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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미국 패권의 몰락, 위기와 기회

1장 퇴행하는 세계
중고의 시대, 퇴보의 시대 | 역사적 ‘초퇴행’의 시대 | 전쟁, 죽음의 불평등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거울 | 1970년대, 세계적 보수화의 분수령 | 비교 심리, 몰락과 수렴 | ‘핏줄’로 퇴행하는 세계 | 우크라이나 전쟁: 무승부의 이유 | 호소와 연대의 실종 | 몸, 계급의 산물

2장 미국은 왜 그럴까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 1945~1955 |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산파 | 제국의 자충수들 | 특별한 시대의 종말 | 위기 대처법: 닉슨 모델 | 인권 부재의 외교 | 적대적 공생의 역사 | 홀로코스트의 기억 | 필연의 실패 | ‘빈민’들의 애국주의 | 상징 자본 축적의 논리

3장 트럼프는 왜 이럴까
옐친의 그림자 | 오랜 역사의 산물 | 미국 노동자의 선택 | 보편 시대의 종말 | 두 극우의 공통점 | 이민자의 나라 | 광의의 파시스트 | ‘배신’의 계보 | 미국의 고르바초프? | 패권의 가격 | 러시아 간첩? | 트럼프주의라는 심적 안식처 | 국가의 자살 | 미래가 될 과거 | ‘딜’ 외교의 실패 | 오바마와 바이든의 계승자

4장 이스라엘 너는 누구냐
유대인 지배론 | ‘유대인 사회주의 운동’ 흥망사 | 소련과 시온주의 | 시온주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폐쇄회로 | 소수자 혐오에 대하여 | 반유대주의 없는 사회? | 소수자의 동화 | 적대적 타자의 이미지 | 하마스에 대하여 | 미래는 있는가? | 교류의 힘 | 작은 희망

5장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제국의 주요 상품, 무기 | 글로벌 민족주의 시대 |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 중국의 ‘미국 시대’의 종언 |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중국은 미국의 미래? | 장기적인 적대적 공존 | 가장 본질적인 차이 | 21세기 혁명의 모습 | ‘포스트 서구 세계’가 온다 | 학술에서 ‘그레이트 아메리카’ | “모든 건 미국 탓이야” | 쇠약해지는 야수의 발악 | 좀 더 큰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말: 관리자 국가 시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저자 소개
저자 : 박노자
박노자가 말하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 1973년 소련의 레닌그라드(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 때 조선사(한국사)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평생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991년, 한-소 수교 영향으로 평양 김일성대학 대신 서울 고려대학교로 언어 실습 유학을 왔습니다. 가야 준국가들의 정치와 외교에 관해 박사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소련에서 학위를 받은 후 서울로 돌아와 교육계에서 3년간 외국인 노동자로 생활했습니다. 혹독했지만 한국 생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평생 한국에서 눌러앉기를 기대해 국적을 획득했지만, 한국 대학 강단에서는 도저히 정규직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가불 2000년에 먼 노르웨이에서 정규직을 얻어 26년째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직접 겪고 느낀 바를 살려 《당신들의 대한민국》 《당신이 몰랐던 K》 《미아로 산다는 것》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 대중서를 몇 권 냈습니다. 그사이 공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근현대사 연구에 천착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붉은 시대》 등은 그 결과물입니다. 지금은 미국 패권의 쇠락 등 현실에 대한 글을 쓰는 동시에, 1920~1930년대 ‘붉은 수도’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들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2020년대와 1920년대를 동시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 물론 제게는 1920년대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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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관세 폭탄, 다자주의 파괴, 베네수엘라 침공, 그린란드 야욕…
미국은 왜 이럴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1945년)과 함께 시작된 팍스 아메리카나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제조 생산력, 소비력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국은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통해 달러를 세계 기축 통화로 세우고,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 부흥을 주도하며, 자유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 동맹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전 지구적 자본 축적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절하고 중재하는 전무후무한 지위를 누렸다. 전 세계가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의존하고, 미국의 소비 시장에 상품을 팔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안보를 의탁하는 거대한 순환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견고해 보이던 패권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금융 자본의 비대화를 불러왔지만 동시에 미국의 실물경제를 지탱하던 제조업의 쇠락과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의 형성이라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산업의 퇴조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했고,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은 내부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2008년의 세계 공황, 2010년대 초반 실물경제 초강대국으로 중국의 부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패배, 트럼프형 신보호주의의 등장,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맞물리며 미국의 일극 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91쪽)

