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나무 선생님>
어딜 봐도 나무가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이 집에 이사 와 제일 좋은 점은 집안에서도 동서남북 커다랗게 뚫린 창을 통해 나무가 보인다는 사실이다.
집을 지을 때 동네 사람들은 창을 하도 많이 내 저 유리창을 누가 닦나, 걱정했다고 한다. 손 닦는 곳만 닦지, 닦지 못하고 지낸다. 그래도 난 유리창 많이 낸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아파트가 2층이라 사는 내내 햇빛이 고팠던 우리는 무조건 창을 크게 내는 데만 골몰했다. 여러 해 산 뒤에야 다른 집의 창이 보였다. 다양한 크기, 다양한 모양이던데 우린 그저 일구월심 햇빛, 햇볕 많이 들어오는 것만 바라 크고 넓게 사각으로만 냈다. 그리고 살다 보니 어두운 곳, 서늘한 곳도 반드시 필요한데 우린 그것 역시 놓쳤다.
나무는 심어놓으면 다 잘 자라는 줄 알았다. 태어나 50번의 식목일이 지나갔지만 한 번도 나무를 심어보지 못한 처지에서 마당 있는 집의 주인이 되었으니 욕심껏 마당 구석구석 나무를 식구로 들였다. 조선솔, 반송, 주목, 오엽송, 배롱나무, 석류나무, 화살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가새뽕나무, 감나무, 향나무, 이팝나무, 앵두나무, 남천, 사철나무, 피라켄사스, 미선나무, 진달래, 철쭉, 영산홍, 모란, 장미, 오죽, 황금편백, 회양목. 그것으로도 양이 차질 않아 인근에 밭을 구해 그곳에도 양껏 나무를 심었다. 앵두나무, 자두나무, 매화나무, 산수유나무, 왕보리수나무, 노각나무, 소나무, 오가피나무, 두릅나무, 참가죽나무, 배롱나무, 능소화, 느티나무, 벚나무, 대추나무, 단풍나무, 능수만첩홍도화나무, 조팝나무, 소나무, 반송, 이팝나무, 자귀나무, 산사나무, 스카이로켓, 명자나무….
겨울을 두어 번 난 뒤에 알게 된 것은 석류나무가 추위에 약하고, 우리 동네는 시내보다 4도는 낮다는 사실이었다. 무화과나무를 꼭 심고 싶었지만 추워서 포기했는데 석류나무는 살 줄 알았다. 탐스러운 석류로 기쁨을 주던 나무는 두 해 지나고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유난하게 추웠던 2012년 겨울을 나고는 수많은 어린 배롱나무와 오죽도 견디지를 못했다. 백 살 넘은 배롱나무는 육 개월은 옷을 입고 지내는 덕에 아직 3개월은 화사한 꽃을 자랑한다.
태풍에 감나무가 쓰러진 것도 처음 겪는 일이라 놀라웠다. 그 옆자리에 반송을 심었는데 몇 해가 지나고 난 뒤 여기저기서 감나무 가지가 솟아나고 있다. 저 가지가 줄기가 되어 감까지 맺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실수는 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 집안에 심지 않고 밭에다 심었는데 벌레도 벌레지만 새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그리고 유실수만이 아니라 관상수들도 벌레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장 늦게 깨달은 것은 나무는 사람 생각보다 빨리, 크게 자란다는 사실이다. 은행나무는 좁은 마당에다가는 심지 않는 나무인데…, 원래 이 집에 살던 터줏대감이라 그냥 두었더니 가지를 잘라주어도 엄청나게 자란다. 나무마다 적당한 간격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나자 어림도 없다. 서로 치어 시름시름 앓거나 죽어버렸다. 죽지 않고 기세 좋게 자라는 나무는 감당이 안 될 처지이다. 아아, 저 밭에다 심은 느티나무며, 자귀나무, 벚나무, 노각나무를 어쩔거나! 동네 어귀나 산자락에 있어야 할 수종을 대책 없이 밭에다 심어놓았으니. 나무든 사람이든 모두 제 설 자리가 있는 법인데 무지한데다 욕심만 커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 사람들은 꽃이 아니면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지 어떤지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에서 꽃만큼이나 개성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존재는 나뭇잎이다. 해마다 새로 돋아나는 나뭇잎은 얼마나 찬란한지 눈이 부시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보는 상록수는 게으른 존재들로 보일 지경이다. 나무가 하는 경이로운 일은 탄소동화작용이다. 지구별에서 무기물로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창조자는 식물이다. 동물은 모두 그 덕분에 먹고 숨 쉰다. 그러니 모든 동물은 식물에 날마다 절해도 그 은덕을 갚지 못하리라.
