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하나, 둘, 셋, 멸치 ― 우리가 잊고 살았던 “눈 감지 마세요”라는 주문
우리는 모두 주머니 속에 고성능 카메라를 넣고 다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셔터를 누르지만, 그 사진들 중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풍경은 얼마나 될까. 0과 1로 압축되어 신속하게 처리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시선은 대상의 표면만을 흝고 지나갈 뿐 그 이면의 맥박까지 읽어내지는 못한다.
이유상 시인의 첫 디카시집 『하나, 둘, 셋, 멸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 서기를 권한다. 시인은 말한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포착한 이미지와 내밀한 언어의 초점이 맞닿는 순간, 발밑으론 흙의 맥박이 뛰고 부서지는 파도 위로 가락의 숨결이 새겨진다”(「시인의 말」)고. 그의 시는 단순히 예쁜 사진에 글을 덧붙인 감상문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이 평생토록 뷰파인더를 통해 길어 올린 ‘빛의 언어’와, 삶의 곡절을 견디며 정제해낸 ‘문자의 언어’가 부딪쳐 일으키는 거대한 파문이다.
표제작 「가족사진」을 보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고양이 가족의 눈빛 앞에서 시인은 “자아 여기 보세요/ 눈 감지 마세요/ 하나, 둘, 셋/ 멸치”라고 주문을 건다. 이 짧은 외침은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한 신호가 아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말자는, 생의 찰나를 똑바로 응시하자는 간절한 약속이다.
그의 시선은 화려한 도심의 스카이라인보다 “낡은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불경기」) 망한 공장의 기둥에 머물고, “마른 눈금으로만 세상을 재고 메마른 귀로만 진실을 들었던”(「물에 빠진 풍경」) 우리의 오만을 꾸짖는다. 시인은 물에 비친 기와집을 통해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미학적 성찰을 건네며, 비워야 채워진다는 “생각하는 그릇”의 지혜를 나직이 읊조린다.
이 시집을 펼치는 것은 한 권의 정갈한 사진집을 보는 즐거움을 넘어, 사물과 세계가 우리에게 건네는 “숨겨진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디지털 피로감이 극에 달한 오늘, 당신의 마음속 뷰파인더를 다시 정렬하고 싶다면 이 시집의 초대에 응해보길 바란다. 별을 꺼 놓고 잠드는 시인의 그믐밤 아래서, 당신과 나 사이 쏟아지는 푸른 기척을 만날 수 있을 테다.
시인의 말
바다는
가름선에 서서 경계를 품는다
시퍼런 낭떠러지 같은 파고 밀려오고
해안은 등 돌리며 어깨를 들썩인다
어제의 붉은 기억 매달고
삼켜낸 말마디들이 윤슬로 팔딱거릴 때
비로소 눈빛이 마주친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포착한 이미지와
내밀한 언어의 초점이 맞닿는 순간
발밑으론 흙의 맥박이 뛰고
부서지는 파도 위로
가락의 숨결이 새겨진다
2026년 4월
이유상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