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경제개발과 가족계획
피임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 · 19 1인당 GNP를 높이기 위해 · 20 군사작전식 가족계획운동 · 21 결혼 연령의 변화와 공업화의 영향 · 23
제2장 포항 석유 발견 사건
온 국민을 강타한 행복한 충격 · 25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조선일보』의 차이 · 26 한국을 휩쓴 회오리바람과 광풍 · 29 ‘포항 석유 쇼’의 진상 · 30
제3장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언론이 죽어 있는 상황에서의 저항 · 33 이게 ‘정부 전복 선동 사건’이라고? · 35 인권운동 활성화의 계기 · 38 반상회와 상호 감시체제 · 39
역사 산책 1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체제’ · 41
제4장 폭력이 난무한 신민당 내분
‘한국 야당사에서 가장 추악한 작품’ · 44 이철승의 대표최고위원 당선 · 45 이철승의 중도통합론 · 47
제5장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미루나무 가지치기가 부른 북한의 살인극 · 49 북침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 · 50 ‘음흉한 의도’ 또는 ‘건수 올리기’? · 53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 54
제6장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한국 정부, 미국 정치인들에게 뇌물 제공’ · 56 2개월 늦은 한국 언론의 보도 · 58 농촌을 희생으로 한 대미 로비 · 59
제7장 세종대왕 숭배와 외래어 추방 캠페인
세종대왕을 통한 이미지메이킹 · 62 프로그램과 연예인 이름의 국산화 · 63 스포츠 용어의 국산화 · 65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 · 66 지하철 독서문화의 탄생 · 68
제8장 신문과 TV의 갈등, ‘하이틴 영화’의 성행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일일연속극’ · 69 ‘무하마드 알리’ 사건 · 71 신문과 TV의 광고 전쟁 · 72 왜 박정희 정권은 대마초 사건을 뻥튀기했는가? · 73 1년에 25편이나 제작된 ‘하이틴 영화’ · 76 ‘하이틴 영화’의 사회학 · 78
역사 산책 2 ‘호스티스 영화’와 ‘총화 유신 이념의 구현’ · 79
제2부 1977년 : ‘100억 달러’의 빛과 그림자
제1장 프레이저 청문회와 싱글러브 항명 사건
박정희와 지미 카터 사이의 갈등 · 83 프레이저 청문회와 ‘어글리 코리안’ · 85 코리아게이트가 민족주의 문제였는가? · 87 김한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 89 김한조의 박정희에 대한 원망 · 90 김한조의 한 맺힌 삶 · 91 주한미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의 항명 · 93
제2장 충효 교육과 문교부·문공부의 경쟁
‘정신 무장’을 의미한 ‘정신문화’ · 96 “충효 교육을 중심으로 한 도의 교육의 강화” · 98 문교부와의 경쟁에 나선 문공부 · 99 박근혜가 후원한 새마음운동 · 100 ‘박정희 민족주의의 반민족성’ · 101
제3장 리영희 필화 사건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 · 103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다’ 하면 위반” · 104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 · 106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활동 · 107
제4장 병영체제하의 민주화 투쟁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 · 109 “야 이놈아, 네가 판사냐” · 110 학생들의 ‘가미가제’식 투쟁 · 112 성직자, 해직 교수, 해직 기자들의 투쟁 · 113
제5장 100억 달러 수출 달성
1977년 의료보험 실시 · 115 박정희의 ‘군사작전식 밀어붙이기’의 성공 · 117 세계 17위의 수출국이 되다 · 118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최초 종합우승 · 121 분양만 받으면 1년 내 두 배 장사 · 123 정부의 ‘강남 키우기’와 중동 특수 · 124
역사 산책 3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항만공사 · 127
역사 산책 4 지방민들을 압도한 대우빌딩의 위용 · 130