그래도 나무를 볼 때마다 신통방통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다. 땅속 그 어둡고 딱딱한 흙을 아무런 연장도 없이 어떻게 파고 들어가는 걸까. 연약한 뿌리털이 그 어둠 속에서 살금살금, 조심스레 벋어나갈 모양을 상상하면 눈물이 돈다. 뿌리의 생장점과 그 주변의 세포를 싸서 보호하기 위해 뿌리골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 숱한 뿌리마다 골무를 끼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어쩜 그리 지혜로울까.
바슐라르는 나무뿌리를 ‘살아 있는 죽은 존재’라 했다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죽은 듯이 지내는 걸 가리킨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무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닐까.
키 큰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기도 하지만 옆으로 넓게 뻗는다고 한다. 깊이의 열 배까지 넓이를 확보하여 큰 몸을 지탱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곁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의 뿌리와 얽히고 설키면서 연대하기 위해서이다. 의연하고 늠름한 나무를 볼 때마다 땅 밑에서 애쓰고 있을 뿌리에게 칭찬 한마디 하게 된다. 사람도 칭찬 한마디면 두 달을 견딘다 하니 나무는 더 오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나무뿌리를 생각하면 깊이와 넓이가 높이를 좌우한다는 걸 명심하게 된다. 위로 위로 오르고 싶은 욕망을 아래로 아래로, 옆으로 옆으로 쏟을 때 자신에게 적절한 높이가 허락된다는 걸 알려주는 선생님.
이런 뿌리의 공을 나뭇잎이 알고 있으니 이 또한 기특하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꽃과 잎에서 결정되지만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모든 나뭇잎은 스스로 땅으로 뛰어 내려와 뿌리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이 아름다움. 겨울은 나무의 모든 부분이 뿌리에 집중하는 시기이고 이 시기의 아름다움은 수피가 결정한다.
우리가 자주 보는 나무 중에는 붉은 갈색과 녹색의 얼룩무늬를 가진 모과나무의 수피가 독특하다. 내가 본 나무 중에 가장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나무는 노각나무이다. 차나뭇과에 속하는 노각나무 피부는 금색으로 빛난다. 금빛 황갈색이 도는 비단을 이어 붙인 듯한 수피는 특히 겨울에 도도하게 빛난다. 이 줄기로 전통 목기를 만드는데 노각나무는 학명에 koreana가 붙는 순수 토종 나무이기도 하다. 아아, 꽃은 또 어떤가.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고 수줍으면서도 청초하다.
어딜 봐도 나무가 보인다. 내 주변 어디에나 계셔서 이만큼이라도 깊어지고 넓어지게 해주신 선생님. 그 가르침 배우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나는 나무 학교 초등학생.
(2018)
<밥값>
첫 수필집 서문을 쓰려니까 오래 잊고 있었던 분이 생각났다. 내 글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신 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산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던 첫해였다. 가을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부르더니 이번 일요일 공주에서 백제 문화제가 열리는데 거기 백일장에 참석하라고 분부하셨다. 국어 과목을 좋아해서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국어 교사로 일하지만 백일장에 나가본 적은 없었다.
