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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INSIDE

그해 여름의 거실|저녁 식사|보상|집이라는 왕국|겨울나기 책상|아이를 구해주세요|페인트칠|책 읽는 여자|피아노|마인드 팝|집안일|울피|작은 극장|퇴치의 예술|로고|쓸모없어진 것들|깨진 타일|자리 배치|부엌에서 배운 것|바람|평상심|가족 식사|여름 별장|소리의 방향|박제|소파|벽지|압력밥솥|익숙한 자리|잡동사니

OUTSIDE

쪽지|날아가는 집|위험한 안식처|홈 어드밴티지|동전|파쇄|경계에서|끝끝내|중력중심|흉터|조각배|나가는 문은 이쪽입니다|화덕|배심원|작약|잔디 집|링컨의 나무|위대한 방|방수포|금지된 공간|파괴와 수리|비명을 지르는 나무|풍선|폐허 위의 건축|편애의 기술|얼음 술집|별이 빛나는 밤|권태|열리지 않는 문|땅

감사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아키코 부시 (Akiko Busch)
20년간 건축문화 잡지 《메트로폴리스》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활동했고, 베닝턴 대학과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강의했다. 〈뉴욕타임스〉, 《아메리칸 크래프트》 등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며 문화, 자연, 건축, 디자인에 관해 다양한 글을 쓰고 발표하고 있다.
이 책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는 장소와 사물에 스민 연약하고도 불확실한 기억, 유용함과 무용함 사이의 미학을 탐구하며 일상을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사색적인 에세이로 주목받았다.
이 외에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How to Disappear》, 《집의 지리학Geography of Home》, 《평범한 물건의 특별한 삶The Uncommon Life of Common Objects》, 《강을 건너는 아홉 가지 방법Nine Ways to Cross a River》, 《인내Patience》, 《임시 관리인The Incidental Steward》, 《물레방아 연못에서 바다까지From the Millpond to the Sea》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스스로를 평생 학생이자 자연 관찰자라고 소개하는 아키코 부시는 허드슨 밸리에 거주하며, 매년 한 번 허드슨 강을 수영해 건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역자 : 박지영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부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샤인》,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크릿 스파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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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긋난 패턴, 끊어진 실, 깨진 타일, 잔가시가 일어난 마룻바닥….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평생 학생이자 자연관찰자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의 아키코 부시가 그려낸
집과 사물에 얽힌 내밀한 기억의 지도

아키코 부시는 1792년에 지어진 허드슨 밸리의 집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거실 벽난로는 판자로 화구가 막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외에도 이제는 드나들지 않는 현관문, 무언가를 보관하기에도 애매한 공간 등 오래된 집에는 무용한 흔적들이 많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작은 결핍의 공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며 “효용을 다한 사물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기쁨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이주와 정착이라는 낯선 변화를 견디게 해준 할아버지의 회전의자, 아들이 직접 만든 나무 책상, 아이들이 떠난 방 창문에 25년째 붙어 있는 스티커 등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과 일상의 사물들에 스민 내밀하고 불안정한 기억, 그것이 새롭게 재구성되는 방식과 의미 등을 탐구한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에서 아키코 부시는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사색적인 문체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안정과 불안, 유용함과 무용함, 자연세계와 물질세계의 미묘한 경계를 그려내며 여운을 남기는 60편의 짧은 글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감각들이 돌연 솟아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낡고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주제’로 삼을 만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장소는 무수히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생동하는 존재가 된다. 이를테면 창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 손때 묻은 식탁이 주는 익숙한 감각. 어디 그뿐인가. 겨울날 한기가 드는 창가에 둔 책상으로, 한 자리에 붙박인 가구로, 아이 방 창문에 붙은 스티커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선풍기나 화덕으로, 판자로 화구를 막아 쓸모를 잃은 듯한 벽난로로, 공간은 생생히 살아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긋나고 불완전한 기억 틈새에
또렷하게 남은 사물들의 이야기

미국의 원주민 나바호족의 직조 기술은 유명한데 그들은 패턴을 살짝 어긋나게 만든다. 그 틈으로 영혼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깨진 도자기 틈새를 금가루나 은가루로 채워 오히려 드러내는 일본의 전통 공예 킨츠기(金?ぎ)에는 영원하거나 완벽한 것은 없다는 ‘와비사비(わび·さび)’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아키코 부시는 불완전함, 실수, 흠결 등에 주목한다. 이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며 “무엇인가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이 어떤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니까.”

