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 함께 춤을 추어요
윤진화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함께 춤을 추어요』는 버팀의 방법론으로 누군가의 기다림을 택한다. 시적 화자에게 그는 예수이자 부처이며, 때로 알라이며, 심지어 샤먼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 절대자가 올 것이라는 믿음, 마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그토록 고도를 기다렸던 디디와 고고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런 점에서 본 시집의 첫 시 「안부」는 고도를 향한 안부라 하겠다. 속없이, 그렇기에 애처롭게 “잘 지내나요?”라고 묻는 시적 화자는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늙고 지는, 생의 끝이 좀 더 가까워 보이는 그는 아직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믿고 있다. 하여 고도가 보낸 편지 속 “혁명”을 꿈꾸고, “시를 섬기며 살겠”다 하며,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거라고 다짐한다. 그나마 혼자가 아닌 함께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고도를 기다리는 자들과 함께 춤을 추며 봄을 기다린다. 이즈음 되면, 잘 늙어감을 고민하는 자도 알고 있는 듯하다. 세계의 민낯을.
믿음과 인식의 시간 사이 4부인 최초의 선퇴로 돌아간다. 자신의 이름으로 울고자 했던, 세계의 비정함을 온몸으로 받았던 자는 “나무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아직 신이 “우리 위에서” 울고 있을 때이다(「선퇴蟬退-여자여, 왜 우느냐」). 아픔과 고통의 강도는 같지만 버틸만한 세상이었다. “온몸이 뜨거워서 신을 벗었”지만 앞서의 경우처럼 발의 행방이 묘연하지 않다.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맨발”이다(「서울역 7017, 휘파람을 부세요」). “사직서 품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지만(「미수금」), 죽은 친구의 아들이, 친구의 예쁨이 눈에 들어오는 세계였다(「반영反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선퇴는 매번 상황을 달리하였던 것일까. 왜 그토록 맴맴 울어야만 했던 것일까. “산새 소리 바람 흐르는 소리 돌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연꽃을 찾아오는 문상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과 “함께 운”, 부활한 자는 어쩌다 우리 안에 갇혀 사람답게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수련」). 『함께 춤을 추어요』는 이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한다. 부활의 첫 선퇴를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이 시집이 그저 불행한 결말로 마무리 짓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러하다. 춤추는 자들이 다시 한번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 우리 밖으로 뛰어나와 부활을 꿈꾸는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이 순간, 고도를 기다리는 평범한 인간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인의 말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