백일장은 공주 공산성에서 열렸다. 어린이부터 일반인까지 사람이 많았다. 시제가 두 개 제시되었는데 난 ‘거울’을 선택해 산문을 썼다. 쓰는 시간은 두 시간, 결과 발표는 다시 두 시간 뒤였다. 원고를 제출한 뒤 집으로 오려고 했는데 같은 과에서 공부한 친구를 만났다. 그도 교감 선생님에게 출장 명령을 받고 왔다 했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고 등단을 벼르고 있어 우리 사이에 시인으로 통하는 친구였다. 친구가 결과를 보고 가자고 꼬드겼다. 그가 시 장원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여겨졌다. 이어서 산문부 장원을 발표하는 데 내 이름이 불렸다. 결과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도록 떠올려본 적 없는 분인데 문장이 좋았다는 칭찬과 더불어 그날의 일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동시에 그때 처음 어른에게 받은 인정이 지난 20여 년간 나를 성장시킨 밑거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가을을 소재로 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셨다. 시라곤 생전 써본 적 없지만 숙제니까 그동안 배운 시 흉내를 내서 코스모스 어쩌구 하면서 썼다. 다음 날 숙제를 검사하던 선생님은 갑자기 내 공책을 들고 읽으셨다. 내가 쓴 글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읽히는 순간이었다. 잘 써서 읽으시나 보다 싶어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 읽은 선생님은 공책을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시라고 썼냐? 개가 써도 이것보다 낫겠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고 혼자서만 무참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새빨개졌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그날의 무참해진 소녀가 되곤 했다. 그런데도 대학원에 들어가 문학을 전공하고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글에 관한 전문가이신 어른이 해준 긍정적인 격려 덕분이었다. 어른에게 받은 인정이 가능성을 꽃 피우는 가장 좋은 거름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고 따뜻하게 지지하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지금의 나도 없었겠구나, 싶었다.
칭찬 한마디가 20년 뒤에 책 한 권이 되었다는 서문을 쓴 수필집이 발간된 뒤 문인주소록을 뒤져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얼마 후 선생님이 반가운 목소리로 축하 겸 밥을 사겠다고 전화하셨다. 그래서 처음 단독으로 만나 뵈었다. 연세는 있어 보이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아주 인자한 분이셨다. 그 사이 어찌 지냈는지 물으시더니 그 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서 나도 기억 못 하는 부분까지 말씀하셨다. 세상에나, 기억력이 이렇게나 뛰어나시다니!
이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전화해 밥을 사셨다. 어른이 밥 사주는 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는 너무 황감해 여러 번 밥값 내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 만나주느라 시간 내는데 밥은 당연히 내가 사야지”가 선생님의 단골 핑계였다. 가끔은 남편이나 아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내가 식구들 밥 차리는 사람이라는 걸 배려하신 덕분이다.
그때는 두 달에 한 번 가족 신문을 내던 시기라 낼 때마다 보내드리면 가족 신문 그거 누구도 못 하는 거라면서 칭찬하고 부러워하시며 가족 신문에 실을 원고도 보내셨다. 동인지나 책을 받으셔도 다 읽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여든 후반의 연세에도 테니스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며 자랑하곤 또 밥을 사셨다. 백 세까지 거뜬히 사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구순 문턱에서 홀연 세상을 떠나셨다.
최소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게 하는 어른들 틈에서 살던 나는 처음으로 닮고 싶은 어른을 만났고, 아낌없이 퍼부어주는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신 백일장에 나갔다는 그 우연이 이런 동아줄 같은 인연으로 자라리라는 걸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마흔이 넘었어도 늘 허기지고 마음이 고프던 나는 선생님이 사주신 따뜻한 밥과 격려를 통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사람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밥 잘 사주는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일 곳 없는 사람도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마음이 든든해지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도 밥 먹으며 건네는 격려 한 마디를 다리 삼아 세상을 건너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둔한 사람이다 보니 이걸 배우는 데 십 년이나 걸렸다.
선생님도 이런 밥값을 원하셨으리라.
