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의 이면에 숨은 인권유린 · 5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민주화에 기여했다”? · 7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 9
제1부 1970년 : 도시에 빨려 들어가는 농촌
제1장 수출의 국가 종교화
‘조국 근대화’를 종교로 삼은 박정희 · 27 ‘군사적 성장주의’와 ‘수출의 전쟁화’ · 29 수출은 전쟁이되 성전이었다 · 31 수출 ‘10억 달러’ 고지 점령 · 32 수출 군사작전의 양면성 · 35
제2장 닉슨 독트린과 대미 외교
리처드 닉슨과 샤를 드골 · 37 박정희의 리처드 닉슨 푸대접 · 38 박정희가 닉슨에게 당한 굴욕 · 39 1970년대의 한국을 지배한 주한미군 문제 · 42
제3장 경부고속도로 개통
‘민족사적 금자탑’을 세운 박정희의 ‘원맨쇼’ · 44 가장 싸고 빠른 군사작전식 건설 · 46 77명의 생명이 바쳐진 경부고속도로 · 48 ‘자동차 시대’와 ‘고속도로의 문학’ · 50 고속도로가 농촌에 미친 영향 · 52
역사 산책 1 고층빌딩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 · 56
제4장 경부고속도로와 지역 갈등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한 경부고속도로 · 59 투표 성향으로 나타난 소외감 · 61 공약이 된 호남선 복선화 · 63 호남인의 호남 탈출 · 65 ‘시장 논리’로 정착된 호남 차별 · 66
제5장 북한에 ‘경제 경쟁’을 제안한 8·15 선언
‘함정 피랍 사건’과 ‘현충문 폭발 사건’ · 69 ‘자력 방위’를 위한 방위산업 육성 · 70 북한 존재를 인정한 8·15 선언 · 71
제6장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김영삼·김대중·이철승 ‘40대 기수들’의 도전 · 74 김영삼의 자만, 김대중의 승리 · 76 박정희를 섬기는 ‘박정희교 신도’의 등장 · 78
제7장 평가교수단과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
지식인을 경멸한 박정희의 지식인관 · 80 박정희의 지식인 이용 · 82 평가교수단이 누린 특혜 · 83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의 발족 · 84 박종홍의 박정희 체제 옹호 · 86 함병춘의 군사정권 옹호 · 88 학계에서 존경을 누린 박종홍의 영향력 · 90
제8장 정인숙 살해 사건과 ‘요정 정치’의 천태만상
정인숙의 수첩에서 나온 33장의 명함 · 92 박정희인가, 정일권인가? · 94 국회 대정부 질문 · 95 아직도 진실을 밝힐 때가 아니다? · 97 ‘정성일의 아버지’ 미스터리 · 98 박정희의 놀라운 엽색 행각 · 100 부정부패를 심화시킨 ‘요정 공화국’ · 102 밤낮 구분이 없는 박정희 정권 실세들의 엽색 행각 · 103
제9장 33명이 죽은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아파트 건설 · 106 3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파트 붕괴 사고 · 108 부실, 싸구려, 날림공사 · 110 선거 때만 멈춘 판자촌 철거 · 111
제10장 시인 김지하의 ‘오적’
다섯 도둑의 부패상을 풍자한 담시 · 113 부정부패 고발도 반공법 위반 · 114 『사상계』 폐간, 『씨ㅇㆍㄹ의소리』 창간 · 116 정부 고관들이 사는 ‘도둑 마을’ · 118 무엇을 위한 5·16이었는가? · 119 독재와 부정부패는 동전의 양면 · 121
역사 산책 2 일일연속극 〈아씨〉의 인기 · 124
제11장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127 왜 전태일이 만든 모임은 ‘바보회’였을까? · 128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참상 · 130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 132 양심을 강타당한 대학생과 지식인 · 134 학생 시위와 기독교인들의 참회 · 135 ‘경부고속도로’와 ‘닭장집’ · 136
역사 산책 3 ‘우리들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 139
제2부 1971년 : 박정희 1인 체제의 완성
제1장 ‘언론화형식’과 ‘언론자유수호선언’
이희호와 팻 닉슨의 사진 촬영 논란 · 143 월간지 『다리』 탄압 사건 · 144 편집국장 옆에 앉은 중앙정보부원 · 146 “정상배로 전락한 신문 경영자” · 148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 149 교련 철폐와 공명선거 운동 · 151
제2장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 사건
보안사가 연출한 반공 드라마 · 153 서승이 당한 잔인한 고문 · 154 선거를 엎기 위한 음모극 · 157
제3장 제7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바람’ 대 색깔론 · 159 박정희의 대선 자금은 국가예산의 10% · 162 중앙정보부의 투표 결과 조작 · 164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는 거짓말 · 165
