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미당 서정주와 수화 김환기
두 거장의 경의로운 만남
신간 『그림이 있는 국화 옆에서』의 기획의 발단이 된 두 사람의 관계는 이 책의 말미, 미당이 쓴 산문 ‘수화 김환기’를 통해 추정해볼 수 있겠다. 미당 서정주와 수화 김환기는 1940년대 초부터 우정을 나눈 예술적 동지였다. 이들의 교유를 이어준 매개는 백자 항아리. 1941년 봄 『화사집』 출간 직후, 미당은 오장환 시인과 함께 종로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수화를 처음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의 초대로 성북동 자택을 방문한 미당은 이조 백자 항아리의 배치와 구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1954년에는 『시정신』 6월호에 발표한 서정주의 시 「기도」에서 영감을 받은 수화가 시화詩畵 〈항아리와 시〉를 그렸다. 미당의 시 「기도」가 “텡 비인 항아리”와 “텡 비인 들녘”으로 극한에서 깊어진 공허한 마음을 표현했다면, 수화의 그림은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던 충만의 순간을 노래했다. 시화집 『그림이 있는 국화 옆에서』는 두 사람의 첫 만남으로부터 85년 만에 세상에 나온 아름다운 우정의 결실이다.
김환기는 1956년 프랑스로 떠나며 서정주의 작품을 번역해서 알리고 싶어 했고, 귀국 후 1961년에는 서정주의 시집 『신라초』 출판기념회에 김광균, 김동리, 최정희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부록으로 실은 미당의 산문 「수화 김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네의 「기도」라는 시를 그림으로 하나 그렸네. 머지않아 프랑스에 가서 한동안 지낼까 하는데, 거기 가면 자네 시들을 기어코 번역시켜 보일 작정이니, 좋은 걸로만 골라 한 권 노트해서 나한테 주게.”
“이게 아직도 출판할 때를 못 만나서 미안하네만, 뭣하면 그냥 내게 맡겨 두어 보게. 또 나는 곧 뉴욕으로 갈 것이니, 이걸 출판시킬 기회가 있겠지.”
―화가 김환기
수화는 이조 백자의 지순한 미에 심취해 많은 항아리를 모았는데, 두루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해서 알맞게 배치해 놓고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시의 영상의 구성에도 상당히 일치되는 듯하여 감동하고 찬탄한 것이다. 나무와 달과 새를 항아리와 조화시킨 그림들의 구성 연습을 그는 이렇게 거듭거듭 했던 것인데, 그 정신 상태는 노자나 장자 쪽에 많이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
―시인 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