(2019)
<슴슴한 호사>
중복 지날 즈음 여름밤에 산책을 나서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구수하고 달보드레한 향내가 달려든다. 벼꽃 향기이다. 막 패기 시작한 이삭에 희끗희끗 피는 벼꽃은 작고 보잘것없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아, 이 뭉근하고 구수한 내음.
방송에서는 열대야라고 시끄러워도 해만 지면 산책할 만하게 땅이 식는 이유는 물론 산이 가깝기 때문이지만 논도 한몫한다. 나는 평생 농사를 모르고 밥만 축내온 사람이지만 도시 변두리에 살게 되면서 논이 주는 아름다움은 느끼며 사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논이 있어 백로의 우아한 날갯짓을 볼 수도 있고, 논이 있어 개구리의 열심한 염불소리도 들을 수 있다. 모내기 직후의 연두빛 어린 모가 튼실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낟알을 그득그득 채워 고개를 숙이며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걸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바람 불 때마다 보여주는 벼들의 그윽한 일렁임을 누구의 춤과 비교할 수 있으랴. 게다가 더위 막바지에 동네에 그득하게 퍼지는 구수한 내음을 맡자면 한여름에 누릴 호사로 이만한 게 있으랴 싶다. 밥이 되기 전, 쌀이 되기 전, 꽃내음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부르다.
슴슴한 벼꽃 향기 못지않게 내가 누리는 호사는 푸새들의 꽃을 보며 사는 일이다. 원예용으로 잘 가꾸어진 꽃들이 지나칠 만큼 야단스럽다면 밭에 심어진 남새나 들녘에서 저절로 자라는 푸새들의 꽃은 그야말로 심심하다. 머윗대 볶음이나 머위 이파리 무침을 좋아하지만, 이곳에 살기 전에는 머위꽃을 본 일이 없다. 습기 있는 그늘에 한 잎씩 돋아나는 머위 이파리와 다르게 꽃은 여러 개의 잎과 함께 있어 머위가 아닌 다른 식물처럼 보인다. 꽃대 끝에 많은 꽃이 뭉쳐서 붙어 있어 둥근 공 모양을 이룬 머위꽃은 예쁘지는 않아도 참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감자밭에 피어 있는 감자꽃 생김새는 가지 꽃과 비슷하다. 흰 감자는 흰 꽃이 자주감자는 자주 꽃이 핀다. 농사짓는 분들이야 꽃을 따줘야 밑이 실하다고 죄다 따 버리지만 난 수수한 감자꽃이 좋다. 자주 보기 어려워서인지 고구마 꽃을 보면 반갑다. 처음에는 나팔꽃인 줄 알았을 정도로 꽃 모양이 비슷하다. 울퉁불퉁한 고구마 생김새와는 달리 고운 꽃이다. 더덕의 꽃은 또 어떤가? 음전하면서도 신비한 종 모양의 꽃에 금세 매료되고 말았다. 더덕도 좋아하지만, 더덕잎의 향내를 맡거나 더덕꽃을 보는 일도 삼삼한 기쁨 중의 하나이다. 뒷산에 올라가다 만나는 무릇꽃도 귀하다. 예전에야 무릇으로 정과를 만들어 먹었다지만 인삼이 지천인 요즘에야 누가 무릇에 그 정성을 들이랴. 그래도 여전히 연보라색 무릇꽃은 피어나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봄 내내 된장국의 재료가 되어준 아욱은 여름이 되면 잎겨드랑이마다 앙증맞은 연분홍 꽃을 피우고, 상추와 쑥갓은 누가 국화과 아니랄까봐 국화와 비슷하게 그러나 작고 소박하게 핀다. 김치 담느라 솎아낼 때 내 손길을 피한 열무는 연보랏빛 십자화를 피우곤 길게 꼬투리를 매단다. 방울토마토에 별 모양의 노란 꽃이 연달아 피고, 가지도 연보랏빛으로 꽃을 피운다. 까마중은 심지 않아도 저절로 방울토마토 꽃처럼 생긴 하얀 꽃을 피운 뒤 익으면 작고 까맣고 동그란 열매를 맺는다. 방울토마토랑 까마중 모두 가지과라 꽃도 비슷하고 열매도 비슷하다.
