은 항상 도전이었다. 낯선 곳,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갔다. 지금은 잠깐의 쉼표를 찍으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미주한국문인협회에 수필 부문으로 등단하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또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도전은 항상 용기를 준다. 그 용기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삶이 가진 진짜 맛은 도전하면서 묵묵히 그 길을 걷는 것이다. 어디로 가든 항상 나와 함께 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2026년 봄
신상만
책 속에서
나토군이 주둔한 부대에는 식당이 다섯 군데가 있었다. 식당마다 약간씩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군데는 동양음식 비슷한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음식과 재료들이 유럽에서 온다.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에서 오는 항로가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은 그리 싱싱하지는 못해도 먹을 만은 했다. 사과를 좋아하는 나는 매일 사과를 한 개씩 먹었다. 가끔 얼큰한 한국라면 생각이 났다. 아내가 라면을 위문품으로 보내주어서 라면은 있었지만 끓여먹을 방법이 없었다. 다른 병사에게 물어보니 방법이 있다고 했다. 라면을 플라스틱 그릇에 넣어서 물을 넣고 3분 정도만 전자오븐에 데우면 된다는 것이었다. 옳거니 생각하고 해보았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전쟁터에서 삼양라면을 끓여 먹으니 속도 시원하고 얼큰한 것이 너무 좋았다. 그 후로는 가끔 라면을 끓여먹었다. 위문품으로 들어온 일본 라면‘이찌방’은 맛이 없었다. 한국 라면이 역시 입맛에 잘 맞았다. 지금도 한국 라면은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좋다. 어떤 때는 한국 병사를 만나면 같이 라면 끓여먹자고 내 사무실로 부르기도 했다. 그곳은 미국의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까지 다 있고 약 ○○개국에서 온 다국적군이 있었다. 한마디로 작은 지구촌이다. 어느날 우연히 만난 한인 병사가 육군의 병참부에서 높은 직에 있음을 알았다. 한마디로 창고 관리인이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나한테 필요한 것은 없었기에 선글라스나 한 개 달라고 262해서 꼭 쓰고 다녔다. 현재 미국 군대에는 많은 한인들이 복무하고 있는데 소수민족 중에서는 필리핀 사람들 다음으로 많다. 전쟁터에서 만난 한국인 병사는 더욱 반가웠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한 명씩 불러모은 한인 병사들이 모여서 예배 드리고 정보도 교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전쟁터에서나마 동질성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지금은 다 어디로 가서 근무하고 있을까?
아프가니스탄의 여름은 무척 덥다. 더욱이 여름이면 파리떼가 극성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각 단위 부대들을 심방하고 병사들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12시간씩 근무하는 전투기 정비나 레이다 혹은 구조팀에서 근무하는 사병들은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갈 수가 없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요원들은 한 사람이 차량을 가지고 식당에 가서 음식을 가져와서 일하면서 먹는다. 그러다 보니 식당보다는 음식이 좋지가 않다. 식당의 모든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도 점심은 항상 그들과 함께 텐트에서 먹었다. 문제는 여름이 되면 파리떼가 극성인 점이었다. 음식을 가져다 놓으면 파리떼가 냄새를 맡고 몰려 드는데 그 숫자가 수만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파리떼가 한 번 움직이면 비행기 엔진소리가 난다. 그토록 많은 파리떼 사이에서 음식을 먹으려면 최대한 파리떼가 달라붙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전염병이라도 돌게 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각자 건강을 조심해야만 했다. 그 많은 파리떼는 때가 되니까 모두 사라져버렸다. 탈레반의 로켓공격이 있으면 벙커로 달려가 피해야 하는데 이때는 모기떼가 습격을 한다. 이상한 것은 부대 안에서는 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7개월 있는 동안 참새 몇 마리만 보았을 뿐 그 외의 새들을 본 적이 없다. 왜 새가 없을까? 나중에야 그 의문이 풀렸다. 부대 안에서의 조류로 인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부대 근처에 새들이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몇 명의 사병들이 총으로 새를 잡고 있었다. 새가 나무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새 둥지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새들을 사살하고 있었다. 나무도, 새도 없는 황량한 벌판,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곳을 사랑한다. 그들의 조상이 이곳에서 살아왔고 그들의 후손이 살아갈 터전이기 때문이다. 조국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지만 각자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시 있다가 사라져가는 파리떼처럼 짧은 인생일 뿐인데.
- ‘전쟁터에도 삼양라면은 있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