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앎의 토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지성의 한계를 검토하다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는 칸트에 앞서 근대적 인식론을 수립한 선구자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말브랑슈, 로크 등 앞 세대 철학자들을 향한 비판자로서의 흄을 생생히 보여 준다. 흄은 뉴턴이 자연 세계를 탐구하면서 사용한 분석과 종합의 방법론을 인간의 정신에 적용하여,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오류 없는 이성’이라는 가정을 거부하고, 우리의 모든 추론과 결론은 오직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실증한다.
특히 흄은 우리가 인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 사건들이 사실 습관과 상상력의 결합일 뿐, 실제로 그 사건들을 일관되게 일으키는 궁극적인 원인을 인간은 결코 발견할 수 없음을 논증한다. 이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는 동시에,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독단적 형이상학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였다.
그러나 앎의 토대가 불완전한 경험에 기초했다고 해서, 흄이 필연성 자체를 부정하고 우리가 마주하는 사실들이나 마음에 떠올리는 관념들을 모두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인과의 근본적인 원리를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해서 사건에 필연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습관은 인간이 이렇게 반복되는 자연에 대처하고 생존하도록 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보여 주는 흄의 회의주의는 앎의 토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삶의 현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에 기초하면서 누구보다도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회의주의를 통해, 왜곡된 형이상학이 우리 일상 속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철학적 작업이다.
개념의 결을 살린 번역과 풍부한 해설로 만나는 흄의 본모습
오랫동안 흄 철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옮긴이 김병재 교수(DGIST 교양학부)는 이 책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추론과 추리, 결속과 연접 등 서로 비슷하지만 흄이 구별해 사용한 철학적 용어들을 저자의 의도에 맞게 신중하게 옮겼으며, 이를 찾아보기에 실어 독자들이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역사학자로서도 활약한 흄이 별도의 설명 없이 언급하는 당대의 상식이나 인물, 고전 문헌들에 대한 정보들에 대하여 자세한 주석을 달아 보충하였다.
흄의 논의를 간명히 정리하는 해제와 함께 제공되는 이 책은, 비판자이자 선구자로서 근대 철학의 중요한 길목에 서 있었던 흄의 모습에 다가가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충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 이 책은 대우재단 학술연구지원 사업 논저 부문에 선정되어 연구 및 출간 지원을 받은 저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