참깨는 알아도 참깨꽃을 보지 못한 사람도 많으리라. 보송보송 솜털이 덮인 연분홍 꽃이 밑에서부터 피어올라 오는데 꽃 모양은 며느리밥풀꽃과 비슷하다. 찾아보니 둘 다 현삼과라 그런 모양이다. 꽃이 지고 나면 독특하게 각이 진 꼬투리가 생기는데 그게 참깨들의 방이다. 말복 지나 밑에 있는 꼬투리가 한두 개 벌어지기 시작하면 베어 밭 한편에 세워 두고 말리는데 그 빈자리엔 보통 들깨 모를 심는다. 옮겨진 들깨 모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온 동네에 향긋한 내음을 선물한다.
여름밤 산책의 동무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이다. 소쩍새는 진달래 필 무렵 우리나라에 찾아왔다가 가을에 가는 여름 철새로 그 처연한 울음소리로 유명하다. 솟쩍, 솟쩍 2음절로 울거나 솟쩍다, 솟쩍다 3음절로 우는데 피를 토하는 듯하다. 그래서 조상들도 그리 애절한 설화를 상상해 냈을 것이다. 가까운 하늘 어디선가 소쩍소쩍 우는 소쩍새에 비해 풀벌레들은 주로 발밑에서 촉촉하고 청량한 소리를 낸다. 메뚜기, 여치, 베짱이, 방울벌레, 귀뚜라미 등 메뚜기 무리들이 내는 소리인데 암컷에게 선택되기 위해 밤마다 치열한 노래경연대회를 벌인다. 내 귀로야 어떤 소리를 내는 수컷이 매력적인지 분별할 수 없지만 지혜로운 암컷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으리라.
여름날 누리는 호사의 정점은 봉숭아 물들이기이다. 이 호사는 역사가 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빠뜨리지 않고 해마다 누린다. 7월 말쯤 봉숭아 잎과 꽃을 따서 백반과 함께 짓찧어 약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위에 놓고 랩으로 감싼다. 어릴 때는 아주까리 잎으로 감싸고 실로 칭칭 동여맸는데 너무 꼭꼭 매면 자면서 나도 모르게 빼버리고, 아프지 말라고 약간 느슨하게 매면 저절로 빠져 버리곤 했다. 결혼한 뒤로는 이 여름 행사에 남편이 동참한다. 그는 손톱 대신 발톱을 물들인다. 엄지발톱과 두 번째 발톱 혹은 세 번째 발톱을 물들이는데 왼발과 오른발을 다르게 한다. 그 나름의 미학이니 그대로 존중해준다. 발톱은 손톱보다 더 곱게 물들어 단번에 끝나지만 손톱은 세 번은 들여야 고와진다. 봉숭아물을 들이고 나면 손톱에 불이 켜진 듯 환하다. 조금씩 잘려 나가며 첫눈 올 무렵까지 손톱 끝에 남아 있는 꽃물은 볼 때마다 지난여름의 최정점을 상기시킨다. 뜨겁고 황홀한 여름의 오르가슴.
단순하고 느리게 살면서 맛보는 순하다 못해 슴슴한 일상.
그날그날 딱 하루치의 평화를 구하고 누리는, 하루 하루가 삼삼하게 호사롭다.
(2019)
<달빛 아래 홀로 춤추고 나자>
이미지로 성찰하는 시간, 놓인 사진을 하나하나 살피며 가는데 이미지 하나가 눈을 사로잡는다. 파도가 찰랑거리는 모랫바닥을 딛고 선 맨발. 그랬다. 그건 나였다. 사진에는 흰 치맛자락과 두 발, 남실거리는 파도만 잡혀 있지만 난 그 여자의 눈길과 마음까지 훤히 알 수 있다. 눈은 바다 너머 저 먼 곳을 향하고 있지만 두 발은 모랫바닥에 붙잡힌 상태.
