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몰트만은 자신이 ‘희망의 신학’을 수립하게 된 첫 번째 동기는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체험, 즉 희망만이 유일한 생존의 힘임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신학으로 체계화할 수 있게 된 것은 블로흐의 영향이었다고 하였다.
… 블로흐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아직 아님의 존재론”이다. 몰트만의 신학의 기본 구조는 ‘희망의 종말론’이다. 이 둘의 사고 구조는 모두 ‘아직 아님’(noch nicht)이다. 몰트만의 이 기본 구조는 블로흐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블로흐와 몰트만 간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1장_ 몰트만의 사상 배경〉 중에서
몰트만의 신학의 기본 구조는 역시 ‘아직 아님’ 혹은 ‘종말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르트가 초월신론과 내재신론을 비판한 것처럼 몰트만도 초월신론(God above us)과 내재신론(God in us)을 모두 비판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오는 신을 말하는 데 반해, 몰트만은 수평 선상에서 ‘우리 앞에 있는 신’(God in front of us) 혹은 ‘희망의 신’(God of hope)을 말한다. 바르트 신학의 공간적인 구조를 블로흐의 구조를 차용하여 시간적인 구조로 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몰트만의 신학을 신(新)바르트주의 신학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하겠다.
〈제1장_ 몰트만의 사상 배경〉 중에서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 서문에서 저작 동기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신학의 각 주제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 “기독교는 단순히 그 부록에 있어서 종말론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종말론이고, 희망이며,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이다.” 종말론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매개체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은 종말론에 근거해야 한다. “올바른 신학은 그 미래의 목표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종말론은 신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할 것이다.” 신학은 종말론에 근거해야 하며, 종말론적인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2장_ 몰트만의 신학〉 중에서
몰트만은 계시에 대한 논의에서 계시라는 말의 어원을 캐물어서는 성서적인 개념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계시라는 말이 지닌 일반적인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계시를 해명하려고 하면 그 말이 유래한 에피파니 종교의 계시 개념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의 문맥에서 계시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제2장_ 몰트만의 신학〉 중에서
몰트만은 역사가가 사적 방법에 의해 역사를 탐구하며 또 역사를 파악하려고 한다고 본다. 그런데 변화하는 역사를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가는 변화 속에 있는 내재적 로고스를 찾으려 하며, 그 로고스를 찾았다고 믿는 순간 역사는 파악되지만, 역사는 역사가 되기를 중지한다고 한다.
〈제3장_ 몰트만의 역사 해석〉 중에서
몰트만은 역사를 역사적으로 본 것은 이스라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헬라적 사고 속에는 역사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헬라적 사고에서는 언제나 존재하는 자, 불변자(不變者)를 문제 삼았으며, 언제나 참된 것, 언제나 선한 것,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탐구했다고 한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역사’는 결코 언제나 존재하는 영구적인 것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대-기독교적 전통에서는 역사를 구원사(救援史)로, 신적(神的) 약속의 역사로 보았기에 역사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신적인 것이란 언제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 미래에 올 약속의 하나님으로부터 기다릴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제3장_ 몰트만의 역사 해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