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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스스로 시조가 된 행복한 할머니와
당신 품에서 자라난 길동무 손녀의
오늘도 내일도 더할 나위 없을
그 애틋한 사랑, 이토록 복된 나날

1931년생 임봉근과 1991년생 임다운이 함께 쓴 산문집 《오늘내일하는 사이》이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임봉근과 임다운은 할머니와 손녀 사이이다. 둘이 같은 성씨를 쓰는 사연이 이 책의 출발이자 뿌리가 된다. 거기에서 시작한 글은 아주 특별하고 입체적인 할머니로서 풍성한 잎사귀를 이루고,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로서 꽃망울을 틔운다. 임봉근은 마냥 헌신적인 할머니가 아니다. 좋은 걸 챙기고 싫은 걸 티 내며 길동무의 안부를 묻고 손녀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노년이다. 임다운은 그런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기로 한다. 할머니는 편지를 보내는 대신 차곡차곡 글을 모은 채 손녀를 기다린다. 이 책은 그 두툼한 편지에 답하는 얇은 연서일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은 언제 어떤 모양이든, 무조건 두터울 테니까. 이제 그 사랑을 《오늘내일하는 사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건넨다. “끈끈한 핏줄과 뜨거운 우정의 실로 엮은 알록달록한 편물”(김윤아)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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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봉근, 시조가 되다

죽지 않기 위한 편지│기둥과 뿌리 이야기│가풍 사수│웨딩 싱어│방구석 피에로│우스운 소리│키스 같은 건 몰라요│카카오야│할머니의 홈웨어│실례 좀 할게요│동사로 칭찬하기│주름을 사랑할 수 있을까

2부 나는 행복한 할머니

고령의 기쁨│님│벚꽃과 우유│축가를 부르다│회상1│네 마음 고마워서│성민 군의 머리│어린이날│미안한 마음│회상2│회상3│꿈│태몽 이야기│난초│노래│어머니의 반짇고리│아버지, 작은아버지 생각│어릴 적 할머니 생각│강아지│있을 때 잘해│나의 일과│사촌 동생│허전한 생일│나의 풀밭 풍경│장민호│길동무1│길동무2│길동무3│이름과 운명 이야기1│이름과 운명 이야기2│이름과 운명 이야기3

3부 나도 할머니 길동무

기마이 특훈│보리차와 바나나킥│길동무│애도 연습│성탄 일기│천국을 찾아서│두 디제이│열린 할머니 닫힘│할머니의 건강 비결│꽃밭에서│최고의 요리 비결│희귀동물

4부 사랑한다, 할머니가

다운이는 기마이가 일품│감정 관리│고려장│늙음의 모습│폭염│용서를 빌다│멧새│사랑│꽃잠자리 날려 보내다│어여쁜 소녀의 방│흰 찔레꽃│그리운 서 여사│엉뚱한 메시지│개똥 치운 날│광천 새우젓│책의 즐거움│전화벨 소리 그리운 날│유감│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예방주사 맞은 날│꽃보다 아름다운│내 마음의 테푸│행복과 불행│오늘 같은 토요일│내일은 크리스마스│친해지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 임봉근
1931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문학소녀, 현재는 노인복지관 슈퍼스타. 요즘은 장민호에게 빠져 있다. 그리고, 임다운의 할머니.

저자 : 임다운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 판소리 같은 기술을 비밀스럽게 연마한다. 그리고, 임봉근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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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느 여자들의 기둥과 뿌리 이야기

둘은 할머니와 손녀 사이이다. 그런데 같은 성씨를 쓴다. 뼈아픈 가족사의 만행 혹은 비극 앞에 선 임봉근은 자녀의 성을 갈아엎는 파격적 시도를 감행한다. 당시 허술한 행정 체계 때문이었을까, 당신의 뚝심 덕분이었을까, 임봉근의 아이들은 그렇게 임씨가 되었다. 그녀의 손자도 다른 성이 아닌 ‘임’다운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임다운은 혼인 신고 중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하는 공문서의 질문 앞에 맞닥뜨린다. 임다운은 할머니가 만든 가풍을 당당하게 이을 수 있을까? 수십 년 전 임봉근에게 그러한 질문은 의미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을 방법이 있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손녀는 가정사의 비밀이었던 이야기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책을 내자고도 한다. 마치 그때 임봉근 자신이 아이의 성을 바꿔버린 것처럼, 그리하여 정신이 맑아지고 비로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처럼 뚝심 있게 나아간다. 둘은 결국 닮았다. 닮은 둘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랑으로 엮여 있다.

여느 길동무가 주고받은 특별한 편지

이 책에서의 할머니는 노년의 헌신과 거리가 멀다. 좋아하는 음식은 본인이 먼저 먹고, 필요한 게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한다. 임봉근이 가장 원하는 것은 손녀 임다운의 방문이다. 손녀가 오면 사랑이 꽃피고, 대화로 소통할 수 있으며, 손녀가 필요할 걸 잘 가져다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손녀를 기다린 이유는 그간 써둔 편지 때문일 것이다. 둘의 편지는 곧 길동무의 대화다. 어제보다 오늘 더 친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다정한 길동무. 할머니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한다, 할머니가”라고 말하며 상대를, 특히 손녀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사랑의 재질에는 여러 기억이 포함되어 있다. 할머니의 생선조림을 좋아하는 손녀, 손녀의 영특함이 자랑스러운 할머니, 할머니의 집 안 패션이 당혹스러운 손녀, 손녀와 손녀 친구들의 품행이 볼썽사나웠던 할머니……. 둘의 기억은 사랑의 테푸(테이프)가 된다. 백지에 녹음되어 책이라는 음악이 된다. AI 스피커가 재생하는 트로트가 되고, 임봉근이 평소 좋아한 가곡이 되고, 크리스마스에 듣는 재즈가 되며, 손녀 결혼식에 할머니가 부르는 축가가 된다. 이 사랑의 노래를 최대한 많은 사람과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하면 모두 알 테니까. 나이 든다는 게 꼭 무언가 닳아 없어지는 것만은 아님을, 새로 반짝이는 무언가를 얻기도 할 것임을.