자유롭고 싶었으나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돌봐야 할 가족이 주렁주렁 매달린 생활, 직장에서도 집안에서도 할 일이 쌓여 있는 현실, 모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야밤에 이루어지는데 식이요법을 하는 식구를 위해 오후 5시만 되면 저녁을 준비하러 달려 들어와야 하는 날이 일 년 365일 이어지는 삶.
덫에 걸린 듯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그런 남자를 만난 것도, 집안 살림만 하지 않고 직업을 가진 것도, 아이를 둘 낳은 것도 다 내 선택이었으니. 그 외 고아원을 차렸느냐 양로원을 차렸느냐는 말을 들을 만큼 돌보아야 할 아이도 어른도 많았지만, 오지랖 넓게 사회단체 일까지 맡게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도 사람이라면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어 나도 동의한 일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힘을 배분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는 직장 일만, 집에서는 집안일만, 사회활동에서는 그 관련된 일만, 글을 쓸 때는 글쓰기에만, 가르칠 때는 가르치는 일에만. 학교에 있는데 상근 활동가가 전화를 걸면, 잠깐 누구더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싶고, 학생과 상담하다가 벨이 울려 받으면 어머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집안일 하면서 풀리고,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사회운동 현장에서 동지들과 함께하며 풀리고, 단체에서 겪는 어려움은 학생들 가르치면서 풀렸다. 아아, 그렇게 선순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순환이 안 되고 서로 물려 모든 게 얽히는 날도 많았다. 여기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고, 저기에서도 난관에 부딪혀 몸도 마음도 지쳐 나가떨어지는 날.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고 싶어 목이 말랐다. 덫에 걸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덫에 얽히는 짐승 같았다.
어느 봄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파도를 잘박잘박 밟으며 오래도록 춤을 추었다. 달빛 아래 홀로,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드는 파도를 넘으며 밟으며, 기운이 다해 쓰러질 때까지.
다음 날 눈을 뜨자 갑자기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사람이란 부은 발로 절뚝거리면서도 가혹한 자기 운명을 피해 가지 않고 꿋꿋이 살아내는 존재임을 보여준 인물.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내 발목을 붙잡은 덫은 나를 지상에 머무르게 하는 닻이었구나. 사람은 누구라도 지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운명, 어쨌든 한 발은 땅을 디디고 서 있어야 하는 존재. 내 소망대로 훌훌 날았다면, 이미 지상에 없겠구나. 절뚝이며 걷는 일이야말로 존재의 춤이로구나. 사람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의 힘이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맞물리기도 하면서 만들어내는 삶의 박자와 몸짓과 호흡에 따라 추는 춤.
덫을 닻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덫이 닻이기도 하다는 건 크나큰 위로다. 나는 오늘도 덫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대신 찔룩찔룩 존재의 춤을 춘다. 이왕이면 우아하게. 삶은 닻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아직은 지상에 머물러 있는데.
(2020)
<씨앗 뿌리기>
퇴직하면서 세운 원칙 중의 하나는 ‘이제 강의는 그만!’이었다. 30년 넘게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충분하다는 마음, 더 이상 가르칠 것도 없다는 마음, 시간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이미 후배와 제자들이 강의하고 있는 평생교육의 장에서 아픈 몸으로 퇴직한 사람까지 나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 두루두루 작용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대전에서 2시간 떨어진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딱 한 달만 수필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지역에서 수필 강의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조건, 한정된 횟수,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갇혀 있던 답답함…. 승낙하고 나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왕복 4시간 운전과 2시간 강의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그래도 강의안을 준비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보며 실소했다.