제4장 4·27 대선과 지역 갈등
“신라 임금을 뽑자”는 선동 · 167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선동 · 169 “럭키치약을 사지 말자”는 공작 선동 · 170 박정희의 호남 차별 인사정책 · 172
제5장 제8대 국회의원 선거와 ‘진산 파동’
신민당 당원들의 습격을 받은 유진산 · 174 신민당의 ‘실질적인 대승’ · 175 언론의 김대중 보도 통제 · 177
제6장 사법부 파동과 사법부 탄압 공작
판사들의 자체 정화운동 · 179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탄압 공작 · 180 박정희 정권의 재판권 침해 사례 · 182 박정희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종속된 사법부 · 183
제7장 그린벨트와 산림녹화
수도권 인구 억제를 위한 그린벨트 · 186 한국은 20세기의 대표적 녹화 사업 성공 국가 · 187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당한 판자촌 · 189
제8장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
쓰레기처럼 내버려진 사람들 · 191 주민 희망을 유린한 서울시의 배신과 오만 · 194 굶어죽을 정도로 굶주린 사람들 · 196 끝나지 않은 판자촌 빈민 문제 · 198
제9장 실미도 사건의 비극
서울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무장공비? · 200 김일성 암살을 위해 만든 특수부대 · 202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특수부대원들 · 204 단지 ‘후진적 인력 관리’의 문제였는가? · 205 동료들에게 맞아 죽은 탈영자 · 206 실미도 부대는 ‘홧김에 만든 부대’ · 207
제10장 공화당 ‘4인 체제’의 몰락
박정희의 ‘소름 끼칠 듯한 무서운 눈매’ · 210 김성곤은 박정희의 정치자금 창구 · 211 내무부 장관 오치성 해임건의안 가결 · 212 공화당 의원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고문 · 215 공화당과 의회정치의 사망 · 216 박정희의 냉혹한 인간관 · 217
제11장 ‘10·15 위수령’과 ‘12·6 국가비상사태’
수경사 병력 고려대 난입 사건 · 221 서울 8개 대학에 무기휴업령을 내린 10·15 위수령 · 222 전 서울대생 4명의 ‘내란예비음모’ 사건 · 224 헌법적 근거가 없는 12·6 국가비상사태 · 224
제12장 프레스카드제와 MBC 〈뉴스데스크〉
민심에 편승한 언론통제 · 226 박정희 정권의 프레스카드제 악용 · 229 신문 산업의 경영 합리화 · 230 앵커가 진행하는 MBC 〈뉴스데스크〉 탄생 · 231 재벌과 박정희 측근에게 넘어간 MBC · 234 MBC 분양 비리와 부작용 · 236 MBC 분양이 보여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 · 237 범여권계 매체 계열화 · 238
제13장 포크 음악, 라디오 DJ, 미팅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 · 241 라디오 DJ 프로그램과 음악다방 · 242 교회 갱신 운동에 이용된 포크 음악 · 245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 · 247
역사 산책 4 인스턴트 커피가 변화시킨 다방 문화 · 249
제3부 1972년 : 박정희 영구집권 체제의 완성
제1장 리처드 닉슨의 중공 방문과 남북대화
중공에 초청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 255 브레턴우즈 체제의 폐기 · 258 김일성의 남북대화 제의 · 260 닉슨의 중공·소련 방문 · 261 닉슨의 중공 방문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 · 263 역사적인 울산 현대조선소 기공식 · 264 기상천외한 ‘정주영 공법’ · 266
제2장 통일 열기를 만들어낸 ‘7·4 남북공동성명’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다니! · 269 박정희의 정치적 필요 · 270 남한도 북한에 배울 게 있다 · 273 서두른 30여 명 사상범 사형 집행 · 273 남북적십자회담은 열렸지만 · 274
제3장 사채를 동결한 8·3 긴급경제조치
기업을 위한 사채 동결 · 278 8·3 긴급경제조치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 280 정경유착과 재벌 중심 경제 · 282
제4장 박정희의 ‘10월 유신’ 선포
대통령 종신제를 위하여 · 285 북한도 두려워한 국제 정세 변화 · 287 사쿠라만 활짝 핀 신민당 · 289 ‘악질’ 의원들에게 가해진 고문 · 290 “내가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 · 291
제5장 ‘10월 유신’ 국민투표와 ‘체육관 선거’
91.5% 찬성, 강요된 부정선거 · 293 입법부와 사법부의 무력화 · 294 99.99% 지지가 나온 ‘체육관 선거’ · 295 ‘박정희는 유신, 김일성은 유일’ · 297 김일성의 1인 지배체제와 세습 강화 · 299 남북한의 ‘내통 가능성’을 부정한 김종필 · 301
제6장 ‘10월 유신’, 언론과 지식인은 무엇을 했는가?