공간과 사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지고 부서지는 동안 우리의 기억 역시 마모되고 어긋나며 ‘빈틈’을 갖게 된다. 아키코 부시는 어린 시절 추운 방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쳤던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방의 ‘좁은 문’으로 커다란 피아노를 들여놓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알고 있다. 어쩌면 피아노 연습이라는 과제가 너무나 크고 어렵게 느껴졌던 기억 때문에 피아노가 어마어마하게 컸다는 기억으로 탈바꿈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안다. 현실 세계의 장소가 기억 속에서 거의 딴판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기억 속에는 벽을 통과하는 피아노가 있고, 움직이는 마룻바닥, 마법처럼 밝기가 바뀌는 조명, 위치를 바꾸는 창문도 있다. (…) 현실 세계의 견고함은 인간 기억의 고집스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 44~45쪽

지인의 집에서의 저녁 식사 풍경을 다룬 또다른 어린 시절의 기억 또한 인상적이다. 귀가 어두운 여주인을 위해 필담을 나누는 식탁에 함께 앉은 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 망명한 혁명가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였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은 또렷한 기억은 오직 메모지, 모빌, 백조 모양의 도자기 같은 사물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살다 보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혼동하기도 한다”며 그 혼동과 변형이라는 불완전함이 우리 기억의 속성이며 본연의 방식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정과 불안,
집이라는 공간의 두 얼굴

아키코 부시는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에서 특히 ‘집’이라는 개념이 지닌 모호한 이면, 즉 집이라는 공간에 내재한 불확실성, 배치와 이동 등에 주목하며 “안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불안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일종의 모델로 떠올리는 집들은 이상하게도 ‘아이를 위한 것’ 또 ‘어딘지 불편하고 불안한’ 것들로, 나무 위에 지어져 바람에 마구 흔들리거나 커다란 뱀이 기어다니는 유리집, 그리고 PVC 비닐로 만들어진 성 모양의 ‘바운스 하우스’이다.

바운스 하우스는 오두막이나 성 모양으로 제작되기도 하는데 기둥과 탑, 트램펄린, 심지어 작은 수영장까지 달려 있고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바운스 하우스를 진짜 집답게 만드는 건 이런 근사한 부대시설이 아니다. 땅바닥에 단단히 고정하지 않으면 집이 바람에 흔들리다 못해 훌쩍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 115쪽

스포츠에서 대개 홈팀이 경기에 유리하다는 ‘홈 어드밴티지’ 개념은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듯이 아키코 부시는 우리가 집에 대해 ‘일종의 신화’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때로는 늘 거기 있던 가구 대하듯이 가족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키를 연필로 표시한 문틀만은 새로 페인트칠하고 싶지 않은 마음처럼. 깨진 타일이나 망가진 조명을 손보는 일은 미루지만 파리 떼를 퇴치하는 온갖 방법에서 예술적인 요소를 찾아내거나 방수포를 ‘반짝이는 코발트색 보자기’로 묘사하는 마음처럼. 더위를 식혀주는 선풍기가 사망에 이르게도 할 수 있다는 서늘한 괴담처럼. 오래전 떠나왔거나 이제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깨진 타일, 이제는 열 수 없는 문, 주방의 물건들…
그것들이 우리 삶의 주제가 된다

1940년대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와 로버트 프로스트의 논쟁을 다룬 〈잡동사니〉라는 글에서 아키코 부시는 낡고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두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한다(이 책의 원제 Everything Else Is Bric-A-Brac(그 외 나머지는 잡동사니)는 이 글에서 비롯되었다).

주제와 잡동사니는 엄연히 다르지만 우리는 둘을 자주 혼동하곤 한다. 당신이 ‘잡동사니’라고 생각하는 것-아버지의 금색 펜이나 어머니의 실크 스카프, 창턱에 늘어놓은 조개껍데기, 시골 마을에서 산 파란 도자기 주전자-은 실은 ‘주제’이다. 두 시인이 키웨스트에서 뭐라고 했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100쪽

영국의 어느 극단에서 맥주병, 주전자 같은 생활용품을 이용해 셰익스피어 연극을 제작했다는 글 〈작은 극장〉(시리즈 Table Top Shakespeare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에서 강조하듯이 “사소한 것이 위대해지고, 위대한 것이 사소해”지며 “평범함과 특별함은 한 끗 차이”이기에 아키코 부시는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수백년 전 동전이나 이제는 열리지 않는 문 같은 낡고 쓸모를 잃은 것들을 살펴보고 그것의 이름과 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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