게다가 상당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돈 먹는 하마’인 ‘패권 비지니스 모델’은 소득에 비해 낭비성이 지나쳐 경제성이 떨어진다. 하위 동반 국가들까지 챙겨야 하는 패권 국가보다 그냥 자국의 이해만 챙기는 보통 열강 미국을 원하는 것이다.(177쪽) 바로 이때 출현한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주의는 세계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미국 하층 노동 계급의 분노와 인종주의적 편견이 결합된 우익 포퓰리즘의 결정체다. 무엇보다 트럼프주의의 본질은 국제 사회의 ‘규범’과 ‘동맹’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외피를 벗어던지고, 오직 단기적인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미국 제일주의’에 있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표방해 온 보편적 가치와 외교적 신뢰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고율 관세 부과와 무리한 투자 강요, 인권 및 기후 관련 66개 국제기구와 협약 탈퇴, 방위비 분담금 압박, 대외 원조 중단, 강경한 이민 정책, 언론 탄압 등 트럼프 행정부의 기행에 가까운 정책들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트럼프에게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를 보았다. 옐친 역시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쳤고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를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다. 그 추진 주요 동력은 제국 유지 비용의 축소였는데 이는 결국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다.(171쪽) 만약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는 트럼프주의가 고착된다면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극한의 양극화와 정치적 내란 상태에 직면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국제 질서를 교란하는 ‘예측 불가능한 깡패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점은, 미국 패권의 몰락이 평화로운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며 무제한 각축을 벌이는 ‘야만의 시대’를 여는 서막이라는 사실이다.

자국의 이익과 생존만이 우선되는 포스트 아메리카나 앞에서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열강들의 부단한 경쟁은 본래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일반적인 상황이다. 여기에는 국제 사회를 지탱하던 최소한의 법적 합의나 인권이라는 보편적 규범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과거 냉전 시기나 유일 패권 시기에는 최소한 강대국들 사이의 명문화된 규칙이나 패권국의 강력한 중재가 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중재자가 사라지고 패권 공백이 넓어지는 현재, 각국은 오직 자국의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글의 법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정세를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주권 국가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범하고 병합하려는 행위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었으나 오늘날 다시금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56쪽) 또한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명 살상과 이를 저지하지 못하는 국제 사회의 무능은 인권과 인도주의라는 가치가 얼마나 쉽게 폐기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더 큰 문제는 전 세계적 경기 하락 국면에 패권 이동, 즉 열강 사이의 싸움까지 겹치면 최악의 반동 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핀란드 그리고 미국 등에서 초강경 우파가 집권한 것도 위기의 한 징후다.(28쪽) 또 다른 우려는 세계적 경기 하락 국면에서 누적된 모순은 결국 큰 전쟁을 불러왔다는 데 있다. 전간기(戰間期, 1918~1939)에 누적된 모순이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무한 각축은 신자유주의 파산, 기후 붕괴와 맞물려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미 세계는 반도체, 에너지, 희토류 등 전략 자원을 둘러싼 ‘경제 전쟁’을 넘어 실제적인 군사적 대치 국면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규범에 의한 통제가 사라진 빈자리에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시대 한가운데에 서 있다. 과거에 세계 경찰을 자임해 왔던 미국은 이제 체면을 차릴 것도 없이 그저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여러 조폭 조직의 하나로 그 위상을 재정리하고 있다.(145쪽) 과연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을까? 미국에게 동맹의 가치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면, 한국 역시 한미 동맹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외교적 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인 것이다.

동맹은 없고 거래만 남은 세상,
미국 제일주의의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오랜 시간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단순한 우방을 넘어 ‘세계’ 그 자체였다. 해방 이후 우리가 마주한 기술과 과학, 기독교에서 서구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적·물적 토양은 미국이라는 필터를 거쳐 수용되었다. 미국은 곧 문명이었고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인 시절이 있었다.(14쪽)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혼과 함께 이 일방적 의존도 저물고 있다. 세계가 포스트 서구 시대로 선회하는 지금, 우리 역시 ‘포스트 미국 시대’를 향한 점진적이고도 담대한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핵심적인 변수지만, 이제는 우리의 발전을 견인하는 엔진이기보다 때로는 거액의 투자를 강요하거나 자국 우선주의로 우리를 옥죄는 불확실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전환기의 길목에서 박노자 교수는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생존과 발전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우선 안보의 패러다임을 ‘자립’과 ‘지역’으로 재편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완수할 수 있는 적기일 수 있다.(12쪽) 미국의 개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의 토대를 다지고,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를 적대적 단절에서 호의적 공존으로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다자적 지역 안보 구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324쪽)

경제적 지평 역시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 그간의 외교가 구미권과 일본에 올인하는 편향성을 보였다면, 이제는 중국과 아세안, 그리고 비서구권 시장에 더 큰 무게를 실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 상품과 산업 역량은 이미 서구권을 넘어 비서구 세계에서 강력한 소구력을 증명해 왔다. 발전국가 모델의 경험을 살려 전략적인 산업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인도·브라질·남아공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주요 행위자들과 보조를 맞추는 ‘균형 외교’가 반드시 필요하다.(60쪽)

결국 대미 관계의 본질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시대에 과거와 같은 혈맹의 낭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들에게 동맹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오직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만 남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거래에 응하되 결코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군사적 보호라는 명분으로 불합리한 요구를 해 온다면, 우리 역시 한미 동맹은 물론이고 방산, 조선, 반도체 및 배터리 등 다양한 전략 자산을 카드로 내걸고 대응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경제 협업이라는 우리의 핵심 이익을 끝까지 관철하는 ‘요구 수준이 높은 고객’이 되는 것, 이게 바로 야만 시대를 헤쳐 나갈 대한민국의 필수 전략인 것이다.(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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