코로나 때문에 연신 미루어지다 드디어 날짜가 잡혔다. 수강생은 여덟 명. 글쓰기 강의에 딱 적합하지만 대전 같으면 폐강되는 숫자이다. 글쓰기를 처음 해보려는 사람도 있고, 지역에서 동인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수강생의 편차가 심한 건 어느 강의실이나 마찬가지이다. 되든 안 되든 개의치 말고 일단 글 3편 쓰기를 시도해 보자고 약속하고 나오는 길에 깃털 달고 날아다니는 박주가리 씨앗을 보았다.
몇 해 전 병실에 갇혀서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구나 싶어지자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허망하게 죽는 것에 대한 억울함, 잘난 척 여기저기 온갖 곳을 챙기다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억울함, 그럼에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 인사도 못 받은 억울함, 몸은 퉁퉁 부어가는데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고 아무도 읽지 않을 논문을 쓰느라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병을 재촉한 억울함,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해야 할 일, 의무로 주어진 일만 앞세우고 살아온 억울함, 반평생 세끼 밥에 얽매여 동동거리며 살아온 억울함, 빛나는 날개를 가졌으나 스스로 부러뜨리고 날지 않은 억울함이 몸 안에 가득 차서 자주 목이 메었다. 입만 열면 억울하다는 소리가 아우성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을 굳게 닫아건 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지나고 있었다.
햇살 바른 마당에 나섰다 금관화의 씨앗 주머니가 터져 솜털을 단, 셀 수 없이 많은 씨앗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걸 보았다. 그 순간 나는 한평생 말로 씨앗을 뿌린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씨앗을 뿌린 금관화는 저 씨앗들이 제대로 자리 잡고 뿌리내릴지 어쩔지 걱정하는 대신 아무 미련 없이 사라져갔다. 생로병사는 모든 생명이 똑같이 가는 길이고, 삶과 죽음은 사이좋은 짝이니 억울할 것도 분노할 것도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 가슴이 툭, 터졌다. 그날 결심했다. 앞으로 남은 날 동안엔 지지와 격려와 축복의 씨앗 뿌리기를 소명으로 삼자고. 사람은 봄에 씨앗을 뿌리지만 자연은 가을에 놀랄 만큼 풍성하게 씨앗을 뿌리니 생의 가을에 딱 맞는 일이다 싶었다.
수강생들의 글은 천차만별이었다. 괜찮은 글도 있고, 토막글도 있고, 물론 써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자신도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마냥 부풀어 올랐으나 여러 날 밤을 새워도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었다는 하소연에 가슴에 담아 두는 게 풀어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시점이 꼭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강의 몇 번 들었다고 안 써보던 글이 술술 써질 리가 있으랴. 그럼에도 난 가능성을 신뢰하며 말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 자기 속마음을 처음으로 공개해 본다며 얼굴을 붉히는 사람, 마지막 날까지 글을 쓰지 못해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람, 세상에 내가 글을 세 편이나 썼다며 감격해 있는 사람, 그들 모두의 가슴에 씨앗을 뿌렸다. 이제 시작이니 계속 하시라고, 다른 사람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넋두리하는 대신 자기 삶을 곰곰 씹어가며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임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무늬가 될 거라고, “호랑이의 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무늬는 안에 있다*”고. 어둠 속에서 씨앗을 깨뜨릴 용기가 축적되는 순간 발아가 시작될 것이고, 새싹은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날,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20년도 더 전에 사회교육원에서 수필 강의를 들었다면서 이름을 밝히는데, 나도 기억이 났다. 글쓰기를 배우던 중에 남편이 병에 걸렸고, 긴 수발 끝에 지금은 혼자가 되었다며 연락두절 상태가 된 사연을 전한 뒤 얼마 전부터 글을 다시 쓰면서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알아냈다 한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더니 수필 한 편이 왔다. 아주 오래 전에 뿌린 씨앗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거기 있었다.
씨앗은 매장된 게 아니라 파종된 것, 모든 가능성을 품고 싹틀 날을 기다릴 씨앗을 상상하자 내 가슴이 근실거린다. 어떤 싹이 돋아나려나.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