제6장 MBC 대학가요제와 그룹사운드 붐
예상을 뒤엎은 뜨거운 열기 · 133 대학가요제의 사회사적 의미 · 135 대학가의 그룹사운드 붐 · 137
제7장 컬러TV 방송 논란과 농촌
삼성전자·금성사가 참여한 1972년 논쟁 · 138 박정희의 컬러TV 방송 반대 이유 · 140 박정희의 농촌에 대한 이중성 · 141 1977년 최고의 TV 스포츠 이벤트 · 143
제3부 1978년 : 동일방직과 현대아파트
제1장 도시산업선교회와 민주노조운동
부의 소수 집중과 상대적 박탈감 · 149 인간적 모독에 저항한 인권운동 · 150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공격 · 151 한국노총의 조직행동대 결성 · 153 “나는 왜 산업선교회원이 되었나?” · 154 산업선교를 방해하기 위한 ‘교양강좌’ · 156
제2장 ‘공순이’에 대한 사회적 폭력
서울의 ‘촌놈 차별’ 또는 ‘촌년 차별’ · 158 ‘공돌이’보다 훨씬 더 당한 ‘공순이’ · 159 공장에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이유 · 161 학력 이데올로기의 폭력 · 163 ‘상징적 억압에 대한 분노’ · 165
제3장 똥물을 뒤집어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의 알몸 저항 · 167 성폭력 형태의 잔인한 보복 · 169 입에까지 똥을 집어넣은 만행 · 170 “우리는 똥 먹고살 수 없다!” · 173 중앙정보부가 조종한 공작 · 174
제4장 언론의 침묵과 부활절 예배 중단
동일방직 똥물 사건에 대한 언론의 침묵 · 177 여성 노동자들이 중단시킨 기독교 방송 · 178 ‘언론의 시선을 잡아보려는 필사적인 시도’ · 179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 · 182 ‘공장의 불빛’으로 승화된 투쟁 · 183
역사 산책 5 교회는 여공들의 진정한 친구였는가? · 186
제5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악이 선을 가장했던 세상’ · 189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 191 “반드시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 191 “너무 아파 나는 피를 토한다” · 192
제6장 서울대 6·12 시위와 ‘교육지표’ 사건
대학생들의 유인물 배포 투쟁 · 195 6·12 시위의 새로운 면모 · 196 ‘국민교육헌장’부터 잘못되었다 · 197 학생을 포섭해야 하는 교수의 비애 · 199
제7장 제9대 대통령 선거
한밤중의 청와대 인근 전차 시위 · 201 파국을 향해 치달은 박정희 정권 · 202 공산주의를 빼닮은 박정희의 선거 · 203 언론은 선전·선동 기관지인가? · 205 박정희의 제9대 대통령 취임과 김대중 가석방 · 206
제8장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새롭게 창조된 ‘탐욕의 문화’ · 209 교훈을 남기지 못한 현대아파트 사건 · 211 경기 과열에 따른 욕망 과열 · 213 부정부패 비판도 긴급조치 9호 위반 · 215 ‘복부인’과 ‘제비족’의 활약 · 217 ‘한강의 기적’과 강남 개발의 가속화 · 219
역사 산책 6 말죽거리 잔혹사 · 223
제9장 국산 미사일 개발과 미국의 견제
착수 6년 만에 쏘아올린 미사일 · 225 미국의 견제 속에 이루어진 핵개발 시도 · 226 신군부는 ‘핵개발 포기 각서’를 써주었는가? · 228
제10장 ‘함평 고구마’와 ‘영양 감자’ 사건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투쟁 · 230 시국 사건으로 비화된 감자 피해보상 투쟁 · 232 기이한 ‘오원춘 사건’ · 233 농업정책과 새마을운동의 허구성 · 236
제11장 새마을운동과 대중동원 정치
국민 1인당 평균 2회 받은 새마을훈련 · 239 새마을운동의 외화내빈 · 241 ‘돈에 화신 들린 농촌’ · 242 ‘농민을 사람으로 대접한 최초의 지배자’ · 243 ‘농촌 민주주의’의 명암 · 244 새마을부녀회의 명암 · 247 방림방적의 새마을운동 · 249
제12장 민권일지 사건과 신문 판매 전쟁
‘언론은 관민 합작에 의한 악덕 상품’ · 251 은폐·왜곡된 250여 건 기사화 시도 · 253 ‘앵무새 보도원으로 전락한 언론’ · 254 ‘방황하는 농촌’ 기사에 대한 탄압 · 255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100만 부 돌파 · 257 용인자연농원 돼지 분뇨 방류 사건 · 259 삼성조선의 시추선 설계도면 절취 사건 · 260 정주영의 ‘신문 없는 서러움’ · 262
제4부 1979년 : 박정희 시대의 종말
제1장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중간집단운동’에 대한 탄압 · 267 고문의 상습화·생활화 · 269 박정희 정권은 ‘야수의 정권’ · 271
