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보석 같은 지아비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이 생명은 그렇게 영원을 향해 갔는데, 잔인한 것 같지만 그래도 생명 있는 우리는 먹고살아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길 위에는 슬픔과 서러움만 항상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거기에는 기쁨도 성취감도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슬픔은 나를 짓누르고 그리움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지아비 앗아 가지 않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무엇이냐고 하나님 향해 항변도 하였으나, 살면서 느낀 것은 큰 지혜는 아니어도 아름답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행로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앙이 밧줄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살아온 세월이 하나님 은총의 섭리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 pp.69-70
나는 오늘도 조용히 울었다. 슬픔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감사의 눈물, 기다림의 눈물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함께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다시 살아가기 위한 나의 다짐이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상실은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세상과 다시 마주 서게 한 힘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고통은 때로 희망으로 다가와 영혼이 하늘을 향해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어느새 겨울 하늘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별빛 하나가 다시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 별은 아마도 내가 다시 살아가야 할 희망의 빛일 것이다.
---p.83
2018년 11월 24일 그날의 폭설은 잊을 수 없다. 양구 인문대학 종강 강연도 있지만, 김형석 교수님이 출연하시는 〈인간극장〉 5부작 “백 년을 살아보니” 영상 촬영을 하며 가는 길이기도 했다. 조수석에는 조 피디가, 뒷좌석에는 김형석 교수님과 천호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만난 주 선생이 동승하였다. 옆에 타고 있던 조 피디가 안타까웠던지 “제가 운전할까요?” 한다.
예상보다 눈발이 거세게 들이밀면서 달리는 자동차 앞 차창을 가로막는다. 고속도로에 들어가니 나무들이 눈꽃 핀 모습으로 온통 하얀 도로 위에 같이 서 있는 듯 풍경이 장관이다. 폭설을 뚫고 가고 있는 자동차 바퀴가 휙휙 대면서 바닥을 겉돌고 있다. 내 인생에서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세월도 딛고 살아왔는데, 들이치는 눈보라로 가야 할 길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넘고 가야 할 길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넘고 가는 길을 택한다.
〈인간극장〉 “백 년을 살아보니” 영상이 나가고 눈길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시청자들이 마음 졸였다고 한다. 어느 시청자는 눈보라 속에서 운전해 내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도 하였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믿는 하나님을 통하여 삶의 가치를 찾고 보람 있는 인생을 만들어 가겠다는 사명감으로 살고 있다.
--- pp.96-99
고향 들녘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나뭇잎 흔들리는 푸르른 바람 소리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는 너를 위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라고 한다. 고향 민둥산에 두고 간 네가 심은 아까시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꽃을 피웠듯이, 너도 그 꽃처럼 향기롭게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라고 용기를 준다. 그런데 붉게 물든 석양 노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p.167
세상은 눈부시게 변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의 얼굴은 달라졌고, 아픔은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믿는다. 한 통의 전화에 담긴 공감과 조용한 사랑이 외로운 이에게는 위로가 되고, 답답한 이에게는 숨 쉴 틈이 되며, 잘못을 돌아보는 이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음을. 이 일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지친 내 삶에 의미를 되돌려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동안, 나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아직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 pp.187-188
바람이 세차게 불던 1998년 11월 17일 새벽 3시, 불났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상가에 갔다. 시뻘건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하늘로 활활 솟아올랐다. 소방차의 물줄기는 거세지만, 불은 상가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아모레 화장품 매장으로 뛰어들어가 물건 하나라도 건지려 했으나, “죽으려고 불로 뛰어들어요!” 하며 소방대원이 입구를 막아섰다. 우리 가족을 22년 지켜 준 삶의 터전이고 생업이었다. 참담하고 기가 막혀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넋 놓고 한탄만 하고 앉아 있기엔 당장 세 아이의 교육뿐 아니라 생계까지도 지탱할 수 없게 된다. 화재로 참담한 여건에서 매장에 있던 화장품 정리를 어떻게 하였는지 기억이 없다. 어떤 경우라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행복을 가슴에 머물게도, 가슴 밖에서 서성이게도 하는 것이 아닐까.
--- pp.211-215