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푸코가 모닝빵처럼 팔려 나간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1966. 08. 10.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 『르 몽드』, 1966. 07. 30.
1966년 여름, 프랑스 지성계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철학서 한 권이 휴양지의 파라솔 아래에서,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거죠. 바로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입니다. 출간 첫해에만 2만여 부, 이후 20년 동안 11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학술서’라는 신화를 쓴 이 책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프랑스 구조주의 논쟁의 한복판에 서며 현대 인문학의 지형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르 몽드』 선정 ‘세기의 도서 100권’에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푸코를 프랑스 현대철학의 중심 인물로 부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이 기념비적인 저작은, 특히 그 마지막에 등장하는 “우리는 인간이, 마치 해변에 모래로 새긴 얼굴이 [파도에 씻겨] 지워지는 것처럼, 지워질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과 사물』은 과연 우리에게 제대로 읽히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책장에 꽂혀 있는 신세로만 남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푸코의 천재성과 평판에 매료되어 이 두꺼운 책을 사게 되지만, 대개는 그 복잡하고 방대한 책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쏟아지는 역사적 사례와 생소한 개념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결국 책은 끝까지 읽히지 못한 채 책장으로 돌아가 책장 주인의 지성을 뽐낼 수 있는 장식으로 남겨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푸코의 『말과 사물』과 싸워 보기로 합시다.”
〈철학아카데미에서〉에서 진행된 6학기 48차례의 강의,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하다.
푸코는 『말과 사물』을 통해 르네상스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형성되는 방식, 곧 시대의 인식 구조(에피스테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있는 내용이라도 이해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푸코의 이 거대한 지적 탐험에 동행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자는 오랫동안 강단에서 대중과 소통해 온 내공을 바탕으로, 르네상스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서양 인식론의 거대한 흐름을 초심자의 눈높이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중에 흔한 ‘다이제스트’나 가벼운 ‘가이드’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784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방대한 분량은, 푸코가 써 내려간 문장의 이면을 파헤치고 그가 인용한 방대한 사례들의 맥락을 짚어 내기 위해 할애된 정성의 반영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말과 사물』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푸코의 사유가 전개되는 미세한 경로를 독자와 함께 걷습니다. 이 해설서는 단순히 ‘푸코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식의 설명에 머물지 않고, 독자 여러분이 직접 『말과 사물』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정복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합니다. 48회차 강의를 완주하는 순간, 여러분은 책장에 잠들어 있던 그 장식을 다시 펼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장식을 책장이 아니라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봅시다.
책 속에서
아무튼 푸코는 이 ‘역사적인 선험’을 곧바로 “인식론적인 장”이라고 하면서 이를 다시 압축해서 저 유명한 “에피스테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에피스테메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인식이 그때그때 자리를 잡아 실증성을 발휘하게 되는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이고, 이 역사를 들추어내는 것이 푸코 자신의 그 유명한 “고고학”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책 『말과 사물』은 ‘에피스테메의 역사’를 들추어내는 고고학적인 작업인 것이고, 이 책의 부제로 “인간 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말을 붙인 건 그 때문이죠. _22쪽
푸코는 17-18세기를 ‘고전주의 시대(age classique)’라고 말합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 즉 인식론적인 틀을 푸코는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하죠. 이 시대는 유사성을 에피스테메로 하는 르네상스 시대와 다르고, 18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19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등장을 에피스테메로 하는 근대(age moderne)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_181쪽
푸코가 이렇게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독립성과 그에 따른 시대 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불과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의 고고학’은 바로 이러한 에피스테메들 사이의 불연속적인 이행에 따른 인식론적인 층들을 들추어내는 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을 개발함으로써 보이고자 하는 것은 일단 보편적인 인식론의 불가능성을 보이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보편적인 인식론에 따른 지식 관련의 모든 사태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통해 뭔가 폐해가 발생했음을 폭로함으로써 그 폐해를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_333쪽
푸코에 따르면,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 지식의 장을 채웠던 일반 문법, 자연사, 그리고 부의 분석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한 것은 일반 문법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명사 이론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명사 이론이 파기되면 고전주의 시대 지식의 판이 완전히 깨지는 셈입니다. 그런데 19세기 초까지도 언어 분석은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완고했는데, 그것은 여전히 낱말들을 그 재현적인 가치에 맞추어 분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낱말의 재현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낱말이 생겨난 기원, 즉 근원적인 외침과 같은 어근의 발생 기원을 따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_430쪽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서 19세기 인간의 탄생을 향한 실마리를 찾아내는 푸코의 시선은 한편으로는 다소 우화적이긴 하지만, 날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퀴비에와 리카도 그리고 보프에서 시작해서 니체나 프로이트와 같은 문헌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 바로 〈시녀들〉에 포진되어 있었지만, 고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그 ‘텅 빈 공간’이었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이 ‘텅 빈 공간’은 ‘살로 된 시선’인바, 19세기를 연 학자들이 이 ‘텅 빈 공간’의 현전을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재현들 일체가 엮어 내는 군무(群舞)를 일시에 멈추게 되고, 그럼으로써 낱말들과 사물들 그리고 그것들이 엮어 내는 질서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핵심은 재현이 기원과 진리의 지위로부터 내려앉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_555쪽
문제는 인간 과학들 각각이 과연 실증성의 형식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푸코는 인간 과학들을 둘러싸고서 발생이냐 구조냐, 설명이냐 이해냐, ‘하부 구조’의 원용이냐 독서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해독이냐 하는 등의 논쟁이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런 뒤, 정작 중요한 점은 세 영역의 인간 과학, 즉 심리학, 사회학, 문학과 신화의 분석이 갖는 실증성이 생물학, 경제학, 문헌학이라고 하는 세 경험 과학에서 각기 구분되는 나름의 모델을 빌려옴으로써 성립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푸코는 이를 ‘구분되는 세 가지 모델의 전이’라고 말하면서, 이 전이가 인간 과학에서 주변적인 현상이거나 그저 제한된 국면이 아니라, 결코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역설합니다. 말하자면, 세 경험 과학이 없었다면 인간 과학들이 성립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_6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