제2장 김영삼의 신민당 총재 복귀
1978년 12·12 총선과 여야 역전 · 274 백두진 파동과 이철승의 ‘사쿠라’ 정치 · 275 김대중과 김재규의 지원 · 276
제3장 지미 카터의 한국 방문
카터의 방한 반대운동 · 280 양심범가족협의회와 동아투위의 성명 · 282 ‘김일성 면담 용의’ 발언 파동 · 282 박정희와 카터의 갈등 · 283 주한미군 철수 시한부 중지 발표 · 286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박정희의 착각’ · 288
역사 산책 7 문인들의 시위 투쟁과 옥중 권리 투쟁 · 290
제4장 YH 노동자 폭력 진압 사건
“근대화의 역군을 윤락가로 내몰지 말라” · 292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하나?” · 293 ‘미필적 고의살인’과 무차별 폭행 · 295 언론의 ‘마녀 사냥’ · 297 강제 귀향 여성 노동자들의 운명 · 298 ‘정신질환적인 편집광 증세의 극치’ · 300
제5장 김영삼 의원직 제명
‘박정희 정권 타도를 위한 범국민적 항쟁’ 선언 · 302 31년 만에 처음으로 발동된 국회 경호권 · 303 신민당 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 · 305
제6장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실종 사건
‘용도 폐기’된 김형욱의 운명 · 307 박정희의 “나는 모른다”는 주장 · 308 누가 김형욱을 죽였는가? · 309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 312
제7장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아직도 평가가 어려운 남민전 사건 · 314 꼭 ‘남조선’이라는 말을 써야 했는가? · 317 이게 인간이 사는 세상인가? · 317 김남주와 홍세화의 활동 · 319 남민전 사건의 영향과 의의 · 321 대구는 왜 보수적인 도시가 되었는가? · 322
제8장 부마 민주항쟁
경제에 손을 든 박정희 · 325 박정희의 해결 능력을 넘어선 위기 · 326 박정희의 통제를 벗어난 대자본 · 327 ‘10·16 항쟁’ 또는 ‘부마 민주항쟁’ · 329 항쟁의 뇌관을 건드린 경제 · 331 ‘새로운 힘의 센터’의 등장 · 333
제9장 10·26 사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334 차지철과 김재규의 엽기적 경쟁 관계 · 336 계획적인가, 우발적인가? · 338 보안사에 넘어간 정국 주도권 · 339 김재규 평가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 · 341 1970년대 한국인의 삶의 일부였던 박정희 · 343
역사 산책 8 혈서는 살아 있다 · 345
제10장 박정희의 엽색 행각
손찌검까지 동원된 육박전 · 348 압구정동 H 아파트 사건 · 350 사흘에 한 번씩 연예인 100명 섭렵 · 351 박정희의 가학적 섹스관 · 353 사무라이를 꿈꾼 ‘대일본 제국 최후의 군인’ · 355
제11장 박정희의 용인술과 부정부패
박정희의 이간책 수법 · 357 박정희의 독심술과 두 얼굴 · 359 용인술과 부정부패는 동전의 양면 · 361 ‘한강의 기적’의 비용인가? · 364 “인간이란 어차피 다 이중인격자야” · 366 박정희의 촌지 봉투 대량 살포 · 367
제12장 명동 YWCA 위장 결혼식 사건
‘거국중립내각구성’과 ‘조기 총선’ 주장 · 369 ‘해빙 무드’와 사태의 급반전 · 371 신군부의 악랄한 고문 · 372 민주화 의제 변화와 윤보선의 변절 · 373 신군부의 ‘김대중 죽이기’ 음모 · 375
제13장 12·12 군사반란
제10대 대통령 최규하의 변심 · 377 신군부가 저지른 12·12 군사반란 · 379 장태완과 정승화의 비극 · 381 하나회가 주도한 12·14 군 숙청 · 384 영관급 육사 출신들의 인사 정체에 대한 불만 · 385 전두환의 ‘뜸 들이기’ 작전 · 387 새로운 파시즘의 재기 예고 · 388
제14장 축구의 남북 대결과 한일전
TV 중계방송을 하지 않은 남북 대결 · 392 방콕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우승 · 394 남북 선수들간의 뜨거운 신경전 · 395 다시 불붙은 한일전 · 397
역사 산책 9 ‘축구 영웅’ 차범근의 활약 · 399
맺는말 :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
경부고속도로가 낳은 ‘번영과 소외’ · 402 ‘국가주의적 지도자 숭배의 문화’ · 404 과연 ‘인간의 얼굴을 가진 온건한 파시즘’이었는가? · 406 개발독재가 낳은 신민 문화 · 408 상호 갈등 해소와 화합은 불가능한가? · 410
주 ·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