언론의 대대적인 유신 홍보 · 303 이어령의 프랑스 파리 피난 · 304 취재 기능을 거세당한 언론 · 306 박정희와 『조선일보』의 유착 · 307 『조선일보』의 ‘10월 유신’ 지지 · 310 ‘항가리 헌법’으로 불린 유신헌법 · 312 박일경의 ‘한국적 민주주의’론 · 313 갈봉근의 ‘권력의 인격화’ 이론 · 315 강만길이 느낀 배신감 · 316
제7장 통일벼와 절미 운동
박정희의 ‘희’를 딴 ‘희농 1호’의 실패 · 318 ‘진짜 기적의 볍씨’ 통일벼 · 320 절미 운동 위반은 범죄 · 321 학교에서 과잉 단속 · 323 ‘쌀밥=미개’, ‘밀가루=문명’ · 325
제8장 새마을운동과 민족성 개조론
‘시멘트 생산 과잉’에서 비롯된 운동 · 327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화 · 329 박정희의 민족성 개조론 · 330 새마을운동의 사회개혁운동화 · 332 “유신 이념과 연결된 정치적 국민운동” · 334
역사 산책 5 ‘화투 화형식’과 ‘주부도박단’ · 336
역사 산책 6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339
역사 산책 7 미신·무속 타파 운동 · 342
제9장 이순신 숭배와 국민의식 개조 사업
국사 교육 강화가 만든 ‘국사 붐’ · 345 박정희의 이순신 성웅화 작업 · 346 이순신 영화 때문에 망한 김진규 · 349 ‘성웅=멸사봉공 정신’ · 350 효도도 ‘국민총화’를 위하여 · 351
제10장 어용 단체로 전락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 착취가 최대 경쟁력 · 352 정권에 포섭된 한국노총 · 354 노조 간부들의 귀족화 · 356 한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 · 357
제11장 남진·나훈아와 김추자·신중현의 활약
남진과 나훈아의 경쟁 · 358 경쟁과 상부상조 · 360 〈고향역〉·〈님과 함께〉의 사회학적 의미 · 362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 364 신중현의 예술가적 근성 · 366 51명이 사망한 서울시민회관 화재 · 368
제12장 정부 주도 축구의 인기
‘실세’ 장덕진의 축구협회장 취임 · 371 메르데카컵·킹스컵 우승이 불러온 ‘축구 열풍’ · 373 1970년 멕시코월드컵 열풍 · 375 ‘박대통령배 아시아축구대회’ 출범 · 377 이회택의 눈물과 삭발 · 380 축구 황제 펠레의 방한 경기 · 381 북한의 올림픽 금메달이 준 자극 · 384
제13장 왜 공중전화 통화시간을 3분으로 제한했는가?
전화기 50만 대로 34번째 중진국 · 386 ‘청색전화’와 ‘백색전화’의 차이 · 388 1971년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 개통 · 390 1972년 공중전화 3분 제한제 · 391
주 ·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