책 속에서

나이를 먹으면서 외로워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해주겠다며 할머니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내게 편지를 써서 산책할 겸 동네 우체통까지 걸어가서 넣고 오라고. 그러면 나도 답장하겠다고.
편지는 오지 않았다. 할머니 집 근처에서 우체통을 본 것 같았는데, 할머니 걸음으로는 너무 먼 거리였던 것 같다. 대신 할머니는 매일 쓴 편지지를 봉투가 미어터지게 넣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색 노트를 매일 한 장씩 세로로 길게 반 접어 착착 개어둔 편지. 할머니는 매일 편지를 쓰면서 나에게 말을 걸고 스스로를 살리고 있었다. 이제야 나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늦은 답장을 쓴다. 할머니가 외로워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16~17쪽(임다운)

요즘 들어 어떻게 늙고 싶은지 얘기하는 사람이 늘었다. 나이 들어도 섹시함을 잃지 않는 할머니,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할머니, 젊은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할머니, 흰머리와 주름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할머니……. 평생 할머니를 보며 자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젊음만을 경험해본 사람의 소망임을, ‘할머니가 된 나’라는 것이 내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74쪽(임다운)

화단 물 주기, 잡초 제거, 앞뜰 휴지 줍기, 담배꽁초 줍기, 건물 현관문 닫기, 우편함의 전단지 빼서 종이통에 담기……. 내 집도 아니지만 내 집처럼 가꾼다.
집주인이 나를 보고,
“할머니는 나와 같은 천주교 신자이시고, 화단에 물도 주면서 가꾸시고, 월세도 잘 내고, 생활이 반듯하셔서 좋아요. 우리 집에서 저세상 갈 때까지 오래 사세요.”
내가 말하기를,
“노인이 사니 겁이 안 나요? 여기서 죽을까 봐.”
집주인이 답하기를,
“할머니 같은 분만 살면 무슨 걱정이에요. 오래 사세요. 이곳에서 저세상 뜨세요.”
이렇게 말하니 고맙기도 했다. -118~119쪽(임봉근)

잘못 산 내 삶 불살라 훨훨 떠나보냈다. 자랑거리도 아닌 어두운 길 공개하는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앓이했던 내 가슴의 상처, 아픔 떠오르며 눈시울 적셨다. 말년에 별난 손녀 덕에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상상치 못한 일. 기자님 두 분 가신 후 옥인동 가서 닭백숙, 각색나물 맛있게 식사 끝내고 내 집에 다운 엄마가 데려다주었다.
슬프고 어두웠던 내 삶이여. 불살라 훨훨 하늘로 날아가거라. -140쪽(임봉근)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코를 콱 꼬집으며 말했다.
“이 코는 틀림없는 쫌보 코여. 코도 쪼그맣고 콧구녕도 쪼그매서 돈이 이 구녕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를 않는당게. 나한테도 쫌보처럼 굴 거여? 사람이 기마이가 있어야 할 텐데.”
할머니가 말하는 ‘쫌보’란 자린고비같이 인색한 사람, ‘기마이’는 시원시원하게 돈 쓰는 기질을 일컫는다. -145쪽(임다운)

친구들끼리 모이면 뭐든 냉소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요즘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 유명한 곳에 가봐도 별스럽지 않더라……. 무언가가 정말 좋았다고, 새로웠다고 호들갑 떠는 것보다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더 ‘쿨’해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삶이 진창일 때도 잠깐의 천국을 찾아가며 90년을 살아온 할머니를 보면, 나이 든다는 것이 꼭 무언가 쇠하고 닳아 없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덜 두려워진다.
하지만 할머니, 진짜 천국은 좀 천천히 찾아가도 돼. -167쪽(임다운)

늙으면 독보를 즐겨라.
혼자 걷는 즐거움을 찾아라.
혼자 식사를 즐겨라.
고독을 사랑하고 즐기며 살자.
자주 책 읽고 TV 뉴스 보고 시국을 알자.
심심할 때 카카오 틀고 마음 달래자.
그래도 심심하면 화단에 풀 뽑기, 꽃밭 손질, 숨통이
트이게 꽃 솎아주기.
내 마음을 풀들과 이야기한다.
심심한 날 할머니가. -208쪽(임봉근)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손녀와 그의 짝을 만나면 세대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날 맞춰주려고 노력함이 선하다. 내가 말년에 복이 있어 손녀와 그의 짝이 허전함을 달래주고 가슴에 품어내지 못한 감정을 품어내기도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좋은 일도 못 하고 늙어버린 내 삶에 한도 많지만 내 부족함인데 어쩌랴.
나머지 생 이대로만 살다 아프지 않고 살다 가게 하소서. 눈이 녹아 산책하다 따뜻한 햇볕 쬐고 방에 들어와 펜을 쥐니 이 또한 반복되는 나의 테푸.
사랑한다 너희들.
할머니가. -251쪽(임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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