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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노래하는 신
2부 깨지며 울리는 유리잔이 되어라

주(註)
작가 연보
작품에 대하여: 죽어서 부르는 사랑 노래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20세기 독일의 대표 시인. 평생을 떠돌며 실존의 고뇌에 번민하는 삶을 살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체코 프라하의 독일계 가정에서 1875년에 태어났다. 첫딸을 잃은 어머니는 릴케를 일곱 살까지 여자처럼 키웠으며, 장교로 입신하는 것이 꿈이었던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5년간 군사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러나 몸이 허약했던 릴케는 사관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으며, 프라하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97년 연인 루 살로메를 만나면서 문학적으로 성숙하게 되었다.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과 파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초기 대표작 『기도시집』을 완성하였다. 그즈음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하였고, 로댕, 세잔 등 화가의 예술 세계를 탐닉하게 되었다. 로댕과의 만남은 『신시집』 및 자전소설 『말테의 수기』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 방랑의 삶을 계속한 릴케는 말년의 역작으로 평가되는 장편 연작시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1922년에 완성하였다. 1926년에 스위스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김재혁
시인,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명예교수. 고려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 방문 교수, 고려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릴케의 시적 방랑과 유럽 여행』, 『서정시의 미학』 등을 집필했다. 199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아버지의 도장』, 『딴생각』이 있다. 옮긴 책으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릴케의 기도시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말테의 수기』, 게오르크 트라클의 『푸른 순간, 검은 예감』, 니체의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골렘』, 노발리스의 『푸른 꽃』, 귄터 그라스의 『넙치』,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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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부 26편과 2부 29편, 총 55편의 소네트에서 릴케의 주된 관심사는 삶과 죽음의 공동관계다. 그는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일체임을 문학적으로 성찰한다. 죽음이 삶의 종말이나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삶과 죽음을 지니고 있다. 가령 과일을 맛보는 행위는 인간에게 삶의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면서 과일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과일의 맛에서 지상의 환희와 지하의 기운을 동시에 체험하는 순간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창조가 생겨난다. 죽음의 세계를 수용할 때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와 전일적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잘 익은 둥근 사과, 배 그리고 바나나,
구스베리… 이것들은 입안으로
삶과 죽음을 말한다… 나는 느낀다…
이것들을 맛보는 아이의 얼굴에서

읽어라. 멀리서 온 것이다. 입안에서
말할 수 없이, 느리게 일어나는가?
전에 말이 있었던 곳에는 과육에서
놀랍게 풀려난 보물이 흐른다.

말해보라, 너희가 사과라고 부르는 것을.
이 단맛, 처음엔 빽빽하지만
맛보는 동안 서서히 일어나서는

맑아지고 깨어 있는 투명한 그 맛,
두 가지 뜻을 지닌, 태양과 흙과 이 세상의 맛―
오 체험이여, 느낌이여, 기쁨이여―, 대단하다!
―1부 열세 번째 소네트 전문

“맛이 쓰다면, 너 자신이 포도주가 되어라.”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과 불안을 끌어안는 릴케의 시 세계

릴케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시적으로 재해석하여 시인의 사명과 예술적 변용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삶과 죽음의 구분을 넘어 두 영역 모두에 발 딛고 있는 오르페우스는 시인의 모범이자 이상이다. 죽음도 삼키지 못한 그의 노래는 지상의 덧없는 존재를 찬미하여 무상성에서 영원성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의 소명을 대변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시간의 구별도 사라진 “노래는 현존재”인 오르페우스적 세계에서 사물은 시인의 손길을 거쳐 자족적 존재로 거듭난다. 결국 릴케는 고통스러운 실존을 비탄마저 긍정하는 “찬미의 공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는 예술의 힘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대, 신성한 이, 끝까지 울리고 있는 이여,
마음을 얻지 못한 무녀들이 떼 지어 달려들었을 때,
당신은 그들의 절규를 질서로 눌렀고, 아름다운 당신,
파괴하는 자들 속에서 당신의, 세우는 음악이 솟아올랐네.

그들이 미친 듯 날뛰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당신의 머리와
리라를 부술 수 없었네; 그들은 많은 날카로운 돌을
당신의 심장을 향해 던졌지만, 그 돌들은 모두
부드러운 것이 되어 당신을 어루만지며 귀 기울였네.

마침내 복수심에 휩싸여 그들이 그대를 찢어발겼을 때에도,
그대의 울림은 여전히 사자들과 바위들 속에 남아 있었네,
나무와 새들 속에도. 그곳에서 당신은 지금도 노래하네.

오 그대 사라진 신이여! 그대 끝없는 흔적이여!
마지막엔 적의가 그대를 갈기갈기 흩어놓았기에,
이제 우리는 듣는 자들이며 자연의 입이라네.
―1부 스물여섯 번째 소네트 전문

릴케는 평생 고독한 방랑자로 살며 실존의 근원적 이유를 추구했다. 그의 시정신은 내면을 향한 명상(『기도시집』)과 외부 사물을 향한 관찰(『형상시집』, 『신시집』)을 거쳐 삶과 죽음을 하나의 거대한 순환으로 통합하는 만년의 대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와 『두이노의 비가』에 이르렀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노래가 영원히 살아남아 온 세상을 정화했듯이, 아름다움과 철학이 함께 숨 쉬는 릴케의 시도 100년 뒤 여전히 우리의 영혼을 흔든다. 삶의 필연적인 고통과 허무를 회피하지 않고 끌어안으려는 릴케의 꿈은 고독과 불안이 일상이 된 현대인에게 위안과 구원의 가능성을 선사한다.

멀고 먼 곳의 고요한 친구여, 느껴보라,
너의 숨결이 여전히 공간을 넓히는 것을.
어두운 종루 그 들보 안쪽에서
너 자신을 울려라. 너를 갉아먹는 것이

그 영양분으로 강한 것으로 자라나리라.
언제나 변용 속으로 들어가고 나와라.
너의 가장 쓰린 경험이 무엇이던가?
맛이 쓰다면, 너 자신이 포도주가 되어라.

이 넘침으로 가득 찬 밤에
네 감각의 십자로에서 마법의 힘이 되어라,
네 감각의 신비한 만남의 의미가 되어라.

그리고 이 세상이 너를 잊었다면,
조용한 대지에게 말하라: 나는 졸졸 흐른다.
빠른 물에게 말하라: 나는 존재한다.
―2부 스물아홉 번째 소네트 전문

1973년 시작한 국내 최고(最古) 문학 시리즈!

‘카르페 디엠’의 시인 호라티우스부터 영화 「패터슨」의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까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부터 모더니즘 시대의 『악의 꽃』, 『황무지』, 페르난두 페소아까지, 19세기 대표 시인 에밀리 디킨슨부터 20세기 미국 문단의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까지, 반세기 동안 엄선된 시선집으로 가장 오랜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는 국내 최고 문학 시리즈 ‘세계시인선’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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